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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랭이 Oct 27. 2023

너의 환한 미소가 세상을 밝혀줄 수 있다면

나는 오늘도 너에게 손을 흔들 거야

곧 하늘에 닿을 것만 같은 높은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작은 도시. 중간중간 낮은 건물도 함께 섞여있다. 빌딩숲 4차선 도로 듬성듬성 차들이 보인다.


출장을 가고 있는 승용차, 물건을 실어 나르는 택배차, 사람들을 내려주는 버스, 음식을 배달하는 오토바이까지. 여느 도심의 풍경과 다를 바 없다.


이곳에서 산 지 벌써 30여 년이 다 되어 가고 있다. 여러 번의 이사 끝에 자리 잡은 곳이다.


나의 고향.


이 동네에어 10대부터 30대에 이르기까지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길을 타고 다니다 보니, 어느새 주황색 유니폼을 입고 있다.


나는 소방관이다.


빨간 자동차를 타고 도로 위를 달리면 차창밖 세상은 조금 다른 색상이 입혀진다. 보호해야 할 사람들, 지켜야 할 사람들, 손을 내밀어야 할 사람들. 지나가는 고양이도 하수구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스레 보게 된다. 목줄 없는 멍멍이도 차에 치이지 않을까 괜히 노심초사다.


그런데 요즘은 아이들이 가장 많이 눈에 들어온다. 엄마 허리춤에도 못 미치는 작은 키에 고사리 같은 손을 엄마 손에 맡긴,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 아이들이 보인다. 아빠나 엄마는 빨간 차가 보이면 자세를 낮추어 아이에게 이야기한다.

 

"우와~ 저기 봐 저기 봐~ 소방차야~ 우와"

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들리지 않아도 다정하게 건네는 목소리가 눈에 보인다. 그리고 "손 흔들어줘~"라고 하며 아이와 손을 흔들 준비를 한다.


그러면 나도 준비한다.


스윽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치면 아이가 신나게 손을 흔들며 아직 완성되지 않은 듯한 목례를 하기도 한다. 기다렸다는 듯 나 역시 손을 흔들며 소리친다.


안녕~!


부모와 아이는 씩씩한 나의 인사에 의외로 꽤 놀란다.



나는 출동할 때나 주행 중이 아니라면 아이들의 인사를 신나게 해주려고 한다. 기억을 하든 못 하든 아이에게는 신선한 추억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들의 그 순수한 미소가 세상을 조금 더 밝고 건강하게 해 주노라 믿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미소는 일을 하며 받는 크고 작은 충격을 완화시켜 주는 나의 비타민이기도 하다.


가끔 먼저 인사를 건네 민망한 상황이 벌어져 선(先) 인사는 꾹꾹 참는다.




꺼져버린 생명을 소생시키지 못하고 센터로 돌아가는 길, 차 안에는 적막함이 감돈다. 무어라 할 말이 없다.


빨간불을 확인하고 정지선에 서니 왼쪽 횡단보도 앞에 아이가 엄마와 서 있다. 아이는 엄마를 바라보며 "소방차가 서 있어요"라고 알린다. 엄마는 아이와 함께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한다.


나의 가장 큰 임무 중 하나인 '인사하기'지령이 내려온 것 같다. 손을 흔들기 위해 창문을 내리는 그 순간, 차 안의 더운 공기가 적막강산의 어두운 기운들과 함께 빠져나간다.


회복의 미소가 나를 반기는 순간이다.


나는 앞으로도 아이들을 보면 열심히 손을 흔들고 인사를 먼저 건넬 것이다.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오래도록 지켜주고 싶다.


밝게 웃는 환한 너의 미소가 나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해 줄 수 있다면 나는 언제나 힘차게 손을 흔들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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