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랭이 Mar 11. 2024

아이와 함께 찾은 놀이터

놀이터에서 발견한 놀이터의 의미

토요일 늦은 오후, 아내가 일하는 학교의 놀이터를 찾았다. 당초 몇 시간은 더 일찍 갔어야 했지만, 소파에서 부녀가 나란히 잠드는 바람에 지각(?)을 좀 했지만 햇살은 아직 따뜻해 야외활동을 하기에는 더없이 좋았다.


놀이터에는 전에 없던 새로운 미끄럼틀이 서 있었다. 아내가 휴직하는 동안 새로 지어진 것 같았다. 형형색색의 미끄럼틀을 보니 하은이는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뛰어노는 초등학생 오빠들 마냥 쏜살같이 뛰어갔다.


"우와! 놀이터다!!!"


조용한 시골 학교에 기분 좋은 아이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어느 미끄럼틀에나 있을법한 구름다리 혹은 징검다리? 앞에 서서 서성이는 하은이를 보며 마음속으로 응원해 보았다. 한 발 두 발 내딛더니 아빠를 부른다.


"하은아 아빠가 뒤에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천천히 한 걸음씩 가보자"


아이의 등 뒤에 서서 혹시나 발이 빠질까 혹시나 손을 놓칠까 노심초사하며 따라간다. 만약 넘어진다면 넘어지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잡아주겠노라 다짐하며 말이다.


번쩍 안아 대신 건너주면 좋겠지만 스스로 해 내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네를 조금만 세게 밀어도 무서워하던 녀석이 어느새 "아빠 더 밀어주세요"라고 할 정도로 이제 꽤 잘 탄다. 겨우내 얼어붙은 땅과 얼굴을 할퀴는 추위 때문에 놀이터에 자주 오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나와 아이의 웃음소리를 들으니 봄 햇살에 녹아내리는 대지처럼 내 마음도 함께 녹아내린다.


할아버지가 계시는 유림독립기념관에서

해가 서서히 넘어가고, 손에 쥐고 있던 모래들이 하은이 머릿속을 파고 들어갈 때 즈음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넘어왔다. 학교에서 10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아버지는 소방공무원 퇴직 후 마을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문화, 관광 해설을 해주시고, 현재는 유림독립기념관 운영에 힘쓰고 있다.


아버지는 오랜만에 같이 찾은 장모님께 목화솜을 드리려고 목화솜 한 다발을 묶어주셨다. 귀여운 얼굴로 자기한테 달라며 손을 쭉 뻗으며 목화솜 다발을 받아 든 하은이가 신나서 뛰어간다. 발 빠른 하은이는 목화솜을 괴롭히며(?) 도망가보지만 나의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따라가니 독 안에 든 쥐다. 솜사탕을 닮은 목화솜을 입에 넣으려는 하은이를 번쩍 안아 올리며 목화솜 다발을 압수하고 나서야 상황은 모두 종료되었다.

부녀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매화(梅花) 나무 뒤 편으로 석양이 지는 것을 보니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집으로 가는 길. 운전대를 잡고 조용해진 하은이를 잠시 쳐다보다 생각에 잠겼다.


미끄럼틀과 모래,
 시소와 그네가 있는 놀이터는
 어른들이 만들고 정의한 것일 뿐,
아이의 놀이터는 아빠와 혹은 엄마,
아니면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과 공간을 말하는 것 같다.

공간으로서의 놀이터가 아닌 함께하는 시간으로서의 놀이터가 되어주기 위해 오늘도 손수 미끄럼틀이 되어준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은영 박사님이 되어보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