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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랭이 Jul 23. 2024

(上) 이 냉면이 붇기 전에 돌아오겠소

[키랭이 119 에세이] 비응급 신고(feat.상습 신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온몸 구석구석 땀이 쏟아져 내린다. 가뜩이나 이 적어지는(그냥 탈모라고 하자) 탓에, 나무 없는 사막처럼 평소보다 10배는 더 많은 양의 땀이 흐른다. 해마다 '올해는 작년에 비해 왜 이렇게 덥지?' 라며 유난스러운 더위를 과거에 핑계 삼아 보지만, 왠지 사실인 것도 같다.


 너무 덥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에어컨 한 대 없는 땡볕에서 구슬, 아니 폭포 같은 땀을 흘리며 일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불평만 할 수는 없다.


 우리 팀원들은 첫 출동을 잡으면 그날의 테마를 점친다. 이게 무슨 소리인고 하니, 처음 나간 출동의 유형이 하루종일 이어진다는 것이다. 나는 처음에 믿지 않았다. 소방펌프차 기관사를 하면서 점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비가 올 것 같은데 오지는 않고, 날이 많이 흐리면 소각행위를 한다던지, 비 오는 날에는 소방시설 오작동 출동을 많이 나갈 것 같다던지, 건조한 날씨나 갑작스러운 기온 급강하 때에 화재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든지 하는 게 다였다.


 하지만 구급은 달랐다. 첫 출동이 그날의 테마다! 첫 출동에 거동불편으로 나가면 그날의 절반 이상의 출동 건이 거동불편으로 채워지고, 교통사고를 나가면 절반 이상이 교통사고로 채워지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빅데이터담당실에 분석의뢰를 해보고 싶을 정도이다.


 




 아침부터 허리 통증을 심하게 호소하는 분을 이송했다. 허리통증 환자는 거동도 되지 않을뿐더러 환자 이송 중에도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탓에 신경도 곤두선다. '거동이 전혀 되지 않는' 상태의 환자를 '주 들것'에 옮겨 태울 때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


 "자자~ 환자분, 조금 덜컹할 건데 최대한, 최대한 조심히 옮겨 드릴게요. 많이 불편하시면 말씀해 주세요."

 "아아아~~ 아!!!! 아!!!!!! 네...!!! 아!!!!"

 "자 김대원 준비 됐지?"

 "네, 대원님. 하나 둘 셋에 맞춰 들겠습니다."

 "오케이, 하나, 둘, 셋!"

 "으이차~~~"


 환자를 병원에 인계한 후 구급차 뒤로 모였다. 단체로 땀샤워나 한 듯 흠뻑 젖어있는 서로를 쳐다보며, 눈꼬리랑 입만 겨우 억지로 웃어 보이며 차에 올라탔다. 억지웃음이라도 미소는 서로를 힘나게 한다. 웃어야 웃을 수 있다.


 "대원님, 저는 오늘 물냉(면)입니다"

 "나도 나도, 나도 물냉"

 "저는... '섞음'가겠습니다."

 "오~ 섞음~ 오케이! 사무실에 취합 다 되었지? 가는 길에 주문 넣자"

 "네, 대원님!"


 주말은 반찬가게 운영을 하지 않아 알아서 시켜 먹는다. 점심메뉴, 저녁메뉴를 고르는게 여간 귀찮은 게 아니지만 그래도 배달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 그 또한 즐거움이기도 하다. 시골에서 근무할 때는 다양한 메뉴로 골라먹는 건 꿈도 꾸지 못 한다. 장을 봐 놓았다가 끼니마다 요리를 해서 때워야 하는 지역대나 센터도 아직 허다하니 안타깝기만 하다.


 냉장고에 있던 수박 한 덩어리를 발견한 동료가 커다란 쟁반에 수박을 내어왔다. 사무실에 있던 대원들은 냉면을 주문한 사실을 잊은 듯 팔을 길게 쭉쭉 뻗어 자신의 몫들을 챙겼다.


 "와~ 달다 달아~"

 "수박 먹고 냉면 들어가겠냐?"

 "참~내. 들어가고도 남습니다"

 

 그때였다.


 "띵동~"


 "오오~~ 냉면! 냉면! 냉면!"

 

 스파르타 병사들의 함성 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대원들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일제히 식당으로 돌격했다.


 "오~ 여기가 근본이지 말입니다. 계란도 슬라이스가 아니라 한 개 통으로 넣어 주고요..."

 "와~ 석쇠불고기도 맛있겠다. 얼른 먹자 먹자."

 "그래, 와서 얼른 먹자. 또. 언. 제. 출. 동. 걸. 릴. 지. 모. 르. 니."


 (나왔다... 사무실 금기문장)


 "♪♪♪♪♩♬♩♬ ~ 구급출동~ 구급출동 ~ "


 ...


 봉인된 주문을 외워버린 대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 잘.... 다녀와!!! (흐읅!)"


겨자와 식초를 마저 뿌리던 대원도 배웅했다.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이 면이 붇기 전에 돌아오겠습니다... 면과 육수를 적절히 분리하여 냉면 특유의 쫄깃쫄깃한 식감과 부드러움을 살려주시고, 살얼음 가득한 육수의 냉기를 꼭 좀 지켜주십시오!" 식당 문이 거의 다 닫힐 때 즈음 복도로 달려나가며 문틈 사이로 나의 애타는 목소리가 한번 더 새어들어갔다. "맛있게 드십시오~시오~ 시오~ 오~"


 구급차에 올라타 지나간 냉면은 접어둔 채 지령서를 다시 확인했다. 가만보니 타 관내 출동건인 듯했다. 그쪽 관내 구급대가 출동으로 부재중이라 지원을 나가는 내용이었다. '몸이 아프다.(거동불편) / 0000 앞'


 '몸이 아프다라... 역시 오늘의 테마는 거동불편인가...?' 나는 사이렌을 울리며 첫 교차로를 통과한 후 지령서에 시선을 잠시 고정시켰다.


 '몸이 아프다...? 아... 위치가... 어디서 많이 봤는데... 저기서 몸이 아프... 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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