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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랭이 Jul 24. 2024

(下)이 냉면이 붇기 전에 돌아오겠소

[키랭이 119 에세이] 비응급 신고(feat.상습 신고)

"에~~~~~엥~~~~~~~~~"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온 동네방네 울려 퍼지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기도 하고 인상을 찌푸리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모는 차는 미국 소방의 어느 영상에서처럼 귀를 틀어막을 정도로 사이렌을 울리고 다니지는 않는다. 시끄럽다는 민원이 쏟아지는 탓에 얼마 전에는 아예 공문으로까지 내려왔다.


'사이렌 취명 자제...'


 아주아주 비응급한 상황이나 구태여 길을 뚫고 지나가야 할 상황이 아니면 사이렌을 울리지 않는 편이 오히려 현장활동에 도움을 준다고 하는데, 아예 동의하지 않는 부분은 아니다. 시끄러운 사이렌이 운전자와 처치자의 판단을 방해하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거동이 불편한 환자일 경우는 더욱더 사이렌 취명이 필요치 않다. 그날도 그랬다.


 "대원님, 아~ 이거 싸~~~~ 한데요?"

 "혹시 신고자 아는 분인가요?"

 "음... 확실치는 않은데, '00 포차 앞 몸이 아프다?' 그 분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 달 전, 같은 장소 비슷한 사유로 출동을 간 적이 있던 나는 신고자가 한 달 전 경험했던 동일인물임을 직감했다. "현장 도착 100m 전입니다. 준비하세요~" 도착에 대비해라는 안내를 창문 너머로 현장을 보니, '그분'이었다.


 "술을 또 왜 드셨어~" 나의 걱정과 원망 섞인 목소리가 00 포차 앞 야외 소파에 누워있던 신고자에게 향했다. "아니, 한 잔, 한 잔 밖에 안 마셨~어" "한 잔? 한 잔이 아니고만, 아이참" 한 잔이 아니라 한 병, 아니 두 병은 더 마신 듯했다. 환자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알고 있어도 환자의 상태를 평가해야 하기에 기본적인 평가를 진행했다. 


 "아니~ 그게 아니고, 내가 억울해서~" 나는 이 억울해서 뒤에 스토리를 모두 안다. 아들이 본인 집을 팔아 돈을 챙겨갔다는 하소연이다. "어머이! 오늘 또 어디서 드시고 오셨어?" 단호한 내 목소리에 태도를 바꾼다. "한 잔 밖에 안 마셨다니까"라고 하지만 만취 상태다. 혹여나 자신을 모르는 구급대원이 가면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 잘 알건대, 보면 아는데? 확인해 보면 있는데? 다 등록되어 있을 건데?"...


집에 태워달라는 이야기다.


 "아픈 데는 없습니까?" 혹시나 해서 한 번 더 물어본다. "없지~" 선택지가 없다. 병원? 병원에선 받아주지 않는다. 애초에 아프지도 않고 협조도 되지 않기 때문에 되려 욕만 먹고 돌아와야 한다. 이송거부? 법이 애매해 문제가 발생할 경우 보호받지 못한다. 귀가조치? '그래... 그것밖에 없다...'


 두 대원의 부축을 받으며 가까스로 구급차에 올라탄 신고자 A 씨. 불편한 몸에 넉넉지 않은 살림, 안타까운 사연들이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면서 한편으로는 상습적으로 구급차를 이용하는 이 분이 얄밉기도 했다. 도대체 어떤 마음이 진짜 마음일까. 둘 다 맞는 걸까. 혼란한 마음을 더욱 어지럽히는 멘트도 귓전을 때렸다. "내가 얼마나 억울하면... 술이.. 내가... 아 근데, 집에 도착하면, 사이렌, 그것 좀 끄고 가주세요" 두서없는 문단 속에서도 사이렌은 끄고 가 달라는 부탁을 몇 번이나 하는지...


 "여기 어디죠?" "네~ A 님, 여기 집 근처 다 왔어요." "아, 그럼 제가 혼자 갈 수 있습니다. 여기서 가세요" 집 근처에 다 와가니 혼자 걸어갈 수 있다는 A이다. 분명 차에 올라탈 때는 한 발 움직이는 것도 벌벌 떨었는데... 그냥 걷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싶어 나는 집 앞까지 차를 몰았다. "여기서 알아서 갈게요" 급기야 짜증까지 내는 A. 나도 고집부리며 현관문까지 열어주었다.


 "아주머니, 술 이제 금지! 약속하입시다이! 다음에 부르면 진짜 큰 일 납니다이!"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끝으로 우리는 현장을 빠져나왔다. 언제 냉면을 시켜놨는지 까마득하게 잊은 채 다시 한번 땀에 젖어버린 축축한 몸을 이끌고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뒷좌석에 타고 있던 후배 대원이 갑자기 놀라며 한 마디 했다.


 "대... 대원님..."

 "왜?"

 "와... 소름인데요? 저 이 분 압니다."

 "뭐라고?"

 "다른 센터 근무할 때 지원 나왔다가 태웠던 분인데... 와... 요즘도 신고하시네... 아까 집 근처에서 혼자 갈 수 있다고 가라고 했지 않습니까?

 "응, 그게 왜?"

 "그거... 진짜 혼자 갈 수 있어서 그런 겁니다."

 "무슨 소리야? 몸이 무거워서 한 발도 제대로 못 걸었잖아. 저번에 왔을 때도 그랬는데?"

 "아닙니다... 저도 전에 출동 갔을 때 혼자 갈 수 있다고 하도 고집부려서 내려 드리고 차에서 내려서 몰래 봤거든요."

 "봤는데?"

 "갑자기 허리를 딱! 펴더니 터벅터벅 걸어가시더라고요!"

 

".... 뭐????????"


 

 




 원래 얇은 면이라 붇는다 해도 큰 티도 나지 않는 것 같다. 퉁퉁 까지는 아니더라도 텁텁한 식감의 면들이 입 안에 구겨 넣어질 때 지우개를 씹어 넘기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 내 기분만큼이나 꽤 답답한 식감이었다. 주취자 신고만 아니었더라면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식당의 냉면을 먹을 수 있었는데... 오늘부터 한 동안은 이 집 냉면이 생각나지 않을 것 같다.


 화웅의 목을 가지러 가기 전 술잔이 식기 전에 돌아오겠다던 관우는 약속을 지켰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어떤 선배가 내게 이런 말을 남겼었더랬다. 


 "주말에 면 시키면 출동이 걸려. 그래서 나는 늘 볶음밥을 시키지."


 이제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실감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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