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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동을 앞둔 어느 소방관의 편지

by 키랭이

영원할 것 같던 시간도 유한한 벽 앞에 힘없이 쓰러지고 만다. 함께 웃고 함께 땀 흘리며 동고동락하던 나의 벗, 나의 동료들이 이제는 다른 자리로 떠나게 된다. 6개월에 한 번씩 있는 이 몹쓸 이벤트가 어쩐지 야속하기만 하다. 그러나 그들도 각자의 길이 있는 법. 또 다른 세상을 향해 나아갈 그들을 위해 나는 축복만 해 줄 뿐이다.

떠나는, 혹은 남게되는 나의 히어로, 나의 소방관들

25년 1월 12일, 퇴근을 앞두고 청사 앞에 모였다. "우리 다음에 꼭 만나자"며 약속하고 모두 카메라 앞에 서서 환하게 웃어보았다. 누군가는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릴 것이고, 누군가는 아빠가, 엄마가 되어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척척 승진을 해 어엿한 간부가 되어 있을 것이고, 또 언젠가는 재난현장에 나타나 내가 믿고 의지해야 할 동료로 나타날 것이다.


덕분에 아무 사고 없이 6개월이 지나갔고,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배움은 위아래가 없다. 구급차에 갓 올라탄 나는 두 번의 정기인사 폭풍 속에서 총 5명의 동료들에게 응급처치와 업무를 배웠다. 고작 3명 타는 구급차인데, 나만 두고 두 사람씩 계속 떠나 아쉬움도 컸지만, 다양한 스타일의 대원들을 경험하며 육각형 지식을 습득할 수 있어 행복했다. 내가 만난 사람들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표본의 전부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최고의 대원들이었고 다시 만날 수 없을 최고의 스승이었다.


'네가 나의 뒤에 있으면 시커먼 화재현장도 뚫고 다닐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네가 나의 옆에 있으면 어떤 환자도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네가 나의 앞에 있으면 어떤 상황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그 작은 믿음들이 없었더라면 우린 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부디 모두 멋진 소방관이 되시기를. 모두 아프지 말고 건강하시기를. 그리고 꼭 다시 만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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