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진짜 비가 내리면 산불이 끝날까?

아니면 응큼한 양심이 바닥을 드러낼까?

by 키랭이

"아빠, 아빠, 맞다. 맞다."

"뭐어~~?"

" '오늘의 전달은 산. 불. 조. 심. 입니다.' "

"산불조심?"

"응, 산불조심입니다."

"아~ 요즘 산불이 많이 발생해서 산불조심으로 언어전달 하는구나~"

"네, 그런데 왜 산불이 났어요?" (또 시작된 why)

"음~ 담배꽁초를 누가 버렸나봐"

"에엥? 담배꽁초 안 돼!"


매주 유치원에서 아이에게 문장이나 문구를 제시하면 아이는 하원 후 부모에게 말을 전달하는 '언어전달'을 하고 있다. 시국이 시국인 만큼 이번 주 언어전달은 '산불조심'이다. 화재원인을 꼭 물어보는 하은이에게 뭐라고 답하면 좋을까 싶어, 화재원인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 중 하나인 담배꽁초를 들어보았다.


이번 산불도 다 하나같이 개인의 부주의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아무리 홍보하고 계도해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안타깝기만 하다. 99.99999%의 사람들이 모두 주의해도 0.000001%의 소수의 사람들이 조금만 마음을 잘 못 먹어도 이처럼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하는 것이 바로 화재, 특히 산불이다.


각 가정에서, 학교에서, 또 교육현장에서 불조심을 아무리 외쳐도 단 한 명의, 단 한 번의 실수로도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고 마는 현실에 착잡하기만 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소각행위에 의한 산불은 반복된 행위의 결과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통계자료가 당연히 없을 테지만 산불이나 산불 의심 출동을 가면 상습 방화자들이 아주 많다. 태연하게 갈쿠리로 긁으며 돌아가라고 하는 주민부터, 자기 땅에 불 놓는 건데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며 소리를 지르는 주민까지... 행태는 아주 다양하다.


한 번은 해가 막 뜨기 전인 캄캄한 새벽녘에 불꽃이 보인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적이 있다. 아주 캄캄한 새벽 시간대로 산불이나 주택화재를 의심하며 신속히 현장으로 달려갔다. 현장은 산자락 바로 아래에 있는 밭이었고 불꽃과 연기가 목격되었다. 그런데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물을 끼얹고 갈쿠리 등으로 가연물을 헤짚으며, 두꺼운 장화로 밟아 꺼나갔다. 그런데 익숙지 않은 헛기침 소리가 들려 옆을 돌려보다 그만 놀라 넘어질뻔했다. 바로 소각행위를 한 주민이 우리 옆에 숨어서 쪼그려 앉아 있었던 것이다.


이 반복된 소각행위는 주로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시간대에 가장 많이 행해진다. 습도가 높은 날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나는 출근 전이나 근무 중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출동 준비를 한다. 그리고 예상은 들어맞는다.


"화재 확인 출동 바람"

"산에 불꽃이 보인다는 신고입니다."

"도로에서 산 쪽으로 흰 연기가 보인다는 신고입니다"


현장에 도착하면 해맑게...(머쓱하게) 웃으며 대원들을 맞는다.


"아이고~ 막 끄려고 했습니다."


앞마당 조금 태웠다?
텃밭에 불 조금 놓았다?
논두렁에 잠시 불 좀 붙였다?


웃을 일이 아니다. 당신의 그 부주의한 행동이 수 천 수 만 명의 이재민을 만들어 내었고, 누군가의 가슴에는 다시는 회복되지 못한 트라우마를 안겼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 누군가는 하늘의 별이 되었고, 회복할 수 없는 인명과 재산 피해를 초래했다.




산불 발생으로 며칠 동안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진화와 대피를 돕고 있는 마을이장단협의회 회장인 삼촌에게 전화를 드렸다. 늦은 시각, 외할머니와 회관으로 긴급대피를 막 마치고 전화를 받은 삼촌의 목소리는 이제 조금 지쳐 있었다. 산 봉우리에서 활활 타오르는 화세와는 사뭇 다른 기운이다.


"할머니는 좀 괜찮으세요?"

"응, 너무 걱정 마라. 내일 비도 온다고 하니까 희망을 걸어봐야지"

"네, 삼촌도 몸조심하시고요. 고생하세요 삼촌!"




다음 날 아침 반가운 비소식과는 달리 내가 가장 싫어하는 5mm의 빗방울이 조심조심 떨어지기 시작했고, 출동지령 방송은 쉴 새 없이 울렸다.


제발 좀!


"할아버지가 논두렁을 태우고 있다."
"산에 흰 연기가 많이 보인다. 운행 중"
"소각행위를 한다. 연기랑 불꽃이 보인다. 할머니"
"논을 태우고 있다. 지나가는 중"
"소각행위를 한다. 밭인 것 같다"
"과수원에서 연기가 올라온다"
"마을회관 앞에서 소각행위를 한다"
"밭에 불을 지르고 있다. (cctv관제센터)"


힘 빠진다...






이번 대형 산불로 유명을 달리하신 고인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하루속히 산불이 진압되고 일상을 회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현장에서 구슬땀 흘리고 있는 민간, 기관, 군인 여러분 모두 안전하게 대응하시기를...


※ 위 글은 이번 산불과 관련한 저의 개인적인 소견일 뿐입니다. 제가 속한 조직의 의견을 대변하지는 않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