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 퇴근길 목격한 교통사고 심정지 처치
쪽잠과 출동을 반복하다 보면 아침 해가 그리 반갑지 않다.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방구석으로 얼른 들어가 뜨끈한 전기장판을 틀고 이불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사흘 걸러 하루마다 반복되는 24시간 근무는 어찌 보면 규칙적인 것 같지만 인간의 생체리듬과는 썩 친하지 않은 시스템인 것은 분명하다.
서에서 동으로 퇴근하는 나의 퇴근길은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기 때문에 눈을 부시게 하지는 않는다. 반쯤 감긴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며 페달에 힘을 잔뜩 줘 보지만 오늘따라 차가 시원시원하게 나가지 않는다.
"오늘 하은이 잘 잤어?"
"아! 오늘 완전 지각이야. 혹시 태워다 줄 수 있어?"
"아 진짜? 오키오키 알겠어. 내가 태워줄 테니까 얼른 출근준비 해"
퇴근길에 아내와 자주 통화하는데, 오늘은 공주의 지각 소식에 가속페달 위에 올라가 있던 발에 힘을 꽉 주었다. 아이와 함께 등원하는 길은 무료하지 않다. 잠시도 쉬지 않는 아이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녹음이라도 해 놓고 싶은 재미있는 말들이 참 많다. 하지만 늘 그렇듯 대부분은 기록되지 못하고 물가에 섞여 들어 희석된 파란 물감처럼 내 가슴속에 행복한 감정으로만 남게 된다.
"하은아, 오늘도 즐겁게 보내고 와! 이따가 아빠랑 재밌게 놀자"
"네, 아빠 다녀오겠습니다"
할머니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유치원으로 걸어 들어가는 뒷모습을 볼 때면 늘 걱정 반, 긴장 반, 행복 반, 언제나 반반반반. 온갖 마음이 다 교차한다.
"하은이 잘 갔어?"
"응, 엄청 씩씩하게 잘 걸어가더라"
"히히, 하은이 너무 귀여워"
"그렇지 그렇지, 오늘 있잖아,
어? 잠시만!!!
늘 그렇듯 익숙하게 삼거리에서 좌회전을 하던 나는 순간 너무 놀라 아내에게 소리쳤다.
"잠시만! 어른이 쓰러진 것 같아"
"아! 응응"
나는 비상등을 빠르게 켜고 서행하며 현장으로 접근했다. 그리고 차량을 멈춰 세우기 전 상황을 파악하게 위해 스캔을 시작했다. 하차 후 빠르게 행동하기 위해 평소에 늘 습관처럼 하던 행동이다.
누워있는 사람... '70대 이상 여성!' 주변을 둘러싼 여러 명의 사람들과 전화를 하고 있는 한 사람. '신고는 한 것 같고 다음은...' 차량이 보인다. 차량 진행 방향으로 무수히 떨어진 믹커피 수십봉지와 가방 한 점. '가방이 떨어진 곳에서 충격을 받아 저기까지 간 것 같군'
환자 옆 안전한 곳으로 차를 댄 후 현장으로 달려가니 한 남자가 막 가슴압박을 시작했다.
심정지다.
"구급대원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가슴압박 계속하세요!"
제복을 입고 있든 사복을 입고 있든 누군가 헐레벌떡 달려가면 하던 행동을 멈출 수도 있기에 가는 동안 가슴압박을 멈추지 않도록 소리쳤다. 119에 신고한 사람이 구급상황관리센터와 통화를 하며 응급처치에 관한 지도를 받았음이 분명하기 때문에 나보다 사정을 더 잘 알 것이다.
가슴압박을 하고 있던 청년과 마주 보며 무릎을 꿇고 앉았다.
"119에 누가 신고하셨나요? 전화기 저한테 주세요! 잠시만 손 떼겠습니다"
구급상황관리센터와 통화를 시작하며 환자의 호흡과 맥박을 빠르게 다시 관찰했다. 맥박 없음, 호흡은... 한 번 정도 관찰되었으나 마지막 호흡인 것 같았고, 이후 호흡은 관찰되지 않았다.
"선생님! 가슴압박 다시 하세요.... 아! 선생님 손꿈치입니다. 네네! 아... 선생님! 제가 손을 바꾸겠습니다. 하나 둘 셋 하면 바로 손 떼세요. 하나! 둘! 셋!"
가슴압박은 교육받은 나도 쉽지 않지만, 응급처치가 업이 아닌 일반인의 경우 많이 당황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처치가 이뤄지지 않을 수가 있다. 하지만 나는 현장에서 생명을 살리기 위해 두려움을 감수하고 기꺼이 손을 포개어 주시는 모든 분들께 늘 감사하고 있다.
가슴압박을 강하게 하며 다음 지시를 이어갔다.
"자, 오른쪽에 남성분은 교통통제 해주세요. 현장이 많이 위험합니다. 옆에 두 분! 두 분은 환자 다리 쪽으로 가서 서 주세요. 지나가는 분들이 볼 수 없도록요."
"외상은 있나요?"
지나가는 차량의 소음으로 잘 들리지 않던 구급상황관리센터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외상평가!'
그러고 보니 가슴압박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여럿 보였다. 나와 마주 보고 있는 방향에서 한 발짝 더 멀리 떨어져 지켜보고 있는 청바지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아까 가슴압박을 도와줬던 분 뒤에서 손을 어떻게 해야 된다는 둥, 자세를 어떻게 해야 된다는 둥 이야기하는 것을 우연히 들었던 게 기억이 났다.
"선생님!"
"네네?"
"네, 청바지 입은 선생님! CPR 배우셨죠?"
"네네!!!"
"네, 자 그럼 이리 오세요. 저랑 똑같이 하시는 겁니다. 침착하게. 준비됐죠? 하나! 둘! 셋!"
역시 내 예상은 맞았다. 가슴압박을 능숙하게 실시하는 청바지 남성을 믿고 환자의 외상을 평가했다. 중증외상환자 평가는 사실 실전에서 많이 해 본 적이 없다. 작년에 막 응급구조사 교육을 마치고 구급기관사로 일하면서 주처치는 언제나 구급대원 1, 2의 몫이었기에 옆에서 보거나 거들어준 게 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그런 것 따질 때가 아니다. 구급차가 도착하기 전에 환자를 위험에 빠뜨렸거나 빠뜨릴 수 있는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어 처치에 도움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차분히 시작했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머리 확인, '후두부 스웰링 관찰됨' 목, '확인불가, 최대한 움직이지 말자 가슴과 복부는 가슴압박하며 평가함.' 하지 확인, '우측 골반 틀어짐.' 발 확인. '개방성 상처 확인 됨' 관찰된 대략적인 내용을 구급상황관리센터에 통보하며 가슴압박 교대를 시작했다.
"자, 선생님 이제 손 바꿀 겁니다. 하나! 둘! 셋!"
몇 번의 가슴압박을 더 이어 나갔을까.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10분... 아니 30분은 족히 지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3시간이 지나갔었다고 해도 믿어버릴 정도로 시간에 대한 감각이 일그러져버리며 한 가지 깨달았다.
'다급하게 119에 신고하고 기다리는 신고자의 마음이 꼭 이와 같지 않을까...'
그때였다.
'삐용 삐용 삐용 삐용 삐용'
"자 모두 물러나주세요."
"승용차가 전면에서 환자를 쳤고, 가슴압박은 몇 주기..."
"조금 있다가 이야기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어? 키랭?"
"네! 주임님"
"고생했다. 지금부터 내가 볼게"
든든했다...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나도 당신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일을 하고 있는 소방관인데... 주황색 옷과 하얀 헬멧이 이렇게 반가운지 몰랐다. 차에서 응급처치 장비를 꺼내 달려오는 모습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일사불란하게 환자 옆으로 다가온 대원들은 처치를 시작했다.
곧이어 달려온 두 번째 특별구급차에서도 3명의 대원들이 현장으로 달려왔다.
"어? 형님?"
"응"
간단히 눈인사만 주고받은 특별구급대 구급대원은 내가 첫 구급차를 탈 때 주처치자 역할을 해준, 말하자면 나의 첫 스승인 후배(?)였다. 인사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기 시작했다. 구급차에서 담요를 꺼내 아까 시야를 막아주던 두 사람에게 건넸다.
"이것 좀 들어주세요. 차량이 많이 지나가서 가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특별구급차로 이송을 하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차량 정리를 시작했다. 일반구급차는 앞으로, 특별구급차는 바로 출발할 수 있도록 환자옆으로 바짝 댔다.
"골반고정대 가져와!"
선임구급대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와 나의 스승인 동생과 함께 골반고정대를 챙겨 와 골반을 고정했다.
"넥칼라!"
나는 구급차로 뛰었다. 선임구급대원 옆으로 가 목을 고정시킨 후 넥칼라를 채우고, 몸을 일으키니 구급대원 한 명이 한 손엔 수액을 들고 불편하게 장비를 찾고 있었다.
"이리 주세요!"
수액걸이 역할이라도 해야 빠르게 처치할 수 있는 것을 알기에 냉큼 수액을 뺏어왔다.
"자, 이송준비 됐어. 차는?"
"네, 준비시켜 놨습니다."
"어! 키랭, 땡큐!"
"들 것 고정하자"
나는 들것을 가져와 기관사 한 명과 함께 환자를 고정하고 주 들것 위에 환자를 올려드렸다.
빠르게 사라지는 사이렌 소리와 구급차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환자의 품에서 떨어졌을 믹스커피 봉지를 주워 담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는 길이었을까... 어쩌다 사고가 났을까... 괜찮으실까... 아니, 괜찮으셔야 할 텐데... 내가 뭘 잘못한 건 없을까? 내가 부족한 건 없었을까...'
커피봉지를 하나하나 주워 담을 때마다 그동안 끊겨 있던 생각들이 이제서야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제일 걱정되는 것은 환자였다. 그리고 내가 처치한 가슴압박이 부족한 것은 없었는지 계속해서 돌려감기를 하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나의 뇌는 쉬지 않고 반복재생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긴장이 풀리니 옷 속의 흥건한 땀들이 이제 막 느껴졌다. 운전석 문을 열 힘조차 나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은 귀갓길을 위해 힘겹게 페달을 밟으며 겨우 집으로 들어갔다.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현장에서 시작된 반복재생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괜찮으셔야 할 텐데...'
머리를 말리고 소파에 멍하니 앉아있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우우우우우우웅(진동)'
"아, 네! 주임님. 고생 많으셨죠."
"아니다! 키랭이 네가 고생했지. 너 덕분에 그래도 병원에 일찍 도착할 수 있었어. 그런데..."
안타깝게도 환자는 다발적인 손상이 많아 외상성 심정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전화를 끊고, 언제나처럼 잠시 눈을 감았다. 생명을 살리는 일이 일이 되지 않도록, 그리고 환자에게 있어서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다 잡기 위한 나의 작은 의식이다.
'죄송합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꼭 좋은 곳으로 가시기를 바랍니다.'
살면서 한 번쯤 이런 일을 마주하지 않을까 싶어 늘 준비하는 마음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보지만 그게 오늘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무리 준비하고 연습해도 부족하다. 내가 할 일은 그저 경험을 쌓고, 공부하는 것 뿐... 이 다음에 또 이런 상황을 목격한다면 나는 어떻게 대응하게 될까...
그 어느때보다 생각이 많아지는 3월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