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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불씨라도 꺼뜨리지 않으려는 노력

(구급) 어느 노숙인의 마지막 SOS

by 키랭이

이상하리만치 우리만 조용한 그런 날이 있다. 출동정보시스템 속 출동지령서는 켜켜이 쌓이는데, 우리 센터만 조용한 그런 날 말이다. 하지만 방심을 하거나 실언을 해서는 안 된다. "아~ 오늘 웬일로 조용하지?" 이런 위험한 한 마디는 꼭 몇 분 되지도 않아 큰 일을 치르게 만든다.


"(구급 출동 벨소리) 구급출동! 구급출동! 긴급전화 신고 건입니다. 복수가 차고, 숨을 쉬기 힘들다고 합니다. 위치는 신고자가 알려준 위치고 역걸기가 안 됩니다"


역걸기가 안 된다?


긴급전화 신고다. 휴대전화의 정상적인 기능이 작동하지 않아(이용정지 등의 상태) 휴대전화를 소지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걸 수 있는, 긴급전화 기능으로 걸어왔다는 뜻이다. 이 경우 명확한 위치는 파악되지 않는다.


사이렌 스틱을 부여잡은 오른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엄지와 약지는 지지를 검지는 4방향 고출력 사이렌, 중지는 모터사이렌에 가 있다. 변비라도 걸린 것 같은 혼잡한 도를 보며 짧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선배님, 역주행하겠습니다. 오른쪽 좀 봐주십시오. 안전하게 통과하겠습니다." "오케이!" 사이렌 스틱 위에서 출동 대기 중인 손가락들이 동시에 댄스를 시작했다.


웨~~~~~~~엥
위용위용위용위용
우~~~~~~~웅


신고자에게 조금이라도 일찍 닿기를 바람으로 아슬아슬한 곡예운전을 이어가다 일순간 왼쪽 팔꿈치가 클락션에 가 닿았다.


빠~~~~~~~~앙 !


왼손을 12시 방향에 두고, 팔꿈치에 힘을 주면 그대로 클락션에 가는데, 긴급상황일 때 자주 사용한다. 9시 방향을 잡고 엄지로 클락션을 누르면 긴급회피기동 시 핸들이 털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른손을 가져와 조작을 하면 기본 사이렌을 커버링 하는 고출력 사이렌을 사용할 수 없어 비효율적이다.


"지나가던 행인이었을까요?" 꽉 막힌 도로를 어느 정도 벗어나자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던 물음표가 마스크를 뚫고 나왔다. "글쎄... 가봐야 알겠지만, 위치는 정확할까? 정자 앞 주차장이라는데..." "아, 정자 앞 주차장 길이가 500m는 넘지 않습니까?" "그게 문제야..."


정답 없는 물음표들의 대화가 끝나자 목적지에 도착했다. "선배, 여기가 제일 유력하니까 두 분 내려드릴게요. 혹시 찾으시면 무전 주세요." 확률은 반반이지만 나눠서 찾는 게 효율적이겠다 싶어 그렇게 판단했다. 다시 나는 사이렌을 울리며 주차장의 꼬리 부분으로 향했다.


'어디 계시나요... 혹시 쓰러져 있으면 찾기도 어려운데... 차로는 도저히... 에잇!' 러닝트랙처럼 길쭉하게 생긴 주차장을 뛰어다닐 요량으로 차에서 내렸다. '아! 벌써 여름인가!' 7월 같은 5월의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수색을 시작했다. 몇 걸음이나 걸었을까.


"읏!"


코를 통해 익숙한 냄새가 느껴졌다. "아! 근처인 것 같은데..." 의심스러운 하얀 트럭 옆을 '훽'하고 돌자마자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구급 경방, 여기 구급기관. 신고자로 추정되는 남성 1명 발견했습니다!" "사칠(무전용어)! 정확한 위치 알려주길 바람"


그는 복수로 꽉 찬 배를 한 손으로 받치고, 한 손은 차량 보닛을 짚으며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도와주세요... " 당장라도 넘어갈듯한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처치실에 태워 이송을 하는 것이었다. "자, 여기 저를 잡으시고, 천천히, 천천히, 기다려드릴게요." 한 발짝도 걷기가 힘든, 한 발을 위로 단 15cm도 못 들어 올리는 이 환자를 혼자 의자형 들 것에 앉히기는 쉽지 않았다. "발이 발판까지도 안 올라가세요? 음... 잠시만요."


방법이 없다. 대원들을 태우러 가기는 이미 늦었고, 나는 해내야만 한다. 이미 땀에 온몸이 젖을 대로 젖어버린 나는 숨이 차서 움직이지 못하는 그를 껴안았다. "하나, 두울, 셋!!!"


"같이하자" 의자형 들것을 침대로 변형시키려는 찰나, 두 명의 대원들이 도착했다. "읍!!!" 대원들은 알았다. 이게 무슨 냄새인지. 아마도 살이 썪어들어가는 냄새겠지. 고독사로 오랫동안 방치되면 건물밖까지 나는 그 냄새와 흡사했다.


병원을 선정하는 것은 맛집에서 메뉴를 고르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다. 베스트 메뉴는 정해져 있고 뭘 먹어야 할지는 알겠는데, 막상 고르는 데에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나마 메뉴선택과 병원선정의 작은 차이라면, 식당은 거절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병원은 거절한다는 것이다. 행려자의 가장 큰 문제는 보호자가 없다는 것... 언제부턴가 보호자가 없으면 병원은 수용을 꺼린다.


한 평도 채 되지 않는 차 안에서 '그' 냄새의 고통을 이겨내며 약 20분 동안 보호자를 수배한 결과, 부모님과 연락이 닿았다. "혹시 병원에 오실 수 있으실까요?" "..." 90을 바라보는 고령의 부모님은 거동이 불편하다며 거부했다. 누나, 형, 전부인 모두 그를 외면했다. 아마도 우리가 모르는 어떤 스토리가 있겠거니, 모든 가정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으니까 말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기적적으로 동생을 찾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동생 분은 빠르게 전화를 끊었다. 다시 부모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실패, 다시 한 번 더 설득을 이어나간 끝에 그는 병원방문을 약속했다.


병원으로 향하는 길, 우리는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그는 2년 전 집에서 나왔다. 그리고 이곳 주차장의 버려진 차에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응급실 도착.

"환자분 옷을 좀 벗겨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간호사의 간절한 부탁에 우리는 대답했다. "네? 네, 근데 이게 옷의 문제는 아니에요. " 웃옷을 힘겹게 벗긴 우리는 공감을 바라는 눈빛으로 다시 들어온 간호사를 바라보았다. "아... 그렇군요. 들어가시죠 대원님. "


그의 상태는 너무도 처참했다. 복수로 가득 찬 그의 배보다 썩어 들어가는 부위가 더 큰 골칫덩어리였다. 이송을 원망하는 의사의 몇 마디 말도 겸허히 받아들였다. 환자의 치료도 중요하지만, 그들도 사람이다.


정리를 위해 차량으로 돌아가는 길, 병원 외부도 이미 그의 흔적이 강하게 베어버렸다.


그는 잊히길 원했다. 그리고 숨어 들어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자신의 존재를 강하게 어필하고 있었다. 나는 감히 확신한다. 그 누구도 잊히길 원하는 사람은 없다. 자기의 생각의 자신의 마음을 항상 알아주기를 바란다. 그러다 원치 않게 풀리지 않는 실타래처럼 모든 것이 엉키고 나면 내면의 동굴로 들어가 버리고 마는 것이다.


나는 그가 내게 남기 강렬한 기억을 바탕으로 이 글을 써 내려간다. 이것이 어쩌면 내가 그를 대신해 세상에 남길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아닐까 하며 말이다.




유난히도 바빴던 5월의 24시간을 끝마치고, 어느 한 주차장에 들렀다. 마지막으로 그를 한 번 더 기억해 주기 위해 그가 머물렀을만한 장소를 찾아 헤맸다. 뚜벅, 뚜벅 걷다 보니 파란 차량이 한 대 눈에 들어왔다. '아, 이 차구나...' 언제 먹었는지 모를 라면 봉지와 과연 저걸 덮었을까 싶은 담요(혹은 점퍼)가 의자 위에 널브러져 있고, 오랫동안 머물렀을 파리들도 몇 마리 보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저 그를 기억하는 일, 그리고 그가 다시 이곳을 찾지 않게 하는 일, 또 누군가 이런 곳을 이용하지 않게 하는 일. 혹시나 거리를 방황하는 누군가가 이곳보다는 조금 더 나은 곳, 시설 따위에 갈 수 있도록 이 커다란 바위를 치워주는 일.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지나치게 바쁜 일상 속에서 좌우로 고개를 조금만 돌려보면 내가 아닌 남이 보인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이기적이었을 내 나의 모습을 꾸짖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면 나 또한 마에 위로가 가득 찬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밝게 하는 방법은 요란한 불꽃놀이를 벌이는 것이 아니라 작은 불씨를 꺼뜨리지 않게 하려는 마음에서부터 출발한다.


오늘도 나는 내 마음속 작은 불씨가 꺼지지 않게 하기 위해 제복을 입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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