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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안전교육 긴급명령이 떨어졌다

노후 아파트 화재 재발 방지를 위한 소방안전교육을 다녀오며...

by 키랭이

많은 이들이 사후약방문이라고 손가락질하지만 끊임없는 예방활동에 반하는 재난, 사고는 늘 끊이지 않는다. 두 번 다시 재발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각 기관들은 각자의 처방전을 출력해 예방에 총력을 기울인다. 그런데 이번 처방전은 조금 의외였다.


7월, 긴급 소방안전교육 실시

'교육을 긴급하게?' 의외였다. 그간 소방안전교육은 담당자가 신발 밑창이 다 닳아 없어질 정도로 뛰어다니며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교육을 '긴급'하게 추진하는 것은 상당히 의외였다.


출처 : 소방방재신문(박준호 기자)


교육은 상당히 빠르게 진행됐다. 사건 발생 후 얼마되지 않아 전 소방안전강사가 동원되어 근무, 비번 할 것 없이 지역 학교 대부분을 돌아다니며 교육을 실시했다.


나도 덩달아 바빠졌다. 학교가 워낙 많은 탓에 교육시간은 그리 길게 주어지지 않았다. 1시간 안에 아이들에게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안전교육을 해야 하기 때문에 PPT도 전면 수정에 들어갔다. 나는 강의를 나가면 어설프게 준비하는 것을 싫어하는 편이다. 설렁설렁 대충 시간만 때우는 식으로 준비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늘 나가는 강의라고 똑같은 말만 하는 앵무새가 되기 싫었다. 한 명이라도 더 내 강의를 듣고, 언젠가 몸이 반응해 주기를 바랐다.


최근 발생한 안타까운 사연을 넣고, 노후 아파트 대피요령에 대해 자료를 정리했다. 그간 화재진압대원으로 구급대원으로 또 대부분의 건축물들을 돌아볼 수 있었던 소방특별조사반(지금은 '화재안전조사')으로 근무한 경험을 살려 최대한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적용하기 쉽게 정리해 나갔다.




엊그제 일어났던 비극적인 사건에 비해 이곳 아이들의 표정은 무척 순수했다. 한 명 한 명 맑은 눈동자와 눈 맞춤을 하며 마이크를 입에 갖다 대었다.



무거운 이야기를 하면 혹시 무서워하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내가 생각지 못했던 다양한 질문을 하며 과연 '아이들'만 할 수 있는 신기한 생각들을 마구마구 쏟아내었다. 강의 시작한 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어느새 나는 아이들 속에 들어가 강의는 대화의 장으로 변해버렸다.


뒤에 앉은 선생님도 신이 나 질문을 하며, 즐겁게 토론(?)을 이어나갔다. 그렇다. '안전교육'은 토론이 필요하다. 각자 사는 곳, 환경이 모두 다르다. PPT에 적힌 대로 아주 표준적인 방법대로 교육을 하면 예상범위를 벗어나는 현장에서 적용하기 매우 힘들다. 소방관도 현장을 만나면 다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다. "현장마다 너무 달라~"


1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밤새 구급출동을 하느라 밤을 지새운 지난 24시간 근무를 마치고 바로 이어서 시작한 교육인데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시간만 더 허락했더라면 아마 몇 시간이고 더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손을 계속 드는 아이들에게 시간이 다 되어 가야 한다며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는지 모르겠다.


강의 말미에 내가 준비한 영상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거렸다. 모두의 소중한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지지 않기를. 모두의 웃음소리가 오늘도, 내일도, 영원하기를. 그대들의 예쁜 눈망울이 여전히 빛나기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나는 표준교안과는 조금 다르게 교육을 하는 편이다. 표준교안은 반드시 필요한 이론이지만 현실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도록 현장감 있게 길을 알려주는 것은 강사가 할 일이다. 다음은 내가 소방안전교육이나 외부 기관 강의 시에 알려주는 화재 시 행동요령이다.(정답은 없다. 생각하고, 고민하고, 응용해야 한다.)


복도식 아파트 4층에 살고 있는데, 3층에서 불이 났다. 화채발생 세대의 현관문이 열려있어 연기가 베란다, 복도 양 쪽으로 솟구친다. 어디로 대피해야 하나?

입과 코를 젖은 수건(없으면 손이라도)으로 막고 자세를 최대한 낮춰(가능하면 성인 허리보다 낮게) 벽을 짚어가며 지상으로 대피해야 한다. 그런데 이 경우 몇 해 전 ○○시에서 대피하던 주민을 계단실에서 흉기를 휘둘러 살해하고 상해를 입히는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다. 아주 희박한 확률이라 이 가능성 낮은 일 때문에 대피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은 바로 밑에 집 화재이고, 연기가 너무 자욱해 내려갈 자신이 없다면 옆집으로 대피한 후 완강기를 활용해 볼 수도 있다. 완강기는 3층 이상 10층 이하는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활용할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완강기는 대부분 베란다 인테리어 등을 하면서 제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완강기가 없다면 다른 피난구조설비가 설치되어 있다. 옆집으로 벽을 부수고 갈 수 있는 경량 칸막이. 아랫집으로 갈 수 있는 피난사라다리 등 다양하다. 경량칸막이도 안타깝지만 대부분 선반을 설치해 물건을 적치하고 있어 본인 집에 경량칸막이가 있는 것도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4층에서 3층으로 가는 계단은 그리 길지 않고 연기는 수직상상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3층만 통과하면 비교적 안전하게 대피가 가능하니 지상 대피가 더 우선될 수도 있다.


사실 이렇게 A, B, C, D, E, F, G 하면서 나열하면 처음에는 많이 당황한다. 하지만 이런 고민은 한 번쯤은 반드시 해봐야 한다. 고층아파트에 산다면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주택에 살면? 주택에 쇠창살이 설치되어 대피가 안 되면? 스프링클러가 없으면? 자다가 불이 나면?


현장은 늘 똑깥지 않음을 명심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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