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첫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20년 전 나의 「지금 이 순간」
성악은 너무도 어려운 장르였다. 수년 동안 익숙해진 습관을 모두 버리고 새로운 길을 뚫는 작업이 필요하다. 숨 쉬듯 흘러가는 단순한 일상이 한순간에 바뀌게 된다면 얼마나 힘들까. 나는 곡의 단 한 음절도 제대로 넘기지 못한 채 수없이 좌절했었다.
그랬던 내게 노래연습장은 도피처이자 놀이터였다. 열어놨던 목을 닫아버리고 마음대로 노래를 불렀다. 마이크를 입에 갖다 대었다 뗐다 하면서 온갖 기교를 다 부렸다. 가요는 소소한 일탈이자 행복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편한 것만 좇을 수 없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었다.
그즈음이었을까. 뮤지컬 넘버를 처음 접하게 되었던 때가. 바로 「지금 이 순간」이었다. 어떻게 어디서 처음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의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희망, 기쁨, 전율, 감동이 가득했다. 뮤지컬 전체 무대 중 어느 부분인지도 알지 못한 채 무작정 듣고 따라 불렀다.
꿈과 희망과 열정이 가득한 20대, 그러나 무엇하나 내 마음대로 되는 것 없던 방황의 시간들. 열정만 믿고 부딪히기에는 너무도 부족했던 그 무엇들. 나는 '지킬 앤 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을 내 마음에 안착시켰다.
그렇게 나의 애창곡은 하동균의 「그녀를 사랑해 줘요」에서 「지금 이 순간」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15년 전 나의 「지금 이 순간」
"지금 이 순간~ 내 모든 걸~ 내 육신마저 내 영혼마저 다~~ 걸고~~"
20대의 풋풋했던 나는, 이 곡을 희망에 가득 찬 어떤 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세레나데쯤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 느낌을 살려 축가로 수없이 많이 불렀다. 축가 단골곡 「지금 이 순간」은 나의 애창각 중 하나로 자리를 더욱 굳혀 갔다.
그런데... 그렇게도 많이 불렀던 곡의 원작인 「지킬 앤 하이드」는 왜 한 번도 보지 않았을까. 어이없지만, 정말 어이없지만, 이유는 단 하나. '비쌌기 때문'이다.
사 입는 옷에 들어가는 돈은 아끼지 않았고, 술값은 잘만 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문화예술에는 인색했다. 뮤지컬을 사랑하는 사람(예를 들면... 나의 아내?)이 이 글을 본다면 혀를 찰지도 모르겠다.
당시 나는 현장 공연의 감동이나 가치에 대해 잘 몰랐고, 제대로 가늠해 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비용만 잠깐 계산해 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뮤지컬은 서울에 가야만 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던 시절(실제로 지방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다.). 왕복 차비와 식비로 10만 원은 훌쩍 넘기고, 공연이 끝나면 자정이 되어 숙박까지 해야 한다. 티켓값까지 합치면 30~40만 원. 무료 공연이나 지역 공연 관람에 익숙했던 한 시골 청년에게는 너무 큰 지출이었다. 값을 지불할 용기도, 그만한 여유도 없었다.
5년 전 나의 「지금 이 순간」
(한 번도 본 적 없는) 뮤지컬에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된 건 바로 '이 순간'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 사람'때문이었다.
"(따르르르릉)(따르르르릉)(따르르르르릉)"
'아... 왜 전화를 안 받지?... 차였나...?'
얼마 전 직장 동료로부터 소개받은 여인에게 전화를 걸던 순간이었다. 그녀의 얼굴도 이름도 나이도 알지 못했다. 처음엔 거절했지만, 너무 끈질겼던 동료의 설득에 결국 연락처만 받아 들었고 며칠을 고민하다가 주말 저녁 전화를 걸기로 결심했었다.
"(따르르르릉~~~)"
잠시 후, 아름다운 여성의 목소리가 작은 스피커 구멍을 통해 들려왔다.
(삐~)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ㅃ"
"(뚝)"
나는 직감으로 알았다. '아... 이게 바로 차인거구나. 차였어. 차였네. 얼굴도 안 보고 차였네. 몇 초 걸렸지?'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죄송해요~ 제가 전화를 못 받았았네요."
"아~ 아녜요. 괜찮아요~ 바쁘셨나 봐요~"
"아~ 지금 서울에 뮤지컬을 보러 와서 전화를 받기가 어려웠어요"
그렇게 짧은 통화를 마치고, 우리는 처음 만나게 되었고, 그날 나는 알게 되었다. 그녀가 '뮤지컬 찐팬'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1년 뒤 우리가 평생 함께 하기로 약속한 그날, 나는 그녀를 위해 「지금 이 순간」을 불렀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연애를 하면, 결혼을 하면, 아이가 크면,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이 많았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 미뤄왔다. 핑곗거리는 넘쳐났다. 코로나라서, 시간이 안 되어서, 약속이 있어서, 아껴야 해서. 하지만 이제는 정말 미룰 수 없었다.
아내를 위해 지겹도록 반복되는 무료한 일상에 비타민을 한 방울 떨어뜨려 주고 싶었다. 더 이상 미루기 싫었다. 그리고 대망의 2025년 8월, 우리는 드디어 뮤지컬 공연을 보러 가게 되었고, 그것은 나의 인생, 첫 뮤지컬 관람이 되었다.
어둠이 깔리고, 한 남자에게 집중되는 조명. 입술, 마이크, 스피커, 그리고 내 귀를 타고 흘러 들어오는 묵직한 음성. '아! 이것이 바로 뮤지컬인가' 웅장한 무대세트는 누군가 젓가락으로 들었다 놨다 하는 것처럼 가볍게 움직이며 전환되었다.
익숙한 넘버의 반주가 나올 때는 몸이 들썩였다. (하마터면 따라 부를 뻔!). 공연 처음부터 끝까지 2시간 넘는 시간 동안 입을 계속 벌리고 있어 공연장 먼지의 8할은 내가 더 먹어버렸을 것이다. 닭살은 쉴 새 없이 돋았고, 피부는 감전된 것처럼 간질거렸다.
늦깎이에 성악을 다시 연습하고 있어, 배우의 호흡, 발성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이어폰으로는 느낄 수 없는 미세한 진동들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공연은 너무도 짧았다. 이제 뭔가 시작될 것 같았는데 끝나버렸다. 극 중 주인공이었던 최재림 님의 목소리는 귓가에 맴돌며 떠나지 않았다.
아내에게 "뮤지컬... 왜 이제 봤을까... 또 보고 싶다..."를 집에 가는 내내 중얼거렸던 것 같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차에서는 「지금 이 순간」을 다시 부르며 그때의 감동을 재현해 보...(기는 개뿔, 최재림 님의 고운 목소리가 지워지고 말았다.)
다시 「지금 이 순간」
지금 이 순간,
마법처럼
날 묶어왔던 사슬을 벗어던진다.
지금 내게 확신만 있을 뿐,
남은 건 이제 승리뿐
20년 전 애창곡이었던 이 곡의 가삿말처럼 나는 내 인생의 고난을 얼마나 많이 떨쳐낼 수 있었을까. 승리를 향한 나의 여정은 지금 어느 지점쯤 와 있을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흔들리며 여기까지 왔지만, 그래도 분명한 건, 나는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과거의 나에게는 미처 보이지 않았던 길도, 지금 이 순간, 조금씩 선명해지고 있다.
비록 아직 완전한 승리에 도달하지 않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그리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내 삶의 주인공은 언제나 나 자신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