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안전강사 선발, 강의 시연회를 마치고
학창 시절, 시험이란 단지 교육과정 중 한 부분이라고만 생각했다. 이 만큼 가르쳤으니 얼마나 알고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말이다. 그리고 성적으로 줄을 세우고 시험을 잘 보면 1등 못 보면 꼴찌. 이런 아주 1차원적인 생각만 했었다.
그런데 성인이 되자 아메바 같은 내 생각도 다행히 진화를 한 것 같다. 시험은 내가 알고 있는 내용과 모르고 있는 내용을 확인하거나, 경쟁을 하는 도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험 혹은 평가는 나의 성장을 돕는 도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목표가 있어야 우리는 성장한다. 망망대해에서의 목표 없는 노 젓기는 우리를 엉뚱한 곳에 데려다 놓는다. 하지만 목표가 뚜렷한, 이를테면 시험이나 평가와 같은 것을 목표로 노를 저으면 의외로 전보다 꽤 많이 성장하게 되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시험이나 평가에서 좋지 않은 성적을 내었다 하더라도 최선을 다한 시간만큼 우리는 반드시 성장한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성장하지 않는 것 아닌가?'라는 반문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해 주고 싶다.
"당신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때의 결과가 어땠는지 몸소 체험하셨습니다. 최선을 다 하지 않은, 혹은 못한 이유를 명확히 분석하고, 이와 같은 결과를 낳지 않기 위한 노력을 다음에 하셔야 합니다. 당신은 분명 어제보다 1mm라도 성장하셨을 것입니다"
오늘은 모처럼 타 지역으로 나가보았다. 대한산업안전협회에서 주관하는 교육에 출강을 할 강사를 선발하기 위해서다. 재료는 소방본부에서 제작한 표준교재였고 15분 분량으로 요약해 강의를 하면 되었다. 강의실(?)에 들어서니 개별 면접을 볼만한 정도의 작은 공간이 준비되어 있었다. 오전 순서는 총 6명이 진행했는데, 제비 뽑기 운이 없었는지 나는 6번 당첨. 먼저 하면 불리하지 않냐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중에 하면 긴장하는 시간만 늘어나고 강의 내용도 계속 꼬여버린다.(다른 분 강의를 들으니, 그것도 반복해서).
하도 긴장을 하고 있어서 스마트 워치를 보니 맥박이 100 이하로 떨어지지도 않았다. '이러다가 정말 없던 부정맥도 생기겠는데???' 거기다가 1번으로 등판한 분의 강의를 듣자마자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시작 전에 구수한 사투리로 밝게 인사를 나누며 긴장된다고 서로 고백하던 모습은 어디 가고, 갑자기 '전 국민이 공통적으로 쓸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은 단어 즉, 우리나라에서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을 사용'하는 프로로 변신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서울말은 없지만... 나도 교양 있다고!!!)
매번 우리 지역에서만 강의를 해 온 터라 다른 강사의 강의를 볼 기회가 전혀 없었는데, 정말 신선하고 충격적인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2번 타자도 긴장을 조금 하기는 했지만 자신의 경험을 살려 청산유수처럼 발표했고, 3번을 말할 것도 없고 4번 5번은 안 그래도 쿵쾅쿵쾅 뛰고 있는 내 심장에 마지막 비수를 꽂아버렸다.
"6번, 마지막이시죠. 앞으로 나오세요"
'나갑니다... 나간다고요~~~ 어유 떨려'
떨리는 마음을 꼬깃꼬깃 옷자락 속에 숨겨 놓고 마이크를 들었다. 긴장했던 탓인지 PPT 뒤로 가기 버튼을 한 다섯 번은 누르고, 마이크 소리도 세 번 정도 찢었다.(소릴 너무 질렀나) 개별면접장 같은 곳에서 한 50명씩 앉아있다고 상상하며 강의를 하고 있으니 참았던 현타도 세게 밀려왔다. 그렇게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갔고 제한 시간을 5초 정도 남기고 간신히 마무리를 하고 들어갔다. 시험이나 평가 같은 걸 받아보면 항상 드는 생각이 있다. '왜 꼭 끝나고 나면 아쉬움이 남을까'
집으로 내려가는 길에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 키랭이 잘했어?"
"아... 아직 오후에 하실 분들은 보지도 못했는데, 오전에 나 빼고 다 잘하시는 것 같아... 다 전문가들이야... 내가 너무 자만했나 봐"
"그래? 그래도 좋은 경험 했잖아. 고생했어. 준비 많이 했는데"
"그치? 근데... 또 생각해 보니까 그동안 다른 강사들을 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렇게라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은 기회였어. 배울 게 아주 많더라고. 어떤 강사는 목소리가 좋고. 어떤 강사는 설명을 아주 쉽게 잘하더라고. 어떤 강사는 아주 여유롭게 잘했어. 나랑 이야기할 때는 사투리 쓰다가 갑자기 강의시작하니까 서울말도 쓰더라고(엉 엉 엉)"
"서울말? 키랭이는?"
"나? 나는 그냥 냅다 지르고 왔지 하하하하하하하하(눈물...)"
"에이 뭐야~"
"그리고 또 이런 생각이 들었어"
"뭔데?"
"사람은 역시 평가를 받아야 되나 봐. 평가를 받기 전의 준비하는 과정은 괴롭고 평가를 받는 순간은 괴로운데, 이게 끝나고 나면 엄청나게 성장을 하는 것 같아. 시험, 콩쿠르, 평가, 대회, 모든 게 다 같은 원리인 것 같아. 뽑히던 떨어지던 정말 많은 것을 배웠어. 이따가 퇴근하고 봐~"
"붙을 거야. 걱정하지 마"
"글쎄 히히"
서쪽으로 낮게 깔린 태양이 눈을 찌르며 내 시야를 가로막는다. 운전 중이라 불편하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다. 흥분된 마음을 잠시 가라앉히고 천천히,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게 도와준다고 생각하니 고맙기 그지없다.
세상의 많은 불편한 것들도
때론 나에게 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