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기 내놓으라 하네
원래 조용한 주말일수록 태풍의 눈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더 들기 마련이다. 고요한 침묵과 어색한 공기가 지금 이건 가상현실이라며, 곧 사이렌이 울릴 거니 긴장하라며 귓가에 속삭이고 지나간다.
"화재 출동, 화재 출동"
예감은 이제 거의 70% 이상 맞다. 1년에 1%씩 맞아떨어지는 예감이 이제 무섭기까지 하다.
"고층건물 화재입니다. 건물 내 구조대상자 인명검색 및 연소확대 주력 바랍니다."
오늘은 또 어떤 열원이 건물에 불을 질렀을까 생각하며 현장으로 향한다. 화재진압대원으로 근무를 시작해, 어쩌다 보니 소방행정과와 예방 안전과를 거쳐 구급대원까지 돌아 화재조사관으로 근무를 하니, 현장을 바라보는 시각이 날로 날로 새로워지는 것을 느낀다.
화재진압대원으로 근무할 때는 당연히, 어떤 장비를 챙겨 어떻게 진입할지를 고민했다. 예방 안전과에서 교육과 홍보를 담당할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은 일을 널리 알리고, 안타까운 일은 어떻게 만들어 예방자료로서 홍보할까 주력했다. 구급대원일 때는 구조되어 나오는 환자들을 위해 주처치자를 도와 어떤 일을 할까 고민했다.
이제 머릿속엔 하나다.
왜 불이 시작되었을까
먼저 도착한 분대는 6층까지 단숨에 내 달렸다. 엘리베이터를 탔다가는 자신도 구조대상자가 되고 만다.
"로프 내려!"
공기호흡기 면체를 쓰고 숨까지 차니 목소리가 너무 커 순간 나도 모르게 무전기 소리를 줄였다.
대원들은 로프를 통해 소방호스가 올라오는 동안, 현장에 비치된 소화기 두 대를 사용해 초기 진화에 나섰다.
'진압이 시작되었구나... 6층이고, 인명피해가 없어야 할 텐데'
현장에 도착하면 늘 현장을 바라보며 환복을 한다. 조금이라도 더 초기상황을 눈에 담기 위한 버릇이기도 하다. 초기에 목격한 장면은 이후 화재조사를 함에 있어서 꽤 유의미한 정보가 되기 때문이다.
화재가 어느 정도 진압되자 나는 화재층으로 올라갔다. 이미 잿더미로 변해버린 현장은 매캐한 냄새와 검은 연기가 뒤섞여 과거 여기가 무엇을 하던 곳인지 분간하기조차 어렵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원인을 밝혀내는 것이 우리의 일.
"발화지점은 여기인 것 같아. 관계인은 뭐래?"
"특이점은 없어 보이는데... 엇 저건...!"
파트너와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감식에 몰두한 결과 발화지점에서 수많은 담배꽁초를 발견했다.
"선생님, 실례지만 여기서 혹시 담배를 태우시나요?"
"네... 그렇습니다만..."
발화지점 주변으로 다른 요인이 전혀 없고, 화재 직전 담배를 피웠다는 관계인의 진술과 현장에서 발견된 담배꽁초들이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
"선생님, 현장조사결과는 수일 내 나오겠지만 현장감식결과는 담배꽁초에 의한 화재로 추정됩니다. 앞으로는 조심하셔야겠습니다."
"아... 네... 죄송합니다. 그런데 저희 건물에 화재 난 거 혹시 다른데 이야기하셨어요?"
"네? 무슨 말씀을... 아마 시민분들이 SNS에 제보를 많이 하니 소문이 빨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아... 네..."
"아무튼 저희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40여 명의 대원들이 출동해 건물 내 10여 명의 시민들을 대피시키고 주변건물로의 연소확대를 막았던 화재 건은 그렇게 무사히 끝나는 듯했다.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키랭이, 쉬는데 미안. 집이야?"
"네, 무슨 일이세요?"
사무실 직원의 전화였다.
"아니, 그 관계인분 말이야. 소화기를 달라는데?"
"네? 다른 집의 소화기를 빌렸던 거예요?"
"무슨 소리야~ 그 소화기 그 건물 꺼고, 우리 대원들이 사용했잖아"
"네, 그렇죠?... 아니, 잠시만요. 화재가 난 건물의 관계인이 자기 소화기를 달라고 전화 왔다고요?"
"그렇다니까~ 내가 지역의 누구누구다. 그리고 내가 누구누구랑 아는 사이다. 너무 한 것 아니냐며. 어휴..."
가끔 유튜브에 물에 빠진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구조에 나서는 시민들의 영웅담에 이런 댓글이 달리는 걸 본다. '괜히 도와주다가 소송당하면 어떡하냐'라고 말이다. '심정지 환자를 돕다가 그 사람이 잘 못되면 어떡하냐'라고 말이다.
당연히 그럴 수 있지만 나는 믿지 않았다. 그걸 믿으면, 그걸 믿어버리면, 내가 아는 세상의 온도는 너무도 내려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잔인하기만 하다. 물에 빠진 걸 도와주었더니, 젖은 보따리 속 내용물까지 보상해 달라고 하는 영화가 실제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보따리장수의 정체는 건물주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영화의 장르가 바뀌어버린 것은 덤으로.
하지만 보따리 보상이 무서워서 돕는 삶을 포기할 수는 없다.
물에 빠진 보따리장수가 누가 됐든,
그들은 보호받아야 할 똑같은 국민이고,
나는 그들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 사명이 없었더라면 나는 진즉, 이 일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