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칠이
브런치의 아이디 namddang(남땡)은 홍양이 나에게 부르는 별명이다.
여기서 ‘땡’은 ‘땡칠이’의 줄임말이다.
지금 40대 이상의 독자라면, ‘땡칠이’하면 1989년에 개봉된 개그맨 심형래 주연의 ‘영구와 땡칠이’ 영화를 떠올릴 것이다.
이에 대해 기억이 가물가물하여 이 영화를 다시 찾아보니 당시 인기가 많았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서울 관객 수 43만 명으로 1989년 한국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는 ‘인디아나 존스 3’의 서울 관객 수 30만 명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였다고 한다.
땡칠이는 영화에서 영구가 기르던 개였는데, 놀랍게도 훈련받은 개가 아니라 그냥 동네 잡종견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동네 잡종견이 내 별명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는 영화 개봉 연도와 그 당시 대학생 때 있었던 술자리와 관련이 있다.
당시 대학 동기들과 시험을 마치고, 학교 앞 허름한 식당에서 감자탕과 소주를 마셨다.
기억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 시절에는 돈이 넉넉지 않은 대학생들을 상대하는 학교 앞 식당에서는 4명이서 감자탕 2인분만 시켜도 가능했다.
우리들은 감자탕의 뼈에 붙어 있는 살점 하나까지 깨끗이 발라먹으며, 냄비에 계속 물을 부어 덥히면서 각자 숟가락을 넣어 국물 떠먹으면서 소주를 마셨다.
우리는 버려진 뼈들을 보면서 개가 먹어도 이렇게 깨끗하게 발라 먹지 못할 거라며 웃으면서 마셨다.
식당 주인 할머니는 우리의 그 모습을 보면서 종종 계란말이를 서비스로 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식당 주인 할머니는 60대 중반이셨던 걸로 추정된다.
아마도 우리를 보면서 막내아들을 보는 심정으로 서비스를 주셨던 것 같다.
지금은 100세 가까이 되셨거나, 돌아가셨을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당시 장면이 머릿속에서 마치 영화처럼 재생되었다.
그렇게 기분 좋게 마시고, 지하철역으로 향하던 우리는 단골 호프집을 지나치다 자연스럽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바로 들어갔다.
우리는 돈이 부족하여 안주는 주문 못하고, 500cc 생맥주에 서비스로 주는 강냉이를 먹으면서 시험 끝난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런데 옆 테이블의 남녀가 서로 심각하게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그러더니 얼마 안 있다가 나갔는데, 그 테이블에 족발 안주가 거의 손도 대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종업원 누나가 테이블을 치우려고 왔을 때, “그거 저희 주세요!” 하니 종업원 누나는 웃으면서 건넸다.
강냉이에 생맥주를 마시는 우리는 갑자기 고급 안주가 생겼고, 신이 나서 더 마셨다.
아시겠지만, 족발 접시 가운데에는 돼지다리 큰 뼈가 있다.
나는 감자탕 뼈에 이어 족발 큰 뼈를 손에 들고, 거기에 붙은 살점까지 뜯어먹었다.
그렇게 즐거운 술자리를 마치고, 나가는데 나의 손에는 아직 그 큰 뼈를 들고 있었다.
큰 뼈에 잘 떨어지지 않은 살점들을 뜯어먹으면서 지하철역까지 걸어간 것이다.
그 뒤로 친구들이 나를 땡칠이라 부르고, 이를 홍양에까지 고자질(?)을 하였고, 그 뒤로 ‘남땡칠’이라 부르다가 줄여서 '남땡'이 되었다. 나는 남 씨 성이다.
만일 이 장면이 2010년에 있었으면 나는 황해 영화에서 나오는 ‘면가’(김윤식 분) 별명을 가졌을 것이다.
지금도 가끔 홍양과 감자탕에 소주를 마신다.
홍양은 돼지고기를 잘 먹지 않고, 함께 나오는 우거지와 감자만 먹는다.
덕분에 뼈는 모두 내 차지가 된다. ㅎㅎ
홍양은 내가 뼈를 발라먹는 모습을 보며 감탄을 하며 말한다.
“정말 땡칠이가 따로 없네!”
큰 뼈가 어느새 여러 개의 작은 뼈로 분해되고, 살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돈이 넉넉지 않은 학생 시절에 그렇게 먹던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 같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문득 감자탕에 소주 한 잔이 하고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