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
올해 첫날, 가족들에게 나의 브런치스토리를 공개했다.
마침 연말 휴가로 귀국한 딸이 읽더니 처음엔 "대박!"이라며 재미있어하다가, 이내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유를 물어보니, 본인 이야기가 별로 없어서라고 했다.
그러면서 “마치 외동아들만 있는 가족 같아 보인다”는 말을 덧붙였다.
앞서 얘기한 적 있듯이, 딸은 미국에서 학업을 마치고 작년 초부터 현지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오랫동안 외국에 있어서 자연스럽게 우리와 함께 할 시간이 줄어들었다.
집에 와서 보니, 냉장고 문에 붙어 있던 우리와 아들이 함께 찍은 스티커 사진이 뒤집혀 있었다.
범인은 딸이다. 조금은 장난기 어린 삐침처럼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멀리서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의 표현 같기도 했다.
그래서 오늘은 딸 중심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우리 가족은 첫째 아들과 둘째 딸, 이렇게 네 식구다.
두 아이 모두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나의 근무지 변경으로 첫째는 2살에, 둘째는 갓 태어나 울산으로 가서 두 아이 모두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그곳에서 자랐다.
첫째는 팔삭둥이로 태어났지만 크게 손이 가지 않았던 순둥이였다.
반면, 둘째는 태어나자마자 100일 동안 밤낮이 뒤바뀌는 생활을 하며 나와 홍양을 애먹였다.
낮에는 천사와 같이 자고, 밤에는 악마와 같이 계속 칭얼거려 우리를 잠을 안 재우고 괴롭혔다.
첫째는 성장 속도가 또래보다 다소 느렸다.
첫걸음, 기저귀 떼기, 이유식 시작 등 모든 과정이 또래보다 늦었지만, 아이 본인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천천히 자랐다.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한량으로 손색없었겠다" 싶을 만큼 여유로운 아이였다.
그래서 그런지 키는 아주 쑥쑥 자라 지금은 188cm 정도이다.
나와 홍양 키와 비교하면 돌연변이에 가깝다. 스트레스가 없으면 키가 쑥 크나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는 첫째와는 반대로 걸음마도, 말도, 모든 면에서 또래보다 빨랐다.
잘 먹는 건 물론이고, 뭐든 가리지 않았다.
다만 예민하고, 완벽주의적인 성향 탓에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키는 또래 평균보다 작다.
둘째는 오빠와 2년 터울인데, 늘 오빠와 똑같이 하고 싶어 했다.
오빠가 5살에 유아스포츠단에 들어가자, 3살에 불과했던 둘째도 보내 달라고 고집을 부렸다.
단장님께 부탁드려 4살이 되어 1년 일찍 입단시켰다.
1년 일찍 입단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반 5살 아이들과 전혀 차이 없이 잘 생활하였다.
둘은 성격도 극과 극이었다. 첫째는 늘 느긋하고, 둘째는 늘 부지런했다.
첫째는 가끔 "넌 생각이란 걸 하고 사니?" 싶을 만큼 태평했고, 둘째는 자신이 할 일은 무조건 마무리하고서야 잠드는 아이였다.
첫째가 초등학교 알림장을 가져오면, 둘째가 이를 확인하고 엄마에게 준비물을 연락해 주곤 했다.
자신은 숙제와 시험 준비를 끝내야만 잠자리에 드는 성격이었다.
지금도 둘의 성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유아스포츠단에 다니던 시절, 아직 스마트폰이 없던 때의 에피소드가 있다.
첫째는 공중전화의 수화기를 들 수 있을 정도로 키가 컸지만, 전화번호를 외우지 못했다.
반면 둘째는 전화번호를 외우고 있었지만, 키가 작아 수화기를 들 수 없었다.
그래서 둘은 합작했다.
첫째가 동전을 넣고 둘째가 불러주는 번호를 누른 뒤, 통화가 시작되면 둘째가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연락을 했다.
덕분에 둘은 항상 붙어 다녀야 했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첫째와 둘째가 이렇게 다른 이유를, 나는 애들이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당시 주변 환경 때문이라 생각한다.
첫째가 태어날 때는 나와 홍양은 특별히 큰 스트레스 없이 태교 음악도 자주 들려주며 안정된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첫째는 악기 재능이 뛰어나 바이올린, 피아노, 기타를 두루 잘 다룬다.
키도 쑥쑥 컸고, 운동신경도 좋다. 공부 빼고는 뭐든지 잘하는 편이다.
반면, 둘째가 뱃속에 있던 시기엔 상황이 달랐다.
첫째 처형이 암 선고를 받고 입원해 있었던 상황이라 홍양은 많은 걱정과 슬픔을 겪었다.
스트레스 탓에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그러한 영향 때문인지 둘째는 태어나면서부터 예민했고, 아토피도 심했다. 지금도 피부가 아주 좋지는 않다.
아이들은 엄마 뱃속에서도 세상의 분위기를 느끼는 것 같다.
둘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첫째는 서울 둘째 이모집으로 가고, 둘째는 미국에 셋째 이모집으로 갔다.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성장했지만, 각자의 서로 다른 개성과 장점을 가지고 잘 커주었다.
(한줄평) 글 쓰면서 갑자기 생각났는데 이제 둘 다 어엿한 직장인 되었으니, 그간 그들에게 투자했던 돈을 서서히 회수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