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비키
오늘은 지난주 금요일 퇴근길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
금요일이면 나는 서울 사무실에서 울산 집으로 퇴근한다.
주말부부이기 때문이다.
금요일 오후부터는 이미 마음은 주말 모드이고, 즐겁다.
반면,
일요일 오후부터는 이미 마음은 주중 모드이고, 아쉽다.
예전에는 울산역까지 갔으나, 올해부터는 경주역에서 하차한다.
동해선 개통으로 인한 열차 시간 변경으로 경주역에서 ITX-마음으로 환승하여 태화강역에서 내리는 게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사실 환승한다고 해서 집에 도착하는 시간 차이는 크지 않지만, 홍양이 운전해야 하는 거리는 크게 줄어든다.
집에서 울산역까지 한 시간 걸리던 것이 태화강역까지는 20분 정도면 충분하다.
밤 운전에 대한 위험도 줄고, 기름값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에 환승은 나름 합리적인 선택이다.
버스를 타고 집에 갈 수 있는데 홍양은 굳이 나를 데리러 오겠다고 한다.
그 마음이 늘 고맙다.
함께 가면서 집에 가면 무슨 안주에 한잔할까 하는 고민하는 재미도 있다.
지난 금요일은 SRT나 KTX 앱에서 한파로 인한 열차 감속 운행 때문에 지연된다는 팝업 메시지가 계속 떴다.
아직 환승이 익숙하지 않아서 경주역에서 내려야 한다는 것을 깜빡하고 있다가 대전역에 도착할 즈음에서야 생각이 났다.
그때 방송이 흘러나왔다. "현재 한파로 인한 감속 운행 및 앞 열차 간격 조정으로 17분 지연되고 있습니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경주역에서 ITX-마음으로 환승해야 하는데, 환승 대기 시간은 10분이다.
17분 지연이면 환승이 불가능하다는 의미이다.
급히 KTX 앱을 열어 ITX-마음 열차 실시간 운행 정보를 확인했다.
이 열차는 강릉에서 출발해 부전이 종점이고, 지금 영덕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지연 표시가 없었다.
마침 지나가는 승무원에게 물어보았다.
“제가 경주역에서 환승해야 하는데요, 17분 지연이면 환승할 열차를 놓치게 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승무원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지금 지연은 천재지변이기 때문에 저희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환승 열차를 취소하고, 다른 교통편을 알아보셔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아.. 어떡하지? ITX-마음을 취소하고, 경주에서 울산까지 연장할까? 좀 더 가보고 결정할까?'라고 생각하며 결정을 못하였다.
일단 좀 더 가보기로 했다.
열차는 대전역을 출발하여 김천구미역으로 가고 있었다.
대전역과 김천구미역 중간쯤 되었을까?
ITX-마음 열차가 영덕역을 10분 늦게 출발했다는 표시가 떴다.
그런데 경주역 도착 예정시간은 6분 정도 지연된 21:03이었다.
열차가 지연되어 시간을 맞추기 위해 중간에 과속(?)을 하나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님 기관사 아저씨가 화장실이 급하던가.^^
반면, 내가 탄 SRT는 18분 정도 지연되어 경주역에 21:05에 도착 예정이었다.
차이는 단 2분.
운행 시간표 상 ITX-마음은 경주역에서 3분 정차한다고 하니 1분 정도 차이가 난다.
이 정도면 아슬아슬하게 탈 것 같았다.
경주역에 도착해서 내리니, 반대편에 이미 ITX-마음이 정차해 있었다.
다행히 경주역에서는 계단을 오르내릴 필요 없이 바로 맞은편으로 이동하면 되기에 시간은 충분했다.
더욱이 날씨도 추운데 환승열차를 기다리지도 않아도 되었다.
완전 럭키비키를 체험하는 순간이다.
숨 가쁘게 ITX-마음에 올라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열차가 출발하지 않았다.
‘왜 출발하지 않지?’라고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잠시 후, KTX가 경주역에 도착하였다.
알고 보니, KTX 환승객들을 기다려 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같은 KTX 계열이라 가능한 것 같다.
경주역에서 약 15분 정도 정차를 하고 출발하였다.
다음부터는 SRT가 아무리 지연되어도 걱정할 필요 없을 것 같다.
어차피 뒤에 올 KTX를 기다려 주기 때문이다.
이번 일을 통해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계획이 어긋날 수 있지만, 때론 상황이 나에게 불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깨달음(럭키비키?)을 얻었다.
앞으로 작은 변수가 생겨도, 걱정하기보다 흐름을 믿고 여유를 가져야겠다.
그날 밤 우리는 집에서 오뎅탕에 소주 한 병씩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