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방
오랜만에 동기들과 번개모임을 가졌다.
삼겹살에 소주 한 잔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친구가 요즘 아내와 각방을 쓰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친구도 이미 꽤 오래전부터 각방 생활을 해오고 있다고 한다.
사이가 나빠서가 아니라, 오히려 서로 잘 자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특히 그 친구는 술을 마시면 코골이가 심해진다고 했다.
그래서 아내와 합의 하에 술을 마신 날에는 각방을 쓰기로 했는데, 막상 그렇게 생활하다 보니 더 편해서 자연스럽게 각방 생활이 정착되었다고 한다.
예전 부모님 세대에는 부부가 각방을 쓰는 것이 마치 부부싸움의 연장선처럼 여겨졌지만, 요즘은 오히려 건강한 관계를 위한 선택으로 보는 시각이 늘어나고 있다.
코골이, 이갈이, 뒤척임, 취침, 기상 시간의 차이 등은 각자의 숙면을 방해할 수 있다.
수면의 질이 곧 건강과 직결되는 만큼, 각자의 공간을 존중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은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부부가 각방을 쓰는 것이 점점 보편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각방 생활이 곧 부부 사이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서로의 필요를 존중하며 대화를 유지하는 것이다.
함께 거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나눈 후, 편안한 잠을 위해 각자의 방에서 휴식을 취하는 게 부부관계를 더 원만하게 만들 수 있다.
아침이 되면 "굿모닝" 인사를 나누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훨씬 더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아직 홍양과 같은 침대에서 한 이불을 덮고 잔다.
하지만, 나도 피곤하거나 술을 마시면 코골이와 이갈이가 심하고, 홍양도 피곤할 때 코를 곤다.
서로의 숙면을 방해한 적도 많지만, 아직까지 각방 생활을 고민한 적은 없었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리가 주말부부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홍양이 갱년기를 겪기 시작한 지 3년쯤 되었는데, 마침 그때부터 주말부부가 되었다.
갱년기가 오면 갑작스럽게 몸이 화끈 달아오르고, 끈적한 땀까지 흘러 밤잠을 설치기 쉽다.
그때 나와 몸이 닿는 것만으로도 홍양은 예민하게 반응하는 날이 많았다.
각방으로 각자 편하게 잘 것인가? 잠을 좀 설치더라도 한 이불을 덮으며 같이 잘 것인가?
결국 주말부부 생활이 이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해 준 셈이다.
만약 주말부부가 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각방 생활을 심각하게 고민했을 것이다.
아니 각방 생활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주말에 함께 잠을 잘 때 홍양은 불편해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단 이틀만 견디면 된다.
더군다나 주말에 만나면 오랜만이라(?) 함께 한잔하며 취해서 잠이 들기 때문에 잘 깨지도 않는다.
이래서 ‘주말부부를 3대가 덕을 쌓아야 할 수 있다’라는 말이 나오는가 보다.
그렇다 해도 주말부부 생활을 하면서 평일에 가장 그리운 순간은 바로 한 침대에서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오늘도 수고했어’라고 다독이며 잠드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