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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FP 아내와 ISTJ 남편이 사는 얘기

홍양 장점

by namddang

어떤 사람들은 결혼 생활을 전쟁터에 비유한다.

설렘과 기대를 안고 시작한 결혼 생활은 시간이 지날수록 일상에 파묻히고, 서로의 단점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두 세계의 충돌이다.

이 과정에서 싸우고, 화해하고, 때로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헤어지기도 하고, 함께 하기도 한다.

나 또한 25년이 넘는 시간 동안 홍양과 함께 웃고, 울며 살아왔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나는 그 긴 시간 동안 홍양의 장점을 생각해 본 적이 몇 번이나 될까?

솔직히 말하면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남편들은 배우자의 장점을 말해보라 하면 어려워하고, 당황해한다.

어색하게 웃거나, 머리를 긁적이며 기억을 짜내려 애쓴다.

하지만, 단점을 물어보면 신기할 정도로 술술 나온다.

나 역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홍양의 단점만을 꼬집어 비판하고 불만을 품었던 적이 많았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 생각은 결국 나 자신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걸 깨달았다.


처음의 설렘과 두근거림은 사라졌지만, 홍양은 그 대신 세상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친구이자 동료가 되었다.

이제는 애정을 넘어선 일종의 전우애 같은 감정이 생겼다.

홍양과 나는 가장 많은 시간을 공유한 인생의 동반자이다.

서로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불필요한 기대는 하지 않는 단계에 이르렀다.


하지만 ‘잘 아는 사이’라는 익숙함 속에 끝난다면, 서로의 애정과 관심은 점점 식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홍양의 장점을 발견하고 칭찬하며 애정을 표현하는 것이 새로운 활력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홍양의 장점 20가지를 적어 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막막했다. 단점이라면 200개도 쓸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장점을 떠올리려니 쉽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글로 쓰기 시작하니 생각만 할 때보다 더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다가왔다.

홍양의 장점을 생각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당장 20개 밖에 열거하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싶었다.


1) 주말에 늘 한결같이 술 한잔하자고 한다. 가장 즐겁고 편안한 시간이다.

2) 외향적인 성격 덕분에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한다. 주변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한다.

3) 이 때문에 주변에 홍양과 자연스럽게 친해지는 사람이 많다. 뼛속까지 I인 나는 부러울 따름이다.

4) 벼락치기 공부에 아주 능하다. 순간의 집중력은 정말로 놀랍다.

5) 춤추는 걸 좋아한다. 요리할 때도 일단 흥얼거리면서 몸을 흔들고 본다

6) 거짓말을 하면 티가 난다. 어디 가서 사기는 못 칠 것 같다.

7) 어학능력이 뛰어나다. 역시 부러울 따름이다.

8) 언제나 아침뿐만 아니라 매 끼니를 챙겨준다. 요리를 잘못하는 나는 정말로 고맙게 생각한다.

9) 손이 크긴 하지만 요리를 잘한다. 예전 응팔 드라마에 덕선 엄마를 생각하면 된다.

10) 아이들을 좋아한다. 지금도 초등학생 아이들을 가르치며 보람을 느낀다.

11) 운동을 좋아한다. 운동을 하면 ‘또 해냈구나.’라는 성취감이 든다고 한다.

12) 잔병 치례가 적고, 건강하다. 운동을 열심히 하기 때문인 것 같다.

13) 예민하지 않고 무던하다. 덕분에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

14) 나의 시답지 않은 아재개그에도 잘 웃어준다. 고마울 따름이다.

15) 귀여운 옷이 잘 어울린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귀엽다.


20250222_074741.jpg 아들이 일본 여행 후에 엄마에게 사준 옷

16) 여성 정장보다 룰루레몬 운동복이 잘 어울린다. 편안한 모습이 좋다.

17) 초콜릿을 좋아한다. 어려운 이야기 하기 전에 초콜릿을 먹이고 하면 한결 낫다.

18) 나에 대해 관심 (집착?)을 적절하게 표현한다. – 이건 애매한 내용인데 왜 그럴 때가 있지 않나? 나에게 너무 많이 꼬치꼬치 캐물으면 귀찮고 대답하기 싫을 때.. 그런데 홍양은 일부러 조절하는지, 타고났는지 모르겠지만, 관심(집착?)도에 대한 균형을 잘 잡는다.

19) 돈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 주위에 남편에게 ‘돈, 돈, 돈’ 하는 배우자가 많다고 하던데.. 덕분에 나도 편하다.

20) 홍양은 신랑 복이 좋은 사람이다. (하하!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믿고 싶다.)


솔직히 단점을 더 많이 쓸 수 있지만, 상처만 남기고, 바로 이혼당할 수도 있다.^^

단점을 없애려 애쓸 필요도 없다.

홍양의 장점을 바라보며, 칭찬하기로 했다.

장점 20개를 써 봤다.

더욱 발굴하여 100개를 채우고 싶다.


우리가 함께 늙어가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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