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금리가 떨어져서 15% 밖에 안 하지만, 그래도 목돈은 은행에 넣어놓고 이자 따박따박 받는 게 최고야."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이 아빠가 했던 이 말은 부모세대의 재테크 철학을 잘 보여준다.
안정적인 이자 수익을 통해 노후를 대비하려던 그 시절, 아버지도 같은 생각을 하셨다.
은퇴 후, 퇴직금을 은행에 넣고 이자로 생활할 계획을 세우셨다.
하지만, 어머니가 정면으로 반대하셨다.
앞으로 금리는 계속 떨어질 것이므로, 은행 이자에 기대기보다는 상가를 사서 월세를 받아야 한다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는 탁월한 혜안이 있으셨다.
어머니는 단칸 월세 신혼방에서 시작해 아버지의 월급으로 근검절약 하며 가정을 꾸려 나가셨다.
그리고,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서울에 중형 아파트를 분양받으셨다.
이후에도 저축과 주식 투자로 자산을 불리셨고, 아버지의 퇴직금을 보태어 작은 상가를 구입하셨다.
여기에서 나오는 월세로 손주들에게 과자와 장난감을 사주셨고, 병원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입원비도 스스로 해결하셨다.
비록 부모님은 모두 일찍 돌아가셨지만, 노후 준비는 잘하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부동산이나 재테크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투자를 많이 한 것도 없다.
예전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 전에 홍양이 울산 중구에서 아파트 분양을 한다는 소식을 가져왔다.
홍양이 모델하우스에 직접 가보니 위치가 너무 좋고, 단지도 잘 조성이 된 것 같다고 하여 추첨에 넣어보자고 하였다.
당시 우리는 1순위도 아니고, 3순위로 들어가야 하고, 경쟁률은 44:1이었다. 그런데 이게 당첨이 되었다.
나는 내 명의로 당첨이 되었으니 내 덕분이라 하였고, 홍양은 자기가 정보 제공을 하였으니 자기 덕분이라 하면서 서로 투닥거렸다. 서로 술 한잔 하면서 "우린 함께 있어야 해."라는 이상한(?) 결론을 내렸다.
얘기가 길어졌는데 여하튼 우리에게는 지방에 국민평형 아파트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은퇴 후의 현금 플로우는 국민연금과 개인연금, 약간의 주식 투자가 전부이다.
“꿈을 준비하는 우리”에서 얘기한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을 위해 필요한 비용을 모아야 하고, 동시에 우리의 노후 생활 대비도 해야 한다.
아이들에게도 늘 강조한다.
너희들도 직장인이 되었으니 재테크에 관심을 갖고, 경제 공부를 해야 한다고.
ISA/IRP 계좌를 만들어 꾸준히 저축하여 연금으로 활용하고, 주식 시장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꾸준히 투자하라고.
또한, 지금 주택청약을 넣어 주니 이를 증여라 생각하고, 관심을 가지면 작은 아파트라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우리는 너희에게 손을 벌리지 않을 테니, 너희도 우리에게 지원받을 생각은 하지 말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최근에는 또 다른 준비를 고민하고 있다.
바로 삶의 정리다. 웰다잉을 준비하고 있다.
당장은 아니고, 홍양을 설득해야 하겠지만, 아이들 어릴 때 쓴 일기장, 그린 그림, 받은 상장과 졸업장, 우리의 앨범도 하나하나 정리하고 버릴 생각이다.
책장과 책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눔 하거나 처분할 계획이다.
부모님의 유품을 정리하는 일이 쉽지 않았던 기억이 있기에, 나와 홍양은 가능한 한 가볍고 홀가분하게 떠나고 싶다.
얼마 전 유퀴즈 방송에 출연한 손숙/박근형 배우도 과거 사진을 비롯한 모든 유품을 정리했다는 이야기에 전적으로 공감이 갔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꼭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나나 홍양이 연명치료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절대 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도, 그리고 지켜보는 아이들에게도 큰 불행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웰다잉(Well-dying)이 점점 중요해지는 시대가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