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ENFP 아내와 ISTJ 남편이 사는 얘기

by namddang

긴 설 연휴가 시작됐다.

나는 첫째와 함께 울산 집에 내려왔다.

첫째는 울산에 온 김에 부산 국제 시장에 가서 씨앗호떡을 먹고, 영도의 흰여울 문화마을도 가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첫째는 내일 운전을 해야 하니, 오늘은 술을 마시지 말자고 엄마에게 말했다.

홍양은 그 얘기를 듣자마자 눈이 동그래지며 반문하였다.

"왜? 부산 가는 거랑 오늘 마시는 게 무슨 상관인데? 오늘은 연휴 첫날인데 어떻게 그냥 보내? 그럼 넌 안 마셔도 돼. 난 남땡이랑 마실 거야."


그러면서 홍양은 백화점에서 와인 세일을 했다며 12병짜리 한 박스를 사놨다고 하였다.

내가 놀라 "이걸 이번 연휴에 다 마신다고?" 하자, 홍양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어차피 모자랄걸? 두 박스 사려다가 참은 거야."


우리는 연애 때부터 술로 통했다.

내가 친구들과 한잔할 때도 홍양은 늘 함께했다.

누가 홍양 아니랄까 봐 그 모임에서 홍일점이다.

홍양은 그 자리에서 병권(?)을 장악하여 음주 독재자가 되었다.

친구들 술잔에서 술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밑장 깔지 마라!" 하며, 빈 잔을 확인해야만 다음 잔을 따라줬다.

친구들은 나보다 홍양이랑 마시는 걸 더 재미있어하며, “다음에 제수씨만 오고, 넌 안 와도 돼.”라고 하였다.

야, 너희들이 진짜 내 친구 맞니?


연애 시절 용인 민속촌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당시 분당은 시범마을 정도만 개발되었고, 판교는 거의 완전 시골이었다.

때문에 길이 별로 좋지 않아 잠실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오래 타고 갔던 걸로 기억한다.

민속촌을 한참 구경하다 출출해져 장터에 들렸더니 거기서 동동주와 파전이 있었다.

우리는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동동주와 파전을 시켰다.

몇 통을 비웠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버스 종점에서 기사 아저씨가 우리를 깨웠던 순간은 생생하다.

아직 해도 안 졌었는데…

지금도 용인 민속촌 장터에 동동주와 파전이 있는 것 같다.

언젠가 다시 가서 그날을 추억하며 한잔 해야겠다.


결혼 후에도 홍양의 술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늘 이렇게 말했다.

"오늘 너무 힘들었어. 노동주 한잔 해야지^^."

홍양은 북한 노동당원도 아니면서 노동주를 꼭 마시고, 전군의 간부화를 외치듯이 전(全) 음식의 안주화를 외쳤다.

준비가 되면 홍양은 말했다.

"자자, 놀면 뭐 해. 한잔해야지!"


우린 만나면 늘 마셨다.

밥 먹으면서 마시고, 영화 보고 마시고, 놀러 가서 마시고, 그냥 할 일 없어서 마시고, 누가 오면 반갑다고 마시고, 세상이 열받게 하면 화풀이로 마시고, 기분 좋으면 좋다고 마셨다.


만약 우리 중 한 사람이라도 술을 싫어했다면, 지금까지 함께 할 수 있었을까?

이제는 예전만큼 많이 마시지는 못하지만, 술에 대한 애정만큼은 여전히 각별하다.


우리를 아는 사람들은 우리를 주(酒)님이 맺어준 커플이라고 한다.

주님이 맺어준 커플답게 그동안 우리 참 많이도 마셨다.


앞으로도 마시려면, 우리 운동 열심히 하자!!


아.. 어제 음주 때문에 이 글을 오늘 발행한다.

음주는 좋지만, 다른 일이 지장을 받으면 안 되지.

반성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ENFP 아내와 ISTJ 남편이 사는 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