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의 여행 추억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간 머리 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젊은 시절, 익숙하게 흥얼거리던 만화영화 주제가다.
홍양도, 나도 재미있게 보던 '빨간 머리 앤'.
그런데 이상하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정주행 한 적은 없었다.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늘 '언젠가는 제대로 봐야지'하고 생각만 해왔다. 조만간 정말로 정주행 할 예정이다.
그렇게 마음먹은 건, 문득 그 여행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금은 20대 중반이 된 딸과 함께, 10년 전 다녀온 캐나다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PEI) 여행.
빨간 머리 앤과 저자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그 섬에서 딸과 함께 보낸 시간은 지금도 내 마음속에 따뜻하게 남아 있다.
캐나다에서 가장 작은 주, PEI.
그 섬의 중심 도시 Charlotte-town(샬럿타운)에는 19세기 정취가 물씬 풍기는 건물들이 고즈넉하게 남아 있었다. 그 시내에 'Confederation centre'에선 40년 넘게 '빨간 머리 앤' 뮤지컬이 무대에 오르고 있었다. 지금은 50년이 넘었겠지.
우리가 그곳을 찾았던 2014년은 개관 50주년이 되는 해였다.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렸고, 일본 애니메이션 덕에 일본인 관광객이 많아 박물관이나 우체국에는 별도 일본어 안내문이 붙어 있을 정도였다.
PEI는 '빨간 머리 앤'으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곳곳에 몽고메리와 '빨간 머리 앤'의 기념관, 박물관 등이 흩어져 있다.
딸과 함께 뮤지컬을 보고, PEI 명물인 카우스(Cow's) 아이스크림도 맛보고, 저녁엔 바닷가재 요리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빨간 머리 앤의 초록 지붕 집, '그린 게이블스'에 들러 함께 사진도 찍었다. 그 순간들은 지금도 선명하다. 평생 간직할 소중한 추억이다.
그때 딸은 15살이었다.
그때는 내가 일정을 짜고, 짐을 챙기고, 보호자의 마음으로 여행을 다녔다. 여행의 모든 것을 내가 챙겼다.
비슷한 시기의 오사카 여행도, 교토의 골목길도 그렇게 둘이서 여행을 했다.
그런데 이제는 딸이 20대 중반의 성인이 되었다.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다.
아마도 예전처럼 단둘이 여행을 떠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설령 함께 간다 해도, 그 여행은 순탄하지 않을 것 같다. 부모와 성인이 된 자식 간의 여행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때로는 오해가 되고, 사소한 말이 다툼을 유발하기도 한다.
단둘이는 아니지만, 예전 여행에서 실제 그런 일이 있었다.
딸의 가방이 무거워 보여 "내가 들어줄게"라고 몇 번 말했더니, 결국 딸의 인내심이 폭발했다.
"괜찮다고 했잖아!"
그 순간 나는 서운했고, 딸은 답답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것 아닌데, 그때는 '별 것' 사건이었다.
그럴 땐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다. 한번 정도 묻고 아니라고 하면 그냥 두어야 한다. 더 말을 걸면 안 된다. 기다리는 게 정답이다. 표정이 어두워 보일 땐 "왜 그래?"보단 그냥 가만히 옆에 있는 게 낫다.
조금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웃게 되니까.
예전에 장인어른, 장모님, 처제와 함께했던 일본 여행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자식은 뭔가 해드리고 싶은데, 부모는 부담스럽고 미안해서 거절한다. 그 어긋남이 어색한 분위기를 만든다. 가족이 가장 가까운 사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역지사지는 더 어렵다. 서로를 위하려던 말이 어긋나며 다투는 경우가 많다.
나태주 시인이 딸과 함께 여행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정말로 기회가 주어질 수 있을까?
아마도 내가 너무 나이가 든 사람이 되어 그 꿈을 조용히 접어야 할 듯싶다."
그 말을 들은 뒤로, 나는 종종 생각하게 된다.
이제는 자식들과 여행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들의 여정을 지켜봐 주고 응원해야 할 때라는 것을.
요새 애들에게 가끔 듣는 말이다.
"내가 알아서 할게!"
그 말은 이제는 정말로 한걸음 물러서야 할 때가 되었다는 걸로 들린다. 그만큼 컸다는 뜻이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허전한 마음도 든다.
홍양과 곧 이런 얘기를 할 것 같다.
"남은 인생, 우리 둘이 잘 살아보자고. 혼자 일찍 가기 없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