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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mddang Nov 19. 2024

ENFP 아내와 ISTJ 남편이 사는 얘기

자수성가

울산에 와서 둘째가 어린이 집에 보낼 수 있는 나이가 되자 홍양은 육아 졸업을 선언하였다.

언제까지 나의 수입만 바라볼 수 없다며, 자기 계발을 하여 돈을 벌어보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백화점 문화센터를 다니고, 얼마 안 있다가 울산대학교 평생교육원의 유아 영어 한 학기 강좌를 신청하며 나에게 등록금 투자를 하라고 하였다.

나도 홍양이 뭐든지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적극 지원한다고 하였다.


그 강좌 마지막 주에 호주 연수 1주가 포함되어 있었다.

필수는 아니지만, 현지 체험에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육아 졸업을 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아이들에게 손이 많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홍양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나는 회사에 1주일 휴가를 내고, 아이들을 돌보겠다고 했다.


비용 낭비가 아니고, 투자 관점에서 보자고 설득하여 연수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렇게 홍양은 호주 1주 연수를 다녀왔다.

그러고 나서, 울산의 유치원에 영어 교재 및 학습지를 공급하는 업체에 취업하여 유치원 영어 강사로 활동하였다.


홍양은 5녀 1남에서 넷째다.

1남이 막내이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의 아들 선호 사상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처남이 넷째 전에 태어났다면, 지금의 홍양은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결혼할 때 그 집안의 첫째 사위였다.

지금도 사위는 총 2명이다.


우리가 결혼하고, 몇 년 뒤에 셋째 처형이 미국 유학생과 결혼하여 미국으로 갔다.

그리고, 우리 둘째와 3년 차이로 딸을 낳았다.

손위 동서는 가난한 유학생이었고, 비정규직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셋째 처형은 한국에서 전문의였고, 미국 생활비를 벌기 위해 매년 3~4개월 정도를 딸과 함께 울산 우리 집에 와서 병원 파트타임 의사 알바를 하였다.

그러다가 미국 의사고시를 준비하였고, 놀랍게도 한 번에 패스를 하였다.


이후 하와이 병원에 1년 인턴 계약으로 취업을 하게 되었고, 손위 동서는 직장 때문에 미국 본토에 있어야 해서 떨어져 살게 되었다.

하와이로 옮기면서 셋째 처형은 홍양에게 아이들과 같이 살자는 제안을 하였다.

둘째와 3년 차인 조카를 돌보면서 우리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 해외 경험도 하고, 좋을 것 같다는 이유였다.


홍양도 하와이 대학 랭귀지 스쿨을 알아보고 지원하였다.

랭귀지 스쿨 F1 비자가 있으면 아이들 초등학교는 무료로 다닐 수 있었다.

당시 우리 아이들은 초등학교 3학년, 5학년이었다.

나는 적극적으로 찬성하였다.

이렇게 우리는 1년간 기러기 부부로 살았다.


지금 홍양은 그때 하와이 생활이 고생스러웠다고 한다.

이유는 아이들도 돌봐야 하면서, 랭귀지 스쿨도 다녀야 하고, 집안일도 해야 하고, 돈도 넉넉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와이는 여행하기에 좋은 곳이지만, 생활하기에는 좋지가 않다.

물가도 비싸고, 특히 한국의 20평도 안 되는 아파트 렌트비가 한 달에 200만 원이 넘었다.

약 15년 전임에도 불구하고…

셋째 처형 인턴 월급이나, 내가 보내주는 생활비로는 많이 부족하였다.


그래도 홍양은 아이들을 잘 돌보고, 본인 공부도 열심히 하고, 랭귀지 스쿨의 일본, 대만 등의 국제 학생들과도 잘 어울렸다.

당시 랭귀지 스쿨에서 홍양이 가장 나이가 많았다고 한다.

나의 소심한 성격으로는 못했을 텐데 홍양의 이러한 성향이 부럽다.


이러한 경력을 기반으로 지금 홍양은 조그마한 영어 학원을 운영하고 있고, 지금도 직접 초/중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학부모들보다도 훨씬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입소문이 나서 완전히 자리를 잡은 것 같다.


울산에 와서 자수성가를 한 셈이다.

나는 홍양의 이러한 활동력이 존경스럽다. 

나와는 다른 사람이다.


하지만, 위의 사진과 같이 허당미가 있다.

사진과 같이 하기도 쉽지 않을 텐데… 

손이 많이 가기도 한다.


하지만, 공통점도 있으니 밥을 먹다가 서로 눈을 마주치면 말없이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냉장고에서 초록색 병을 꺼내온다.

우리 사이에 맛있는 건 뺏어 먹어도 용납이 되지만, 마지막 남은 술잔을 뺏어 오는 건 금기 사항이다.


지금도 자기 전에 가끔 팔베개를 해준다.

그때 홍양의 자는 모습이 예쁘다.

자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 같은 남자를 만나서 고생을 하는 것 같아 미안함이 밀려올 때가 있다.

하지만, 자다가 다리가 내 배위로 직하강을 할 때에는 미안함이 없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한 문장 코멘트

부부는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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