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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 부부와 진주 여행

by namddang

이번 주말에 삼겹살 부부와 함께 진주로 여행을 다녀왔다.

삼겹살 부부와 그동안 군산, 대천, 안동, 영주, 익산, 포항, 강릉, 전주, 문경, 상주를 다녀왔고, 이번에 진주였다.

금요일 밤에 울산에 도착하여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토요일 아침 진주로 향했다.


진주하면 가장 먼저 임진왜란의 진주성이 떠오른다.

나는 여행지에 국립박물관이 있으면 꼭 가보고 싶다. 국립박물관이 있다는 건 그 지역이 그만큼 깊은 역사를 품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진주국립박물관은 임진왜란 전문 박물관이었다. 전쟁의 기록, 무기, 병사들을 주제로 전시하고 있었다. 더욱이 박물관이 진주대첩의 중심지인 진주성 안에 있어 의미를 더하고 있다.


진주성은 임진왜란 3 대첩의 하나로 김시민 장군이 이끈 3,800여 명의 군사로 2만여 명의 왜군을 물리친 곳이다. 그 덕분에 곡창지대인 호남을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김시민 장군은 이 전투에서 전사했다.

바다에 이순신 장군이 있었다면, 육지에는 김시민 장군이 있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김시민 장군에게도 이순신 장군과 동일한 '충무공'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고 한다. (출처: 위키백과)

1년 뒤, 김시민 장군이 없는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는 왜군 10만여 명을 맞아 수많은 병사와 백성들이 학살당했다. 이때 논개가 적장을 안고 남강에 투신하였다.


나는 솔직히 논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우리가 배운 '충절 논개'는 시대의 요구에 맞춰 만들어진 이미지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분에 대한 애국 충절에 대해서는 절대로 폄하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전쟁 중에 수많은 여성이 강제로 왜군에 끌려가 수치와 분노 속에 살았을 것이다. 그렇게 논개도 강제 차출되어 왜장에 수청을 들었을 것이다. 논개 입장에서 보면 애국을 떠나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수치와 분노가 '너 죽고 나 죽자'는 선택을 하게 했을 것이다. 오히려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나라의 현실을 원망했을 것이다. 애국 영웅으로만 보기보다, 한 인간의 고통 측면에서 그분을 다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약 400여 년 전에는 왜군의 손에 수많은 사람이 죽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였지만, 현재 진주성은 국립 박물관과 함께 산책길과 숲이 너무나 잘 조성되어 있다.

특히 남강은 유등 축제로 유명한 곳인데 강변길과 함께 진주성 산책길은 마라톤 연습하기에 딱 좋다. 다음에는 운동화를 챙겨 들고 와서 달려보고 싶다.

특히 밤의 진주성 조명과 남강 위의 유등은 경주의 '동궁과 월지' 야경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삼겹살 부부와 함께 진주성 돌담길을 걷고, 야경의 진주성과 유등을 보면서 남강 강변길 산책을 하였다.


물론 진주 맛집에서 한 잔 하였고, 잘 꾸며진 카페에서 커피도 한 잔 하였다. 시원한 가을밤, 숙소 루프탑에서 야경을 보며 맥주 한 캔을 마셨다. 그날의 마지막은 근처 호프집이었다.

큰 기대 없이 갔는데 벽면에 LP판이 가득하고, 기타와 키보드가 놓인 작은 무대도 있었다. LP판이 아니라 유튜브로 틀어주긴 했지만, 신청곡을 받는 백발의 DJ (아마도 사장님인 듯)도 있었다. 요새 보기 드문 감성이 있는 호프집이었다.


지난번 얘기한 바와 같이 내가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이유는 순간을 기록하여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인터넷이나 유튜브로 진주성, 남강 강변길, 국립박물관을 볼 수 있다. 스포츠 중계 기술은 현장 못지않게 생생함을 전달하고, 대형 스크린과 입체 음향은 라이브 공연을 재현할 수 있다. 몸도 편하고, 티켓값도 아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직접 가보고 싶고, 직접 느끼고 싶어 하기 때문에 비용을 지불하면서 몸이 피곤해도 여행을 가고, 스포츠나 공연 현장을 찾아간다. 여행은 결국 그 순간의 느낌을 가지러 가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기록하여 저장하고 싶다.

진주의 가을 밤공기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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