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 같은 홍양
홍양은 양파 같다.
30년 넘게 알고 지냈지만, 여전히 새롭고 예측 불가능하다. 사람을 오래 알면 대체로 행동 패턴이 보이기 마련인데, 홍양은 여전히 내 예상을 비껴간다. 그것도 참 화낼 수 없게 말이다.
새벽 4시 10분.
카톡 알림이 울려 이 시간에 누구인가 했는데.. 역시나 홍양이다.
우리는 주말 부부이고, 둘 다 아침잠이 없어 새벽이면 곧잘 눈이 떠진다. 메시지 내용은 간단했다.
“지금 보낸 한글 파일을 워드로 바꿔줘. 오전까지.”
만드는 건 어렵지 않다. 문제는 서울에는 내 개인 노트북이 없다는 것이다. 회사 노트북을 써야 하는데, 회사 보안 규정 때문에 메일 송신이 번거롭다. 그래서 이런 사정을 조심스럽게 설명해 보냈더니, 돌아온 답장은 딱 네 글자였다.
“그럼 됐어.”
카톡이나 문자는 결국 글자로 그 사람의 감정을 예측해야 한다. 갑자기 한기가 느껴졌다. 이 네 글자는 분명 '삐진 버전'이다.
순간 직감했다.
'아… 이건 즉시 해서 드려야 한다.'
바로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새벽 5시 조금 지나 회사에 도착했고, 6시에 작업을 마쳐 메일과 카톡으로 파일을 보냈다. 보안팀 결재는 출근 이후에 따로 올렸다.
9시쯤 홍양에게 다시 카톡이 왔다.
"안 된다면서 어떻게 했어?"
'그럼 됐어'에 삐짐이 느껴져 눈썹 휘날리게 보냈다고 했다.
"아닌데.. 나는 조깅 약속이 있어 급하게 나가야 해서 그렇게 보낸 건데?"
음... 나의 예측은 또 틀렸다. 홍양은 도저히 종 잡을 수 없다.
어느 일요일 오전.
우리는 아침을 먹고, 커피를 즐기며 소파에 앉아 있었다.
홍양이 갑자기 어디선가 폼롤러를 들고 와 말했다.
"난 설거지할 테니, 그동안 이거 좀 닦아줘."
"예, 알겠습니다."
바로 구석구석 깨끗하게 닦아 드렸다.
홍양은 설거지를 마치고, 폼롤러로 한참 스트레칭을 했다.
요가도 하고 PT도 받더니, 폼롤러를 굴리는 몸동작이 꽤 능숙하다. 그 모습이 왠지 멋있게 보였다. 언젠가 나도 옆에서 따라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스트레칭을 끝낸 뒤, 폼롤러를 놓는 자리가 문제였다. 지나가다 조금만 스쳐도 '쿵'하고 떨어질 자리다.
그래서 말했다.
"여기 두면 좀 위험할 것 같은데?"
홍양이 말했다.
"응, 그러니까 조심해서 다녀."
헐.. 내가 조심해서 다니라고? 폼롤러를 다른 위치로 옮기는 게 맞지 않나? 그래서 나는 안전사고는 괜히 나는 게 아니라며 조치가 필요하다고 항변했다.
그러자 돌아온 단 한마디.
"조용!"
그 말 한마디에 내가 조심해서 다니기로 했다.
홍양 행동을 예측하려 할수록, 오히려 더 예측 불가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예측 불가함이 우리 사이를 더 돈독하게 만드는 것 같다.
때로는 양파처럼 까도 까도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때로는 럭비공처럼 통통 튀며 예상 밖의 방향으로 굴러간다. 나는 조금 당황하고, 가끔 속상하고, 그러다 또 피식 웃는다.
양파 같은 홍양이 좋다.
내일은 또 어떤 새로운 면을 보여줄지 은근히 기대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