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FP 아내와 ISTJ 남편이 사는 얘기

여행자로 걷는 서울

by namddang

지난 주말, 홍양과 나는 서울에서 작은 여행을 했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30년을 살았고, 홍양 또한 대학 시절부터 10년을 서울에서 보냈지만, 정작 경복궁이나 남산 타워 같은 대표 관광지는 한 손에 꼽을 만큼만 찾았다. 외국인들은 서울을 보기 위해 일부러 시간 내어 멀리서 오는데, 우리는 너무 가까이 있어서 그런지 오히려 무심했다. 홍양이 오랜만에 서울에 올라온 김에, 서울을 처음 만나는 여행자 마음으로 경복궁과 남산 타워를 둘러보기로 했다.


어릴 적 광화문과 해치상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같은 존재였다. 사직로와 세종대로가 교차하는 넓은 도로 건너편에 있었기에 그저 멀찍이 바라만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2023년, 광화문 월대와 현판이 복원되며 시민에게 공개되자, 마치 오래 보지 못했던 사람과 다시 마주하는 듯 새롭게 보였다. 조선시대에는 오직 왕만이 광화문 중앙문을 지날 수 있었다고 하는데, 나도 잠시 왕이 된 듯 중앙문을 지나 경복궁 안으로 들어섰다.


그 길에서 처음으로 해치상을 가까이에서 바라봤다. 여전히 이것이 해치인지, 해태인지, 혹은 사자인지 학술적으로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지만, 지금 우리는 자연스럽게 해치라 부른다. 비록 원래의 자리는 아니지만, 오랜 세월을 지나 다시 우리 앞에 편안하게 앉아 있었다.


일요일 오전의 경복궁은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외국인 관광객이 절반쯤 되는 듯했고, 그중 상당수는 한복을 입고 있었다. 아마도 무료입장 혜택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들이 한복을 즐기는 모습은 우리나라를 좋아하는 또 하나의 방식처럼 느껴져 흐뭇했다.


광화문을 지나 처음 마주치는 근정전 주변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지만, 그 이후의 동선은 조금 아쉬웠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안내가 부족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발길 닿는 대로 걷고 있었다. 건물들이 서로 닮아 있어 설명 없이 보면 '비슷한 한옥들이 여럿이구나' 정도의 인상만 남을 것 같았다. 추천 코스를 몇 개 만들어 안내판과 함께 제공한다면 관람을 더욱 재미있고 유익하게 할 텐데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궁궐 지붕 끝자락에 놓인 여러 인형 형상인 잡상에 대한 설명도 눈에 띄지 않아 아쉬웠다. 그저 지나치기엔 아까운 장식들이다. 요즘처럼 K 문화의 인기가 높을수록, 작은 안내판 하나가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더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잡상

남산 타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울을 360도로 조망할 수 있는 곳임에도, 지금 바라보고 있는 방향이 서울의 어느 지역인지, 저 멀리 보이는 산과 건물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안내는 부족했다. 서울을 처음 방문한 외국인은 물론이고, 지방에서 온 사람들도 어디가 어딘지 몰라 그저 한 바퀴 돌아보고 갈 뿐이었다. 설명을 듣고서야 비로소 고개를 끄덕이는 장면도 여러 번 보였다.


그럼에도 서울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사방으로 둘러 싸이고, 그 사이를 한강이 유려하게 흘러가는 도시. 흐린 날씨에도 서울은 그 나름의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맑은 날이었다면 더 아름답고 멀리까지 보였겠지만, 흐린 하늘 아래의 서울도 충분히 고유한 표정을 지니고 있었다.


오랜만에 서울의 주요 관광지를 걸으며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었다. '국제 도시'라는 수식어를 오래전부터 들었지만, 실제 현장에서 마주하니 예상보다 더 많았다.

파리나 런던, 뉴욕, LA와 견주어도 손색없는 관광 인프라를 갖추었고, 대중교통의 편리함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홍양과 손잡고 조금만 방향을 바꾸어 걸어가도 낯선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어쩌면 여행은 멀리 떠나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걸으며 익숙함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날 우리는 18km에 24,000여 보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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