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FP 아내와 ISTJ 남편이 사는 얘기

그 시절 같은 추억

by namddang

지난 토요일, 2년 만에 고등학교 시절 친하게 지냈던 여섯 명의 동창들을 만났다. 약속 장소에 하나둘 모여드는 얼굴들은 분명 2년 전보다 나이 들어 보였고, 체형도 조금씩 달라져 있었다. 누군가는 배가 좀 더 나와 있었고, 누군가는 머리숱이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모습은 잠시 낯설었지만,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 낯섦은 금세 사라졌다. 우리는 여전히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 중년의 아저씨가 되었지만, 자리에 앉자마자 시간은 자연스럽게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회사 이야기와 가족 이야기가 오갔고, 그 사이사이로 고등학교 시절의 장면들이 불쑥 끼어들었다. 함께 마주 보며 웃음꽃을 피웠다.

말끝에는 책임감과 피로가 자연스럽게 묻어났다. "요즘은 말이야"로 시작되는 문장들이 이어졌다. 그 안에는 회사 실적, 자녀들의 입시, 결혼 이야기, 그리고 건강검진 결과까지 뒤섞여 있었다.


그런데 분위기는 이상하게도 무겁지 않았다.

고등학교 여름 방학에 동해 바닷가로 무작정 떠나 텐트를 치고 포커만 쳤던 이야기, 대학 시절 ROTC를 마친 친구를 찾아가 소위 계급장 하나 믿고 술을 얻어 마시고 관사 바닥에서 잤던 이야기들이 테이블 위로 하나씩 올라왔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무모한 이야기들이었지만, '그 시절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


술잔을 기울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말이 나왔다.

"이제는 예전처럼 못 마시겠다."

그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한 잔, 두 잔이 지나자 얼굴이 빨개졌고, 다음 날을 걱정하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젊을 때처럼 무작정 버틸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중년이라는 단어가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그래도 모두 건강해 보이는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한 친구는 젊었을 때 큰 병을 얻어 생사의 경계를 오갔던 적이 있다. 회사도 3년이나 휴직하며 치료와 재활에 매달렸고, 지금은 누구보다 편안한 얼굴로 우리 앞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무너지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함께 느꼈다. 이제는 서로의 성공을 부러워하기보다, 무사히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에 더 큰 의미를 두는 나이가 된 것 같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예전보다 많은 것을 얻었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내려놓았다. 속도보다는 방향을, 경쟁보다는 균형을, 자랑보다는 안부를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 변화는 애써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며 자연스럽게 찾아온 것이었다.


헤어질 시간이 되어 밖으로 나오니 밤공기가 제법 차가웠다. 각자 다른 지하철을 타면서 "다음에 보자, 건강하자."라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고, 손을 흔들었다.

아마 다음에 다시 만나도 우리는 비슷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리고 또 웃을 것이다.


그 웃음이야말로 우리가 같은 추억을 가지고, 여전히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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