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먼저 말한다
얼마 전 일요일 아침이었다. 세수를 하려고 고개를 숙이는 순간, 코에서 피가 쏟아졌다. 처음엔 흔한 코피려니 했다. 휴지로 막고 잠시 고개를 들면 멈출 줄 알았다. 그러나 피는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양도 제법 많아 코 뒤로 피가 계속 목으로 넘어갔다. 한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지혈이 되었다. 아침의 소란은 그렇게 끝나는 듯 보였다.
그날 서울로 올라왔고, 월요일 하루를 무사히 마치는 듯했다.
서울 집 근처에 약속이 있어 오랜만에 칼퇴근을 했다. 거의 집에 다 왔을 즈음, 갑자기 콧물이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심코 훌쩍 들이마셨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불길함이 스쳤다. 또 코피였다. 이틀째였다.
휴대용 휴지로 코를 막고 집까지 뛰었다. 지혈을 했지만, 피는 계속 코 뒤로 넘어갔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피는 여전히 목으로 흘러갔고, 코를 세게 압박해서인지 눈에서도 피가 조금씩 배어 나왔다.
얼굴은 모두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순간이었다. 겁이 덜컥 났다.
곧바로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야간 진료를 하는 이비인후과 의원보다 종합적인 검사가 필요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응급실에서는 일단 코에 '전비공 패킹'을 해주었다. 긴 패킹이 콧속으로 밀려 들어가는 동안 너무 아팠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넣고 나서도 패킹 압박감 때문에 눈까지 욱신거렸다. 피검사는 정상 소견이었다. 일단 퇴원하되, 패킹 제거와 추가 처치는 이비인후과 의원에서 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다음 날 아침, 패킹을 하지 않은 반대편 코에서 다시 피가 났다. 결국 출근을 포기하고, 이비인후과로 갔다.
'전비공 패킹'은 최소 48시간은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그 이후에야 코를 지질지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문제는 이 패킹이 생각보다 훨씬 답답하다는 점이었다. 숨쉬기도 불편했고, 외관상 보기에도 썩 좋지 않아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혹시라도 회사 동료들의 밥맛을 해칠까 봐 점심도 함께하지 못했다. 신경이 온통 코에 쏠리니 배고픔조차 잘 느껴지지 않았다. 다이어트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추천할 만한 방법은 아니었다.
48시간이 지나 드디어 패킹을 제거했다. 코가 뚫리자마자 시원함이 몰려왔다. 그제야 콧구멍 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실감했다.
그러나 안도는 오래가지 않았다. 출혈 위치가 너무 뒤쪽에 있어 '후방 비출혈'이라고 했다. 마취를 하고, 코를 지지는 소작 치료가 필요하지만, 개인 병원에서는 어렵다고 했다. 대학병원 진료 의뢰서를 받았다. 일단 메로셀 두 개로 출혈을 막아두었다. 메로셀은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몸도 아프고, 지갑도 아픈 순간이었다.
그리고 뇌 쪽 출혈이 아닌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는 무거운 말을 들었다. 고혈압이 있는 사람에게 '후방 비출혈'은 특히 위험하다고 했다.
젊은 층에서는 '전방 비출혈'이 많은 반면, '후방 비출혈'은 주로 중-노년층에서 발생한다. 고혈압이나 동맥경화로 혈관에 문제가 생기면, 혈관이 많이 모여 있는 후방에서 출혈이 일어나기 쉽다고 했다. 출혈량도 많고, 출혈 부위를 찾기도 어렵다. 피가 코 뒤쪽으로 넘어가다 기도로 흘러가면 폐렴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차분하게 설명을 하시면서 겁도 함께 주셨다.
다행히 일주일 뒤 대학병원 외래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담당 교수님은 메로셀 패킹을 일주일이나 하고 있었다는 말에 적잖이 놀라워했다. 보통은 3일 안에 제거한다고 했다. 더 이른 예약이 어려웠고, 이비인후과 의원에서도 항생제를 처방해 주며 일주일 가량 버텨보라 했다고 말씀드렸다.
메로셀을 제거한 뒤, 내시경으로 코 안쪽을 자세히 살펴보더니, 이미 출혈이 멈춘 상태라 굳이 마취까지 하며 지혈 수술을 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다만, 오늘 패킹을 제거했으니 다시 코피가 날 가능성은 있다고 했다. 최소 일주일은 무리하지 말고 운동도 쉬고, 절대 안정을 취하라는 당부가 이어졌다. 콧속에 바르는 항생제 연고를 처방받았다. 이것 역시 보험이 적용되지 않았다. 하루 세 번, 사흘만 바르라고 했다.
지금 안정적인 일주일을 보내고 있다. 고혈압 약은 꾸준히 먹고 있었고, 수치도 나름 잘 관리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관리하고 있다'는 말만으로 안심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흔히 건강이 최고라고 말하지만, 대부분은 몸이 고장 난 뒤에야 그 말을 실감한다. 겨우 숨 쉬는 구멍 하나가 막혔을 뿐인데, 일상은 너무나 쉽게 흔들렸다.
몸은 생각보다 정직하다. 한계에 가까워지면 분명한 신호를 보낸다. 다만, 그 신호를 대수롭지 않게 넘길지, 진지하게 받아들일지는 전적으로 나의 몫이다. 이제 몸의 말을 조금 더 잘 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덧붙여, 이번 일을 겪으며 의료 용어에도 한자어가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비공, 후방 비출혈 같은 말이다. 언젠가는 이런 말들이 조금 더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로 바뀌기를 바란다. 아픈 사람에게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면 이해가 어려워 더 아플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