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가 서운함으로 변할 때
때로는 상대방을 위한다는 이유로, 정작 상대의 생각보다는 내 기준을 앞세울 때가 있다. 특히 부부 사이에서는 그런 작은 어긋남이 다툼의 원인이 되곤 한다.
우리는 주말 부부다. 내가 울산으로 갈 때도 있고 (대부분 그렇지만), 홍양이 서울로 올 때도 있다.
주말이 끝나고, 다시 각자의 도시로 돌아갈 때면, 늘 비슷한 장면이 반복된다.
홍양이 서울 왔다가 갈 때는 이것저것 많이 챙기다 보니 가방이 무거워진다. 물론 홍양은 울산역까지 차를 가져와 주차해 두고, 내가 수서역까지 데려다 주기 때문에 무거운 가방으로 힘들 일은 거의 잠깐일 거다.
그럼에도 나는 무거움이 마음에 걸린다. 남들이 보면 유난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내 눈에는 그 가방이 유독 무겁게 보인다.
그리고, 홍양이 주말에 서울 오면 보통 월요일 첫 차를 타고 울산으로 간다. 그러면 4시 30분쯤에는 일어나야 한다. 그런데 전날 저녁이면 어김없이 처제와 한잔을 한다. 나도 옆에 앉아 같이 마시기는 하지만, 보통 8시쯤 되면 정리하고, 슬슬 잘 준비를 하라고 한다.
하지만, 다음 날 일어나 보면 술병이 많이 비어 있다.
그만 마시고 빨리 자라는 내 말은 늘 가볍게 흘려버린다.
게다가 그날은 울산역에 차를 가져오지 않아 버스를 타야 하는 날이었다. 나는 홍양이 피곤할까 봐 울산역에서 택시를 타라고, 카드까지 쥐어 줬다. 하지만, 홍양은 버스를 탔다고 한다.
서울에서 오랜만에 동생을 만난 반가움도 있었을 것이고, 택시비도 아까웠을 것이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은 조금 서운하다.
나름의 배려가 통하지 않았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도 다르지 않다.
홍양이 일요일 오후에 울산역까지 태워 주겠다고 해도, 나는 굳이 버스를 타겠다고 한다.
서로 상대가 피곤할까 봐, 상대를 덜 힘들게 해주고 싶어서다.
고깃집에 가면 우리는 늘 상대 앞접시에 고기를 더 올려주려고 한다. 지나친 배려의 순간이다.
다만, 술 앞에서는 예외다.
술만큼은 서로 더 마시려고 눈치 싸움을 한다.
우리는 서로를 위한다고 말하면서, 각자의 방식으로 배려를 밀어붙일 때가 많다. 그 과정에서 서운함도 생기고, 때론 웃음도 남는다.
30년을 함께 산 부부지만, 아직 완벽히 상대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계속 조정하면서 동행을 해야 할 것 같다.
이번 주 월요일 새벽에도 홍양의 가방은 무거웠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잘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