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프로젝트
“이번 프로젝트는 주제 상관없이, 자유롭게 아무거나 해봐.”
디자이너라면 한 번쯤은 이런 이상적으로 보이는 기회를 받을 때가 있다.
그런데 막상 그 상황이 오면 묘한 감정이 찾아온다.
즐거움보다 먼저 오는 건 — 막막함이다.
평소엔 그렇게 자유를 외치고, 틀에 박힌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 말했는데,
막상 완전한 자유가 주어지면 이상하게도 해방감보다는 공포가 앞선다.
머리가 하얘지고, 손이 멈춘다.
‘아무거나 해도 된다’는 말은 듣기엔 유혹적이지만,
막상 그 ‘무한함’ 앞에 서면 오히려 방향을 잃는다.
그리고 ‘뭐든 가능하다’는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기준이 없다’는 공포로 이어진다.
점도 선도 사라진 곳에서는 어디로 걸어야 할지도 알 수 없다.
자유를 그토록 원했는데, 막상 마주한 건 해방된 내가 아니라,
어디서 있는지 모를 나 자신이었다.
규칙 위에 선 스포츠
체스, 카드게임, 축구, 테니스, 야구…
우리가 즐기는 대부분의 스포츠는 수많은 규칙으로 얽혀 있다.
그런데 그 게임 안에서 자유를 박탈당했다고 느낀 적이 있었던가?
아니, 아이러니하게도 그 반대로 자유와 즐거움을 느낀다.
모든 스포츠에는 한계를 규정짓는 규칙이 있다.
하지만 그 규칙은 통제의 장치가 아니라 자유를 가능하게 만드는 기준이었다.
정해진 기준 안에서 우리는 마음껏 움직이고, 전략을 짜고, 감정을 폭발시킨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자유란 도대체 무엇일까?’
고등학교 시절, 최고의 자유는
체육시간 운동장에 던져진 공 하나였다.
못 뛴다고 서로를 헐뜯었기도 하고,
잘해보자고 서로를 격려하기도 했다.
틀 안에서 자유롭게 느꼈다.
그 안에서 주체적으로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실패도 성공도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어쩌면 자유는 무한함이 아니라,
기준을 자각한 상태에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일지도 모른다.
과잉의 자유
한때, 꽤 많은 자유가 주어졌던 시기가 있었다.
1년 단위로 계약직이던 시절, 정말 악질의 프로젝트 리더를 만났다.
자신의 책임을 넘기며, 말로만 일을 하던 인물이었는데
계약연장을 핑계로 협박을 하고,
디자이너로써의 미래를 들먹이며 압박을 줬던 인물이다.
말하자면 수많은 아픔이 몰려오는 이야기들 뿐이지만,
당시 만 29세. 일본이라는 타지에서 겪는 불안감과 두려움에
결국 두 손을 들었고, 2주간의 휴가를 쓰고 한국에 부모님 몰래 들어왔다.
그렇게 병원 치료를 시작했다.
다행히 그렇게 그 인물과 떨어지나 싶었지만,
회사는 잔인하게도 또 붙여두더라.
[추후에 들은 소식이지만, 모든 사람을 괴롭혀서 더 이상 떼놓을 수도 없었단다]
그리고 겹쳐진 코로나.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하던 프로젝트에서 밀려나고
수많은 분노와 우울증 그리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온몸에 염증이 퍼졌다.
잇몸이 녹아내리고 도저히 하루하루 잠을 잘 수 없었기에 결국 7개월간 휴직을 했다.
그렇게 증오하고 싫어했던 회사였지만,
의외로 허락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사실 그건 정말 오랫동안 갈망하던 시간이었다.
이 지옥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와 해방을 누리게 되다니—
그 말만으로도 심장이 뛰었다.
하지만 정말 이상하게도 그 감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두 달쯤 지나자,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때 문득 들었던 생각은
‘아, 내가 회사에 완전히 조련당한 건가!?’
스스로를 비웃으며 억눌렀지만,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규칙이 사라진 삶은 생각보다 견디기 어려웠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으니 몸은 늘어지고, 생각은 흐려졌다.
언제 일어나도, 무엇을 해도, 누구도 나를 탓하지 않는 삶.
그 자유 속에서 나는 점점 흐트러졌다.
2달여를 뒤돌아보니, 나에게는 규칙이 없었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으니 몸은 늘어지고, 생각은 흐려졌다.
언제 일어나도, 무엇을 해도, 누구도 나를 탓하지 않는 삶.
그 자유 속에서 나는 점점 흐트러졌다.
규칙이 사라진 삶은 생각보다 견디기 어려웠다.
먹어도 허기지고, 자도 피로가 풀리지 않았다.
즐거움보다는 몽롱함이, 해방감보다는 무기력이 나를 지배했다.
누워 있는 것은 편한 게 아니라, 아픈 일이 되어버렸다.
사고는 멈췄고, 이유 없는 분노가 서서히 차올랐다.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주어진 자유는, 그저 또 다른 형태의 감옥이었다.
규칙을 잃은 몸, 방향을 잃은 마음. 그 속에서 나는 점점 무너지고 있었다.
내가 찾은 규율
이때 당시, 내 마음은 더 이상 자동차 디자인에 미련이 없었고,
다시는 휘둘리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새로운 길을 찾기 시작했다.
우선 자기 계발서를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자기 계발서에서 자주 나오는 문장들이 있다.
“작은 일부터 시작하라.”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을 개라.”
“청소하기, 스트레칭하기, 명상하기.”
뭐ㅡ 결론부터 말하면, 사소한 것 뭐라도 해라.
나는 그냥 '같은 시간에 일어나기'에 집중했다.
아주 단순한 규칙이었다.
당시의 나는 '주식'으로 한국에서의 생활비를 벌고 있었는데,
장 시작 전 1시간 전에 일어나기라는 규칙을 만들었다.
정해진 시간에 울리는 알람은 마치 ‘레드썬’처럼
내 늘어짐을 흐름을 강제로 끊어냈고,
갈길 잃은 나의 삶의 규칙이 천천히 현실로 들아왔다.
이때의 경험으로 나는 더 이상 내 의지를 믿지 않았고,
외부 장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환경을 조정했고, 내가 이루고 싶은 목표를 주변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말했다.
그리고 꼭 완수해야 하는 일들은 ‘내가 하지 않으면 멈추는 구조’로 만들었다.
그 안에 나를 던져버렸다.
흥미로운 건, 이런 것들이 ‘고통’보다는 오히려 희열과 활력을 줬다는 점이다.
사실 이런 규율이 스트레스가 될 때는
대개 내가 ‘충분히 할 수 있었던 일’을 ‘하지 않았을 때’였다.
하지만, 정해진 시간 안에 그것을 끝냈을 때,
몸에는 묘한 에너지가 돌고, 머릿속은 맑아졌다.
그때 비로소 느꼈다.
규율이 나를 억누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살아있는 자유로 이끌고 있었다는 것을.
참 아이러니하다.
나는 자유를 잃지 않기 위해, 스스로 규율을 만들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