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것 그리고 여기서 만든 것

브랜드의 역사 -3- 중세의 브랜드

by 비노

중세에 들어 유럽에서는 상인과 길드를 중심으로 조합원 고유의 마크를 사용하는 전통이 발달했습니다. ‘상인표’(merchant’s mark)는 상인이 자신이 판매하는 상품에 붙이는 고유한 문장이나 기호로서, 일종의 개인 로고 역할을 했습니다. 이러한 상인 마크는 도장과 문서 인장에도 등장하여, 문서의 봉인이나 묘비 등에 새겨지는 등 광범위한 식별 기호가 되었습니다. 나아가, 길드의 상행위를 보호하기 위해 각 지역의 상업 조합이나 수공업 길드는 의무적인 품질 표식 제도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중세 유럽의 제빵조합은 빵에 일정한 빵결 자국을 내어 어느 빵집에서 구웠는지를 식별하게 했고, 대장장이 조합은 생산한 칼과 창 등 무기에 장인의 개인 문양을 찍도록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14세기 잉글랜드에서는 “모든 무기는 제작자의 개인 표식 없이 판매할 수 없다”는 법령까지 있었고, 다른 제작자의 표식을 도용할 경우 법적으로 처벌받기까지 했습니다. 이러한 중세 길드 표식과 장인 마크는 현대의 품질인증 마크와 상표 제도의 전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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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인도의 '차야완'을 그린 그림 / (중) '유가침포' 광고 / (우) 장인의 이름이 새겨진 모술 금속공예


상표의 형태 또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문자, 그리고 도형이나 자연물 등의 상징물에 이어, 이를 보다 편리하게 기하학적으로 그려낸 상징들이 생겨나게 됨은 물론, 상징을 가공하고 새기는 방법 또한 다양해졌는데, 현재까지 남아 있는 이탈리아의 제지업체 파브리아노(Fabriano)가 13세기에 자사의 종이에 최초로 새긴 워터마크, 금속 세공에 널리 사용되었던 홀마크 등이 있었습니다. 1400년대 유럽에서는 후술할 문장(Coat of Arms)이 귀족의 것에서 점차 정교한 공방의 문장으로 확대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역사가 깊은 명품에는 아직 이러한 문장들이 남아 있기도 하죠. 이렇듯 자신들의 상품을 추적하고, 품질을 보증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러한 상징들은 활발한 교역에 힘입어 각각의 체계를 갖추게 됩니다.


이러한 상징들은 상품의 생산자와 출처를 구별할 수 있게 함으로서 일종의 진정성을 부여했습니다. 사람들은 새겨진 표식을 통해 상품이 어디서 왔으며, 누가 만들었는지 뿐만 아니라, 상표와 상품들을 비교하며 어떤 상품이 일을 잘 하는 장인의 것인지, 혹은 어떤 상품이 자신에게 잘 맞는지, 심지어는 얼마나 정직하게 만들어냈는지, 혹은 어떠한 뛰어난 사람 또는 재료가 특화된 곳에서 만들어냈는지를 기억해 낼 수 있었고, 이렇게 상징은 홍보의 효과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제작자의 이름이나 특정한 상징을 붙여 제품을 알리는 행위 또한 오래 된 것인데, 기원전 11세기 인도에서는 ‘차야완’이라는 예언자가 약초와 설탕, 꿀, 버터, 과일 잼과 기름, 향신료 등을 섞어 먹는 일종의 약재를 만들었는데, 인도는 이를 가장 오래된 형태의 ‘생산자 브랜드’라고 주장합니다. 11세기 중국 산둥성의 ‘유가침포(劉家針鋪 - 유씨 집안의 바늘 가게)’라는 곳은 동판을 활용한 인쇄물로 자신의 가게를 홍보했는데, 이는 현재까지 기록된 가장 오래된 인쇄 광고물에 해당합니다. 이 광고물에는 ‘약을 빻는 흰 토끼’를 가게의 상징으로 안내하고 있는데, 이 또한 브랜드와 유사한 상징물이라 볼 수 있을 겁니다.


상품의 출신지를 드러내는 일 또한 생산자 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습니다. 지금도 ‘특산물’이라는 개념이 있지만, 당시에는 무역을 통한 자원의 교환이 지극히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특정 지역에서 고품질의 자원을 가지고 만든 물건이라는 것은 상품으로서 엄청난 경쟁력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13세기 메소포타미아의 모술(Mosul) 출신 금속공 예술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알 마우실리(الموصلي)”라고 새겨 넣으며 출신지를 드러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13~14세기 초 사이 제작된 금속 공예품 중 최소 35점에 이르는 작품들이 27명의 서로 다른 장인들의 서명을 담고 있는데, 이들 중 여덟 작품에는 “모술에서 제작되었다”거나 “모술 통치자를 위해 만들었다”는 명문이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도 ‘다마스커스강’, ‘로크포르’, ‘티리안 퍼플’, ‘캐시미어’와 같이 원산지명이 그대로 어떤 생산품의 대명사로 살아남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브랜드가 나타낼 수 있는 ‘소유’와 ‘출처’를 가장 극단적으로 확장한다면 무엇이 될까요? 그것은 아마 인간과 영토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력’과 ‘영토’가 될 것이고, 이것이 고대의 브랜드적 상징이 얻게 된 마지막 기능입니다. 앞서 살펴본 고대 이집트 장인이 사용한 상징이 공식적인 지위를 대변했다고 하니, 이런 상징의 대물림은 곧 일종의 지위와 권력의 대물림으로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전에 도시 브랜드 상징의 역사에서 설명했듯, 아테네의 올빼미나 로마의 ‘S.P.Q.R’과 같은 상징들이 이미 고대 시대때부터 국가와 왕의 상징으로 사용되었고, 선사시대의 상징물 또한 엄밀히 말하면 개인이 아닌 부족의 소유를 나타낸 것이죠. 가장 간단하게는 왕가의 이름을 적어 넣은 모노그램이 있을 것이며, 이는 고대 그리스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권력이 독점으로 사용할 수 있는 상징물은 특권과 권력을 상징하는 것이었고, 그 아래에서 혜택을 얻는 사람들, 혹은 전쟁 과정에서 나와 적을 구분하고 사람들을 결집시킬 수 있는 일종의 민족성을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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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고대 로마와 로마인의 상징 'S.P.Q.R' / (우) 가장 오래된 '데링 롤의 문장'


이러한 권력의 상징이 가문의 문장 형태를 띄게 된 과정은 중세 시대 갑옷의 기능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전신을 철갑으로 두른 기사들의 투구는 당연히 시야를 제약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를 위해 갑옷은 보다 화려하고, 피아식별이 가능한 요소를 덧붙이게 됩니다. 영어로 문장을 뜻하는 ‘Coat of Arms’는 여기서 유래한 것이죠. 이 피아식별 요소들은 귀족 또는 왕의 가문에서 상징적으로 사용했던 동물과 식물, 그리고 색상의 조합 등을 담게 되며, 이러한 장식을 가장 두드러지게 할 수 있는 지점이 바로 방패였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유럽식 문장은 대부분 방패 모양을 기반으로 하게 됩니다. 그리고 중세에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던 봉건 영주의 시대만큼이나 이 문장은 비록 단순한 상징물에서 시작되었을 지언정 누구도 따라할 수 없도록 복잡하고 정교한 모양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시기의 브랜드와 유사한 상징물들은 대부분 사유재산의 형성과 제품 생산, 즉 ‘소유와 노동 그리고 지배’로 인한 자연스러운 결과물이었으며, 그 기능 또한 차별화된 소유권과 품질, 출처와 권력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상징물들은 함부로 복제할 수 없게 하도록 나름대로의 체계를 갖추고 있었으며, 장인이 손으로 직접 쓰거나 자르거나 도장을 찍는 등의 방식으로 표기되었고, 길드나 가문, 왕권 등 집단에 의해 보호됨으로서 독점적인 지위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 이 글은 ChatGPT의 도움을 (조금 많이) 받았습니다.


출처

Ruben Pater, <Caps Lock : How Capitalism Took Hold of Graphic Design and How to Escape from It> (Valiz, 2023).

Bastos, Wilson & Levy, Sidney. (2012). A history of the concept of branding: Practice and theory. Journal of Historical Research in Marketing. 4. 347-368. 10.1108/17557501211252934.

Moore, Karl & Reid, Susan. (2008). The Birth of Brand: 4000 Years of Branding History. Bus History. 4. 10.1080/00076790802106299.

권민,<유니타스브랜드 (Unitas BRAND) Vol.13 브랜딩> (바젤커뮤니케이션, 2010), P.25

http://contents.nahf.or.kr/item/level.do?levelId=ag.d_0005_0010_0060

김재영, <Brand And Branding : The Science of Branding> (비앤엠북스, 2007).

https://99designs.com/blog/design-history-movements/history-of-branding/

https://www.lcca.org.uk/blog/education/history-of-branding/

https://patrickgeider.medium.com/what-is-a-brand-a-brief-history-35f2e82f5cc9

https://brandalfblog.com/the-history-of-bra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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