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의 변곡점, 사람과 상품 그리고 상징의 분리

브랜드의 역사 -4- 근대의 브랜드

by 비노

근대에 일어난 역사의 세 가지 변곡점으로 르네상스와 대항해시대, 그리고 산업혁명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르네상스는 신본주의적이고 엄숙한 문화에서 벗어나 그리스/로마 시대에서 비롯된 인간 중심의 문화로 되돌렸고, 인본주의적 예술사조는 이전의 절제된 표현에서 나아가 보다 더 다채롭고 정교한 상징들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pieter-en-paul.jpg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배를 그린 그림


이 시기와 겹쳐, 항해술의 발전과 신대륙의 발견으로 열린 대항해시대는 인류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슬람과의 대립으로 인한 육로의 단절로 지중해 중심으로 머물러 있던 서구의 위상이 바다를 중심으로 새롭게 확장되었고, 탐험과 정복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죠. 그리고 이것이 브랜드에 있어서도 중요한 변곡점을 만들게 됩니다. 항해와 탐험, 그리고 식민지 개척과 경영이라는, 막대한 초기 투자 비용이 들면서도 국가적 규모의 부를 확실히 거머쥘 수 있는 거대 프로젝트를 위해 각 국가들이 무역 주식회사들을 만들면서 유럽에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큰 규모의 기업 집단이 형성된 것입니다.


물론 이전에도 ‘기업’으로 볼 수 있는 집단적 형태의 협업은 존재했고, 대항해시대 시기까지만 해도 중소규모의 길드와 은행, (비공식적인)주식 그리고 법인 등 오늘날 흔히 볼 수 있는 기업의 기초적 형태는 이미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어디까지나 패밀리 비즈니스, 종교 집단 내지는 전문적 동업자라는 비교적 좁은 관계 아래 있었습니다. 2006년에 한 차례 파산하기는 했으나, 가장 오래된 기업 브랜드로 알려져 있는 ‘콘고구미’도 이름에서조차 아직 집단(구미, 組)이라는 이름을 벗어나지 못했으니까요. 그러나 이 시기 설립된 동인도 회사 등의 무역회사들은 ‘회사’라는 조직이 전 세계를 무대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때부터, 기업은 자신들이 만드는 제품이 아닌 그들 스스로를 알리기 위한 브랜딩을 하게 되며, 브랜딩은 처음으로 상품을 표기하는 역할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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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동인도회사 로고가 새겨진 접시와 동전


이 시기의 브랜드로서 주목할 만한 것이 바로 1602년에 설립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입니다. 영국에서 최초의 동인도회사가 설립된 지 2년만에, 이에 자극을 받은 네덜란드 상인들이 설립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약칭 VOC는 최초의 주식회사이자 글로벌 기업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회사의 주식을 거래하기 위해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가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아이덴티티는 VOC라는 이니셜을 겹쳐 모노그램화한 것인데, 이 로고는 최초로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기업 아이덴티티가 됩니다. VOC는 이 로고를 사내 문서와 주식, 제품과 포장, 책, 지도, 동전, 깃발, 대포, 심지어 노예에게 낙인을 찍기 위한 인두에까지 활용했습니다. VOC의 상징물은 분명 어떠한 형태의 신뢰나 번영의 상징으로 여겨졌지만, 반대로 어떠한 개인의 노동이나 소유는 더 이상 상징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자본과 기업의 역할과 영향력이 이전보다 커지면서, 생산수단이 자본을 낳는 것을 넘어 자본이 생산수단을 점령함에 따라 생긴 변화이기도 합니다. 막대한 비용의 생산 기계들을 도입하고, 산업화로 인해 팽창한 수요를 충족하는 데에는 자본의 힘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죠. 이에 따라 브랜드가 표상하는 상징성의 헤게모니는 점차 제조업자에서 그 물건을 파는 상인, 즉 자본가와 그가 세운 기업에게로 넘어가게 되었고, 상품에 대한 신뢰는 생산자가 아닌 자본가가 만드는 것으로 바뀌면서 상징과 상품, 그리고 사람이 유리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산업혁명의 효능을 가장 먼저 본 직물산업에서 이러한 경향이 가장 먼저 보였는데, 영국 직물 산업에서는 생산자가 법규에 따라 천에 짜 넣어 품질을 책임지는 ‘생산 마크(Factory Mark)’와, 상인이 신용과 평판의 자산으로서 활용하는 표식이 분리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상표’로 기억하는 Trademark입니다.


이러한 상표는 필연적으로, 이전 생산표보다 더 강한 식별력을 요구로 했습니다. 이전 시대의 사람들은 수공예품에서 이를 만드는 사람의 개성과 실력을 바로 알 수 있었고, 그럴 수 없더라도 상인이 그런 제품들을 추천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기 때문에, 상징에 요구되는 차별화 또한 단순히 ‘누군가 만든 것’이라는 것을 표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산업화 이후 물건을 만드는 ‘누군가’가 자본가와 기계, 그리고 그가 고용한 대다수의 단순 노동자로 바뀌면서 바뀌게 됩니다. 같은 기계와 공정을 거친다면 이론적으로는 누구나 동일한 품질의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그러면서 제품을 통해서 어떠한 개성이나 장점을 읽어내는 일은 이전보다 훨씬 어려워졌죠. 그렇게 만들어진 공장제 제품은 아주 저렴하다는 장점은 있었지만, 당시로서는 아직 수공예품보다 질적으로 떨어졌던 것은 물론, 어떻게 하더라도 그런 제품에서는 장인이 들인 시간과 기술, 그리고 손길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단순히 공장에서 떼로 몰려 나오는 벌크형의 상품에서 사람들이 차별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또 지칭할 수 있는 무언가가 되기 위해서는 상징의 힘이 필요했습니다.


이 때부터 기업은 예술가들을 동원해 장인의 서명을 대신하면서도 여전히 사람들이 제작자의 손길과 지역의 특성, 그리고 여기에서 연상되는 차별화된 품질이 느껴질 수 있는 상표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물론, 다양한 공장들에서 나온 제품의 품질이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는 한, 상표는 이전보다 훨씬 더 복제나 위조품의 유혹에 휘말리기 쉬울 수밖에 없었고, 이는 필연적으로 시장의 혼란과 제조사의 피해를 가져오게 됩니다. 때문에 상표는 이전까지 단순히 품질 관리나 집단 조례 수준으로 관리되던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한 구속력을 지니는 상표 보호 법들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17세기 후반 유럽 각국에서 등장한 상표등록법은 상표를 국가의 관리 하에 둠으로써 상표의 독점적 사용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이를 통해 ‘등록 상표’라는 개념이 생긴 것이죠. 이를 통해 세계 최초로 등록된 1호 상표가, 1876년에 만들어진 영국 맥주회사 “바스(Bass)”의 빨간 삼각형(red triangle) 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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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Bass 맥주 로고 / (중) 캠펠 수프 디자인 / (우) 앤트 제마이마 광고


다양한 상표가 만들어졌지만, 그 중 가장 손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창업자 또는 가상의 인물을 장인으로 표현해 신뢰감을 형성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디자인 이론가는 이것이 '소비자와 제품 사이에서 상점 주인을 대체하는 역할’이었다고 평하기도 합니다. 19세기에 개발된 Campbell’s Soup나 Aunt Jemima, Quaker Oats와 같은 브랜드들이 그런 역할을 했죠. 대한민국에서도 개화기에 ‘박가분’같은 상표가 존재했었던 것을 보면, 이 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신뢰할 수 있는 생산자라는 ‘사람의 이미지’는 여전히 유효했습니다.

혹자는 ‘오늘날에도 <브랜드 퍼스널리티>란 개념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겁니다. 브랜드에 인격을 부여하고, 고객과의 인격적 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오늘날 거의 모든 브랜드 기획 단계에서 추구하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직접적으로 어떤 사람으로서 표현되는 것과, 어떠한 인격적 특성을 보이지 않던 브랜드 상표가 인격적 특성을 활용해 스스로를 표현하고 어떠한 관계를 도모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Quaker Oats에 그려진 퀘이커 교도의 모습부터가 종교인의 성실하고 순수하며 정직한 이미지을 빌린 허구이고, 그 모습을 패키지에 찍어내는 사람조차도 퀘이커가 아닌 기업과 계약을 맺거나 기업에 소속된 인쇄소였으니 말이죠. 진짜 ‘생산’의 모습 - 격무와 저임금, 노동 착취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그들이 모여 제품을 만들고 있는 열악한 환경, 그리고 그런 환경 속에서 만드는 제품을 뒤로 숨기고, 어떠한 개성으로서 친숙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힘이 브랜드에 주어진 것입니다.


물론, 이 시기 산업화가 불러일으킨 조악한 제품의 홍수 속에서 반기를 든 사람들도 존재했습니다. 19세기 후반 윌리엄 모리스는 미술과 디자인 모두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미술공예운동Arts and Crafts Movement을 창시했습니다. 수공예를 복원시키고 순수예술과 응용예술을 결합하고자 했던 이들의 움직임, 그리고 여기서 이어진 아르누보 개념은 아이러니하게도 기업가들에게 전유되어 제품의 광고로 활용되었고, 브랜드에 일종의 예술성과 상징성을 더하게 됩니다. 인쇄 기술이 발전하고 정교화됨에 따라 정교하게 만들어진 패턴과 화려한 이미지, 그리고 그 속 인간의 조화는 광고로 활용하기 쉬운 이미지였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1886년에 피어스 비누가 사용한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 경의 <비눗방울>일 것입니다. 제품을 거의 보여주지 않고도, 예술을 통해 제품의 효과와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게 한 피어스 비누의 시도는 제품에 대한 인상을 정교한 상징과 이미지로 대체했다는 점에서 광고와 브랜딩에 있어 새로운 혁신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pears-bubbles-A5-sign_1280-20140429102733134.jpg 피어스 비누 광고에 쓰인 <비눗방울> 그림



* 이 글은 ChatGPT의 도움을 (조금 많이) 받았습니다.


출처

Ruben Pater, <Caps Lock : How Capitalism Took Hold of Graphic Design and How to Escape from It> (Valiz, 2023).

Bastos, Wilson & Levy, Sidney. (2012). A history of the concept of branding: Practice and theory. Journal of Historical Research in Marketing. 4. 347-368. 10.1108/17557501211252934.

Moore, Karl & Reid, Susan. (2008). The Birth of Brand: 4000 Years of Branding History. Bus History. 4. 10.1080/00076790802106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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