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는 누가 이론화했을까?

브랜드의 역사 -7- 현대 브랜딩 구루의 등장

by 비노

브랜드의 역사를 다룬 논문에 따르면, 브랜드를 주제로 한 최초의 마케팅 논문은 1942년에 등장했다고 합니다. 브랜드가 학술적인 영역에서 다루어지기 시작한 이 시기는 마케팅이 학문으로 다루어졌던 시기, 경영학에서 제품의 유통을 놓고 ‘생산의 시기’와 ‘판매의 시기’를 넘어 정의내리는 ‘마케팅의 시기’, 그리고 앞서 기업에서 마케팅과 기업 브랜드가 관리의 대상으로서 디자이너와 경영 기획자의 손길을 타게 된 시기와도 일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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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인류학자 B. B. 가드너와 경영학자 시드니 J. 레비는 1955년 Harvard Business Review에 기고한 〈The Product and the Brand〉라는 논문에서, 소비자가 제품을 선택할 때 제품의 기능뿐 아니라 그 브랜드가 지닌 이미지와 성격, 의미 등을 고려하며, 때문에 마케팅 담당자들이 브랜드를 복합적인 상징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기술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브랜드에 대해 이해하는 바, 브랜드를 소비자 마음속 이미지와 연관된 의미체계로 파악한 첫 학문적 논의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시드니 J. 레비는 이후 마켓 3.0으로 유명해진 필립 코틀러와도 다수의 연구를 함께 한 바가 있는 것을 생각해 보면, 브랜드라는 현상은 당시 마케팅과 소비자 심리를 연구하던 이들에게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후 60년대와 70년대를 거쳐 브랜드 용어들 — 브랜딩Branding, 브랜드 이미지Brand Image, 브랜드 인식Brand Perceptions, 브랜드 인지도Brand Awareness, 브랜드 충성도Brand Loyalty, 브랜드 선호Brand Preference, 브랜드 생애 주기Brand Life Cycle, 브랜드 세그먼트/포지셔닝Brand Segmentation/Positioning, 브랜드 자산Brand Equity, 브랜드 연상Brand Association 등의 단어가 이 이후에 우후죽순처럼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단어들은 브랜드를 소비자 심리와 상징적 의미와 연관짓는 요소이자, 기업 또는 제품에 부가가치를 부여하는 수단으로서 이를 기업이 어떻게 만들고 관리할 것인가를 설명하기 위한 시도이기도 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브랜드에 대해 분석하고 연구해 왔지만, 브랜드에 대한 학술적 논의를 대중화하는 데 있어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들을 꼽자면 크게 세 명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들이 바로 우리가 경영학 시간에 브랜드를 배울 때마다 빠짐 없이 등장하는 브랜드 분야의 3대 석학, 데이비드 아커, 케빈 레인 켈러, 그리고 장 노엘 캐퍼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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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아커와 그의 저서


우선 브랜드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구루로 평가받는 데이비드 아커에 대해 알아봅시다. 1991년 데이비드 아커가 낸 저서 <브랜드 자산의 전략적 관리Managing Brand Equity>는 아직까지도 ‘브랜드의 정석’으로 불릴 만큼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브랜드 업계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아커 관점의 핵심은 브랜드를 자산(asset)으로 보는 것입니다. 즉, 브랜드의 인지도, 충성도, 품질에 대한 인식, 연상 이미지, 그리고 특허나 상표가 만들어 내는 ‘브랜드 자산’이 제품이나 서비스가 기업과 소비자에게 부가 가치를 줄 수 있고, 때문에 그 가치를 측정하고 전략적으로 관리할 때 기업의 가치 또한 늘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커의 브랜드 아이덴티티 모델은 제품, 조직, 사람, 상징이라는 네 가지 관점에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파악하고, 이를 가치 선언과 고객 관계, 브랜드 포지션이과 실행 단계에서 전략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프레임워크를 제공했습니다. 이러한 아커의 이론을 기반으로 인터브랜드의 연간 브랜드 가치 평가와 같은 일이 대중화되고, 기업 내 브랜드 관리 조직의 일하는 방식이 변화하였으며, 기업들은 브랜드를 투자와 관리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아커는 이러한 공로로 2015년 AMA 마케팅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현대 브랜딩의 아버지”라는 존칭을 얻었습니다. 아커는 현재까지도 브랜딩 에이전시 Prophet의 부회장으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그의 딸인 제니퍼 아커는 카를 융의 원형 이론을 브랜드에 접목시킨 브랜드 퍼스널리티를 이론화하고 이를 브랜드 스토리텔링에 접목시키는 방법론을 제시하기도 한 만큼, 브랜드를 이론화시키는 데 있어 큰 족적을 남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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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노엘 캐퍼러와 그의 브랜드 아이덴티티 프리즘 모델


장 노엘 캐퍼러는 셋 중 유일하게 유럽 - 프랑스 출신의 학자입니다. 그래서인지, 브랜드를 자산으로서 관리해야 한다는 관점과는 비슷한 듯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 브랜드는 일종의 철학적 요소로 해석됩니다. 즉, “브랜드란 하나의 제품 이상의 무엇”이며, 브랜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 의미, 영혼에 관한 것이고 브랜딩은 그 무형의 속성들을 구축하는 작업이라고 역설했습니다. 캐퍼러가 1992년 저서 《Strategic Brand Management》 등을 통해 소개한 브랜드 아이덴티티 프리즘(Brand Identity Prism) 모델은 브랜드 정체성을 구성하는 여섯 가지 핵심 요소 – 물리적 특징(physique), 개성(personality), 문화(culture), 관계(relationship), 소비자 반영(reflection), 자기 이미지(self-image) – 를 시각화한 틀입니다. 캐퍼러의 프리즘은 브랜드를 기업과 소비자가 맺는 관계와 상징의 집합체로 파악하여, 브랜드 관리에서 아이덴티티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전략을 강조했습니다. 즉, 브랜드의 가치 제안을 소비자와 맺은 약속으로 보고, 이것이 일관되게 지켜질 때 신뢰가 형성되고 브랜드 파워가 강해진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캐퍼러는 미래 소비자 트렌드를 예측하고, 브랜드의 원형(archetype)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지속적으로 브랜드를 재창조할 것을 주장합니다. 2000년대 이후부터 캐퍼러의 연구 주제는 글로벌 브랜드 전략과 럭셔리 브랜드로 옮겨가는데, 브랜드가 가진 전통과 희소가치가 시대와 장소에 따라 어떻게 변주될 수 있는지에 대한 통찰을 주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케빈 레인 켈러는 브랜드를 소비자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시도했던 사람입니다. 1993년에 그가 기고한 논문을 통해 소개된 ‘고객기반 브랜드 자산(Customer-Based Brand Equity, CBBE)’ 모델은 브랜드의 정체성이 기능과 이미지에 대한 의미 연상을 토대로 판단 기준과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그 결과 소비자와 공명하는 관계요소로서 작용하는지를 규명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의 브랜드 자산은 제품 브랜드를 통해 고객이 보이는 호의적인 반응으로 규명됩니다. 또한, 켈러는 인지심리학의 연상망 모델을 응용해 브랜드 인지도와 브랜드 연상으로 구성되는 브랜드 지식구조를 설명하고, 강력한 브랜드 구축을 위해 소비자의 마음속 연상을 관리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또, 경영학에서의 가치 사슬(Value Chain)을 브랜드와 접목한 브랜드 가치사슬 모델(Brand Value Chain)을 통해 마케팅 활동이 소비자의 인식을 거ㅕㅊ 기업가치로 연결되는 과정을 설명하고자 하였습니다. 흔히 이야기되는 소비자의 마인드 쉐어, POD(Point of Difference) - POP (Point of Parity) 또한 그가 제안한 개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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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레인 켈러와 그의 저서


이러한 이론가들과, 그들의 방법론을 접목한 많은 브랜드/경영 컨설팅 펌들을 통해, 브랜딩은 이제 기업 경영의 필수 요소로 자리잡았습니다. 이들이 구축한 이론적 토대를 통해, 브랜드는 인식이자 관계, 그리고 자산으로서 관리되어야 할 무언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론들이 마케팅, 그리고 ‘크리에이티브 비즈니스’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은 그 놀랄 일이 아닙니다. 세계화라는 시대적 상황, 그리고 기업이 국내를 벗어나 무한한 경쟁의 시대로 뛰어들고 있던 상황 속에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브랜드, 고객에게 가치를 약속함으로서 팔리는 브랜드, 존재의 의미를 만들어 주는 브랜드라는 개념은 필연적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개념은 이제 경험, 공간, 팬덤, 커뮤니티, 관계, 공동 창조(co-creation), 문화를 넘어 한 개인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브랜드 개념의 유연하고 무한한 확장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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