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것의 브랜딩

브랜딩의 역사 -8- 국가와 이데올로기, 도시 그리고 개인 브랜드

by 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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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와 공산주의는 브랜딩, 혹은 브랜드 그래픽이 국가 규모 그 이상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가장 극단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치의 하켄크로이츠(卍)는 원래 인도에서까지 그 기원을 찾아 나갈 수 있는 유서 깊은 상징물이었고, 그래서 불교의 만자와도 접점이 맞닿아 있을 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태양 혹은 천둥을 상징하는 문자로 생각보다 흔히 쓰였지만, 1920년대에 나치를 장악한 히틀러가 전용함으로서 끔찍한 전쟁 폭력과 극우의 상징이 되고 말았죠. 비슷한 시기에 러시아 혁명 과정에서 스탈린에 의해 낫과 망치라는 상징 또한 등장합니다. 이는 농민과 노동자의 단결을 의미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냉전 시기 거대한 이데올로기를 상징하는 요소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징들은 국가 상징, 그리고 이념의 주창자를 신격화한 상징과 함께 쓰이면서 거대한 이데올로기 상징물의 역할을 했습니다.


기호학에서 말하듯 (이념으로서의) 이데올로기는 기호에 대한 해석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권력으로서의) 이데올로기 또한 그 기호를 활용하고 이를 특정한 방향으로 해석해 사람들을 통제하는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습니다. 그에 대한 이론적 배경은 아이러니하게도 에드워드 버네이스의 <프로파간다>(1929)가 제공했죠. 광고와 브랜딩이 대중 조종을 위해 동원한 심리적 기법들에 정치가들이 주목했던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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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권력의 상징성이 그러했듯, 아이디어 또한 오랜 역사동안 브랜드화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브랜드가 '나의 것'을 구별하는 도구라 한다면, 국가와 종교 그리고 이데올로기를 비롯한 아이디어에 대한 브랜드는 집단적 정체성을 통해 자신을 구별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기독교, 이슬람, 청교도, 아메리칸 드림, 엉클 샘, 공산주의, 뉴딜, 레이거노믹스, 신자유주의, Black Lives Matter, Woke, MAGA와 같은 정책과 이데올로기, 그리고 사회 슬로건들은 단순히 어떠한 아이디어로서뿐만 아니라, 이를 지지하는 개인, 반대하는 개인을 일관된 원칙 하에 묶어두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강력한 브랜딩 파워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도시 브랜드, 내지는 장소 브랜드는 이보다는 훨씬 최근에 생긴 개념입니다. 이전에 도시 브랜드에 대해서 쓴 글에서도 설명했지만, 본래 ‘도시 상징’은 도시 자체를 홍복하기 위한 목적보다는 피아 식별과 지배권 표시의 기능이 더 강했습니다. 도시의 상징은 아주 오랜 시절 도시민이 누릴 수 있는 권력의 상징에서 시작해, 피아 식별과 권력의 상징으로 발전했었죠. 이는 ‘도시’가 구별된 이름을 지닌 구별된 공간으로서 이미 그런 차별화가 이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장소를 선택한다는 개념 자체가 비교적 최근에 형성된 개념이고, 그렇기 때문에 도시가 스스로를 홍보할 필요라는 것이 오랫동안 있지 않아 왔다는 것 또한 이전에 밝힌 바 있습니다.


City-branding-01-1024x768.jpeg 도시 브랜딩의 예시들


도시를 홍보하기 위한 브랜딩, 즉 ‘장소 브랜딩(Place Branding)’이라는 개념은 90년대 초 필립 코틀러의 서적에서 처음으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장소 브랜딩’의 기원은 1978년에 등장한 ‘I♥︎NY’ 캠페인일 것입니다. 제조업이 저임금 국가로 이전함에 따라, 도시는 경제 위기, 범죄율 증가 등의 사회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스스로를 관광 상품화했고, 이에 따라 도시는 스스로를 홍보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습니다. ‘I♥︎NY’를 만드는 데 디자이너 밀튼 글레이저 뿐만 아니라 광고대행사인 웰스 리치 그린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이후 케셀스크라머가 만든 I Amsterdam 로고, 그리고 그 이후 다수의 도시 브랜드가 만들어지는 모든 상황 속에서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음은 물론, 최근에는 도시 상징물 자체를 상품화하고 도시 내부의 경험까지도 디자인하고자 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거칠게 본다면 도시 또한 하나의 상품으로서 바라보는 관점이 생긴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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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요즘 ‘브랜드’라는 키워드 중에서 핫한, ‘퍼스널 브랜딩’은 어떨까요. 아마 대부분의 브랜드 디자이너, 그리고 기획자들이 ‘퍼스널 브랜딩’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을 겁니다. 적어도 저 역시 그러한 입장에 가까운데, 이는 이 개념이 애초에 브랜드 자체가 아닌 자기개발 담론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개인을 마케팅 또는 브랜딩해야 한다는 개념이 생긴 것은 1937년 나폴레옹 힐이 자기개발서의 고전 ‘부의 비밀(Think & Grow Rich)’에서 셀프 포지셔닝과 개인 브랜딩을 언급한 사례가 처음입니다.


이후 퍼스널 브랜딩은 경영 컨설턴트 톰 피터스(Tom Peters)가 1997년 기고한 ‘The Brand Called You’ 라는 글을 통해 대중화됩니다. 그는 사람들 개개인 모두 생존을 위해서는 자신을 브랜드화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 주장은 브랜드가 가진 차별화를 개인의 전문성과 강점으로 연결해, 고용 시장에서 개인을 브랜딩함으로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고 강조한 것이었죠. 이후 ‘퍼스널 브랜딩’은 자기계발 열풍과 맞물려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Me 2.0”, “개인 브랜드로 승부하라” 등의 책이 출간되고, 전문 강연자들이 퍼스널 브랜딩의 중요성과 노하우를 역설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이면에는 경제적 자유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적 가치관과 현대 사회의 개인주의 문화, 그리고 점차 치열해진 취업 경쟁이라는 환경 속에서, 자신의 강점을 효과적으로 포장하는 것이 일종의 생존 전략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 한 몫을 합니다. 그러나 저는 개인적으로 과연 퍼스널 브랜드가 제대로 된 브랜드인가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우선 퍼스널 브랜드의 결과값이자 산출물이 무엇인지 모호합니다. 앞서 퍼스널 브랜딩이 고용 시장에서의 자기 브랜딩을 목표로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 결과물은 결국 채용 시장에서 선택될 수 있는 개인으로 한정되기 때문입니다. 꼭 고용 시장이 아니더라도 ‘성공한 사람’이라는 결과물은 노력이 깃들 지언정 어떠한 전략이나 디자인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는 영역인 반면, ‘고유한 사람’이라는 결과물은 이미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실제 퍼스널 브랜딩을 통해 자기 가치를 증명하고 부를 이루었다는 사례를 살펴보면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원래 어느 정도의 권위를 인정받을 만한 무언가가 있었거나, 둘째, 과도한 자기과시와 상업화를 토대로 자기 성과를 부풀리는 것이죠. 오늘날 유튜브가 대중화된 매체로 자리잡으면서 이러한 퍼스널 브랜딩 열풍은 자신의 성과와 전문성을 극도로 부풀려 콘텐츠화하고 성공하고 싶은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무한한 경쟁 사회 속에서, 자신을 다르게 포장하지 않으면 안되는 브랜드의 논리를 억지로 적용할 때, 오히려 개인의 개성은 무너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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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난전에서 벗어나 관점을 달리 해보면, 실제 퍼스널 브랜딩은 이미 우리 가까이에 와 있습니다. 이미 온라인에는 현실 너머 가상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활동하는 인물들이 다수 존재합니다. 이제는 태어난 것과 다른 얼굴과 목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하며, 이들이 새로운 시대의 엔터테이너로서 영향력을 끼치고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고, 이제는 이러한 인격을 기획하고 저작권으로서 소유하는 것 또한 가능해졌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퍼스널 브랜딩은 자기 PR을 넘어 진짜 자신을 고유하고 독특한 가치를 지닌 존재로 브랜딩하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 이 글은 ChatGPT의 도움을 (조금 많이) 받았습니다.


출처

Ruben Pater, <Caps Lock : How Capitalism Took Hold of Graphic Design and How to Escape from It> (Valiz, 2023).

Swaminathan, V., Sorescu, A., Steenkamp, J.-B. E. M., O’Guinn, T. C. G., & Schmitt, B. (2020). "Branding in a Hyperconnected World: Refocusing Theories and Rethinking Boundaries." Journal of Marketing, 84(2), 2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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