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내려간 사람들

by KIKI


2월 브리즈번엔 비가 많이 내렸고, 그 무렵 나는 문이 없는 방에서 지냈다. 문은 없어도 그 역할을 대신하는 무언가가 있기는 했다. 방과 복도를 가르는 경계, 외부의 시선과 노출을 차단하고 전체의 공간을 하나의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공간으로 만들어주는 결정적인 요소를, 그 방에선 천장에 매달린 커튼이 했다. 커튼을 열고 나가면 바로 오른쪽에 욕실과 화장실이 한 열로 나란히 이어져 있고, 그 건너편에 차고가 있으며 긴 복도의 양 옆으로 세 개의 작은 방이, 거실을 지나 한 개의 큰 방이 배치된 구조의 집이었다. 각각의 방에 여섯 명의 일본인이 나누어 살고 있었는데, 그 중 한 방에 사는 코세이는 마치 오래된 아파트의 성실한 경비원처럼 매일밤 정해진 시간만 되면 차고 깊은 곳에 박혀 랩 가사를 쓰고 완성물을 녹음했다. 그 방은 문이 없어서 온갖 소리의 방이기도 했다. 후둑후둑 떨어지는 장마빗소리와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줄기 소리, 화장실 변기 내리는 소리, 누군가 손을 씻거나 입을 헹구는 소리와 같이 온갖 잡다한 소리를 포함해 코세이가 박자를 초단위로 쪼개가며 뜻모를 가사를 웅얼거리는 소리까지, 끝없는 사건처럼 벌어지는 소리의 집합소.


그 방은 임시로 세를 들어간 C의 집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곳에 이사들어간 바로 그날을 기점으로 C와는 연락이 두절되었다. 마지막 통화는 이런 내용이었다. 이사를 가야하는데 빈 방을 좀 줄 수 있어? 갑자기 왜? 그럴 일이 좀 있어서. 음. 응? 뭐 너 알아서 해. 그 후 일주일 동안 전화와 문자, 카톡을 번갈아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그에게 연락을 시도해보았지만 일절 닿지 않았다. 처음엔 어리둥절하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 통화 내용. 거기에 뒤틀린 뭔가가 있다. 그 후 다시 얼마간이 흐르고 나서 우연히 J와 C가 통화하는 내용을 바로 옆에서 듣게 되었을 때에서야 나는 C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는 존재하면서 오직 나로부터만 부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멈추지 않고 비가 내리던 날들이었다. 땅거미지는 저물녘처럼 방안은 늘 어둑했고, 타일 깔린 바닥의 냉기로 인해 한낮에도 보조등을 켜두고 긴 옷을 꺼내어 입던, 우중충한 날씨가 지겹도록 이어지던 날들이었다. 때마침 나는 백수였기에 방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 방에서 내가 하는 일이란 몸의 방향을 달리 할 때마다 삐그덕대는 싸구려 싱글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서 어떤 생각에 몰두해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C는 왜 사라졌는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모든 사건에는 배후가 있기 마련이라고, 어딘가 숨겨져 있을 그 단서를 찾으려 무심히 지나간 과거를 헤집었다. 그것은 시간의 지루함을 견디는 방법이기도 했다. 끊임없던 빗소리도 그 생각에 몰두해 있을 때만큼은 귀에서 멀어졌다. 그 방을 차지하고 있는 거라곤 좀 전의 그 싸구려 침대와 언제라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듯 한쪽 구석에 불편하게 놓여 있는 짐가방들 뿐이었다. 이사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아직 풀지 않은 그대로였고, 필요할 때마다 필요한 내용물만 쏙 빼내어 사용한 뒤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정리하지 않은 것은 곧 적응하지 않았음을 의미했으며 불편한 것을 불편한 대로 견디는 행위는 곧 적응하지 않은 삶의 방식이기도 했다.


애초에 잠시 머물기로 약속된 집이기도 했거니와 집주인 친구와 연락도 끊긴 마당에 더 오래 지체할수록 더 불편하기만 하리란 판단에 틈틈이 브리즈번 시내에 방을 보러다녔다. 시내까지는 전철을 타고 5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에 있었는데, 긴 시간인 것 같아도 풍경을 들여다 보며 멍을 때리고 있으면 금방이었다. 그 즈음 창밖엔 장마의 영향이 곳곳에서 포착되었다. 부러진 나무와 잔해들, 불어난 넘친 흔적들. 그중에서도 다리를 지나는 순간에 나는 비뚫어진 자세를 얼른 바로하고는 유리창 가까이로 고개를 들이밀어 그것을 바라보았다. 불어난 강물과 물이 넘친 다리, 꺾이고 부서진 조각들이 물 위에 뜬 채 부유하는가 하면, 또 어떤 것은 아래로 거세게 떠밀려 가고 있었다. 그것은 바라보기라기보다는 목격하기였다. 저것들은 떠돌다가 어느 지점에 걸려 멈추게 될 것이다. 한 곳에 멈춰서 또 한 세월을 그곳에서 보내게 될 것이다. 자세를 바로하고 눈을 감았다. 방금 전까지 보았던 이미지의 잔상들이 감은 눈속에 희미하게 떠올랐다.


사람들은 떠나는 게 아니고 떠내려가는 것이다......


그날은 시티에 사는 친구 틴의 생일이이었다.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를 받아 작은 선물을 사서 그의 집으로 가니 틴과 남자친구 로잭이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네팔 음식이었다. 메인 요리로 염소 고기와 커리가 놓였고, 삶은 채소와 스프가 올라왔다. 레드 와인과 맥주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틴은 자리에 앉아 음식에 관해 돌아가며 짧은 소개를 했고, 특히 염소 고기 맛이 일품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염소고기는 본디 냄새가 나기 마련인데, 로잭은 염소 요리를 냄새 나지 않고 담백하게 해내는 재주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때 나는 언젠가 틴이 로잭에 관해, 그는 소고기를 일절 먹지 않지만 늘 자신을 위해 환상의 스테이크를 구워주는 연인이라고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연인이라 부를 만한 어떤 존재, 기린을 생각해냈으며 그가 한 번도 내게 환상의 스테이크를 구워준 적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리가 얼추 마무리 되어갈 즈음, J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어디야? 친구 집. 언제 오려고? 곧 갈 거 같은데, 왜? 역 앞이 잠겼어. 허리까지 물이 찼더라. 겨우 건너기는 했는데... 올 거면 빨리 오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전화를 끊고 곧바로 구글맵을 서치해보니 브리즈번 곳곳이 침수되어 노선 일부가 운행이 중단되고 역들도 폐쇄한 상태였다. 창 밖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내린 비였다. 아니 어젯밤부터, 아니 그 훨씬 전부터 멈추지 않고 내린 비였다. 저 비가 불어나고 불어나 온갖 것들을 가두고 있다. 서둘러 짐을 정리하고 집을 나서려고 하자 틴이 나를 붙잡았다. 거실 소파를 가리키며 밤이 되었고 혼자 가기 위험하니 하룻밤 자고 가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순간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곧바로 괜찮다고 했다. 다시 정말 괜찮겠느냐고 물었고 나는 정말로 괜찮다고, 집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트레인은 집으로 가던 길에 멈췄다. 홍수로 인해 길이 막혀서 운행을 중단한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도착지에서 한 정거장 떨어진 곳이었다. 대중교통과 우버 등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교통 수단은 올스톱였기 때문에 집에 갈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걸어서 가는 것뿐이었다. 역에서 집까지는 지도상으로 2시간 남짓 소요되었다. 잠시 가만히 서서 짙게 깔린 어둠의 허공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좀 전에 나는 틴의 호의를 왜 거절했을까? 불편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고작 일주일 머문 공간에 생겨난 내 것이라는 느낌 때문에, 그 애착과는 거리가 먼 공간이라는 것 때문에, 나는 고집스러워졌던 것이다. 그 집에서 그냥 하룻밤만 신세를 졌더라면. 무슨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르는 저 끔찍한 어둠을 눈앞에 마주하고 있지 않았어도 됐는데. 어쨌거나 내가 자초한 상황이다. 저 어둠을 뚫고 가야한다.


나는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눈앞에 사물이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컴컴해서 한 치 앞도 가늠할 수가 없었다. 혹시 모를 장애물을 피하기 위해 핸드폰 플래시를 켜두고 구글맵을 주시하며 걸었다. 마을길을 걸을 땐 그나마 빛이 있었으나 마을을 빠져나오니 그 불빛마저도 끊겼다. 보이는 것은 오직 어둠, 더 심오한 어둠 뿐이었다. 누구라도 옆에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혹여나 누가 불쑥 튀어나오기라도 할까봐 숨을 발소리를 죽여가며 걸었다. 극한의 두려움 속에서 C와 기린, 두 사람이 떠올랐다. 그러나 둘 다 지금의 나를 이 위기 속에서 구해줄 수 없으리란 걸 알았다. C와는 연락두절이었고, 기린은 아주 멀리에 있다. 그래도 기린에게는 희망이 있다. 내게 와줄 순 없어도 가는 동안 말상대가 되어줄 순 있을 것이다. 그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무서워... 답을 기다리며 다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온 신경과 감각이 곤두선 채로 눈앞의 어둠을 주시하며 걷다가 바람에 흔들리는 검은 형체들의 움직임에 일순 소스라치며 몸이 굳었다. 어떻게든 한 걸음, 한 걸음을 떼어야 했다. 더듬더듬 다리를 건넜고, 숨죽이며 터널을 빠져나왔다.


비는 거칠게 쏟아졌다가 가늘어지고 다시 거세지기를 반복했다. 차들이 아주 드물게 나를 지나쳐 갈 때마다 우산을 꽉 쥔 손에 땀이 배었다. 들이치는 빗줄기로 가방과 한 쪽 어깨, 바지 아랫께가 다 젖었다. 아무도 없다는 건 이런 거구나. 어둠의 숲 한가운데에 불빛 하나 없이 길을 걷는다는 것. 이 암흑 속에서 내가 죽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들이 스쳤다. 그런데 왜 아무도 없는가. 그건 잘못되었다. 이런 것이 현상이고 진실이겠지. 이 어둠이 끝나고 별 일 없이 집으로 돌아간다 해도 누구를 탓하거나 따져물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끝까지 걸었다. 어둠의 끝까지. 도로의 끝까지. 긴긴 숲길을 빠져나와 마침내 사람이 사는 주택가에 진입했다는 것을 가로등 불빛으로 알았다.


내가 머물고 있는 동네 입구에 다다랐을 때 빗소리를 압도하는 물의 소리를 들었다. 커다란 맨홀 구멍 안으로 빗물이 흘러내려가고 있었다. 비좁은 틈으로 대지의 모든 물이... 뭐랄까… 문득 알 것 같았다. 사람들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에 이르고 어디에 묻히는지. 집으로 돌아와 담배 두 개피를 연달아 피웠다. 세 개였는지도 모르겠다. 따뜻한 물에 젖은 몸을 오래 데웠다. 맥주 한 잔을 마신 뒤 방으로 돌아왔을 땐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붉은 빛과 삐져나온 옷가지들, 덩그러니 놓인 침대와 건조대, 빗소리... 잠들기 전에 기린에게 보냈던 문자를 다시 확인했다. 무서워… 답은 오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잠에 깨어나자마자 어젯밤의 사건이 꿈의 잔상처럼 빠르게 뇌리를 스쳤다. 역시나 비가 내리고 있었고 나는 C의 집에 있었다. 빗소리보다 조금 더 크게 사운드를 높이고서 이준형의 노래를 들었다. 테라스에서는 코세이가 입에 담배를 문 채 아침부터 가사를 쓰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일본어로 빼곡히 적혀 있는 랩가사를 유심히 들여다 보았다. 알 수 없는 언어의 의미를 해석해보고 싶었지만, 내 무력함만 확인할 뿐이었다. 정오에는 모두가 각자의 아침을 해먹고 소파에 모여앉아 오래된 지브리 영화를 보았다. 아무도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는 않았다. 아무도 묻지 않는 어젯밤을 목전에 두고 귓볼을 쓸어내렸다. 귓볼을 움직일 때마다 빗소리가 가까워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했다.




/브리즈번에서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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