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13일 목요일
모든 걸 말한다, 분명 나는 그렇게 말했다. 모든 걸 말한다고.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닫힌 말문의 빗장을 죄다 허물어 열고 밤을 꼬박 지새울 만큼 긴긴 이야기를 쏟아낸다 하더라도, 나는, 모든 걸, 말하지는 않는다. 다만 말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이고, 할 수 없는 것은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에게는 늘 나머지가 있다. 앙다문 빗장들이 수십 개쯤 더 있는 것이다. 또 내 말에는 뭐가 있나. 과거가 있지. 나는 매번 지금에 관해 말하기를 유보하고, 지난 일들을 입 안 가득 채우곤 우물거리지. 엄밀히 말하면 지나가지 않고 남아 있는 일. 시간상 과거에 놓였지만, 사건상 계속되는 일. 그런 일들을 속속들이 끄집어내 곱씹기를 반복한다. 전부 바스러질 때까지. 완전히 물크러질 때까지. 지독하게 또 가난하게.
모든 걸 말한다,라고 내가 말했던 사람은 C오빠다. 그날 우리는 붐비는 식당에 몇 시간 째 마주 앉아 있었다. 대체로 말을 하는 사람은 나였고, 그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는 정도의 반응을 할 뿐이어서 어쩐지 우리 사이에 오가는 행위란 대화라기보다는 독백에 가깝게 느껴졌다. 그러나 또 한편 그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대화였는데, 한 사람이 자기를 드러낼 때 다른 이는 묵묵히 들어준다는 점에서, 상대가 내뱉는 말의 흐름에 가만히 주의를 기울이다가 적절한 타이밍에 고요하고도 부드럽게, 그러면서도 확실하게 반응한다는 점에서 그랬다. 누군가 이렇게 끝까지 들어주기만 한다면 사람들은 언제까지고 자기를 고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듣는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제대로 말한다는 것은 또 얼마나 힘든 일인가. 가만 생각해보니 그가 취하는 대화의 태도가 이상적이라는 점을 차치한다 하더라도, 유독 그에게만큼은 더 많은 말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아니 확실히 C오빠 앞에서는 그렇게 된다. 건너편에 그가 있다는 걸 알면, 그때부터 반드시 해야 하는 말들이 생겨나고, 참을 수 없게 되고, 기어이 내뱉게 된다.
말할 수 있게 되는 마음이란 건 뭘까. 그런 마음은 어디서 비롯하는 것이며 또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날 오후에 만났다. 아직은 사위가 밝은 오후였으나 그 무렵엔 해가 금방 져버려서 차를 몰고 시티를 통과하는 동안 도시는 푸르스름하게 저녁 물이 들고 있었다. 조수석에 앉아 어스름 지는 도시를 내다보면서 나는 좀 낯선 기분에 사로잡혔는데, 내가 아는 도시와 전혀 다른 장소를 지나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토록 생생하고 아름답게 반짝이던 거리가 그 순간엔 오히려 무미건조하게 다가왔다. 거리감으로 인한 것이리라 생각했다. 뭐든 밀접할수록 내밀해지는 법이니까, 그 반대라면. 나는 C오빠에게 직접 걷는 도시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시간에 따라 거리 곳곳의 색깔과 분위기, 뉘앙스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 새로운 조화 속을 걷는다는 게 얼마나 황홀한 경험인지를, 내가 걸었던 무수한 날들과 무수한 길들에 빗대어 설명했다. 말을 마친 후 문득 C오빠를 돌아보았을 때, 그는 아주 깊어진 얼굴로 전면 창 너머 도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그런 얼굴이 있다는 걸. 그렇게 깊어질 수 있는 얼굴. 애써 고개를 끄덕이거나 대답하지 않아도 분명히 듣고 있음을 저절로 확신할 수 있는 얼굴. 침묵으로도 안도할 수 있는 얼굴. 말할 수 있게 되는 마음이란 그런 데에서 나오는 것 같다. 그런 얼굴 앞에서야만 말들은 비로소 힘을 얻는 것이다. 목구멍과 혀끝과 입술을 거슬러 밖으로 밀고 나아갈 수 있는 힘.
C오빠는 언제나 그렇게 있다. 그렇게 깊고 고요한 얼굴로, 내가 부르는 곳에, 찾는 곳에, 항상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C오빠가 늘 있다고 생각하면 나는 침울해진다. 왜냐면, 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누군가가 지금껏 늘 있어 왔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있는 사람이 될 수는 없으니까. 그건 아주 투명해서 굳이 따져볼 필요도 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가 언제나 있다는 사실은 언제든 변할 수 있고, 그가 얼마든지 없을 수도 있다. 지금 내게서 없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돼버린 사람들처럼. 얼마 전에 K에게 C오빠에 관해 잃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했을 때, K는 내게 이렇게 물었다. 그래서 그동안 네가 잃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정말로 잃지 않았니? 음 아니. 잃었지. 잃고 또 잃었지. 하릴없이 무력하게. 허무하고도 실망스럽게. 때로 가혹하게. 그리고 그때마다 내가 어떻게 했냐면, 결국 받아들였다. 어떤 상실은 생각보다 쉬웠고, 어떤 상실은 유달리 오래 지속되기도 했으나 어떻든 간에 마지막엔 다 수긍했다.
C오빠가 없는 것에 대해서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껏 그래 왔듯, 나는 사실 위에 똑바로 서려고 할 것이다. 혹여나 마주한 사실이 너무 거대해서 바로 서기가 어려울 것 같으면, 시간이 지나 덤덤해지기를 기다렸다가 적당한 때에 무심히 흘려보낼 것이다. 그러니 호들갑을 떨지는 말아야지. 그러면서도 나는 자꾸만 그가 있는 게 당혹스럽다. 언젠가 그가 없다는 사실이, 그가 늘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커다랗게 부풀 것 같아서. 내가 좌절할 것 같아서. 그래서 그가 있을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그가 없을 거라고. 그도 없어질 거라고. 지레 겁을 먹고 앞서서 모든 걸 해결하려 한다. 우리는 다 떠나는 사람들. 서로에게 잠깐 있었다가 금세 없어질 사람들. 여기에선 사람들이 너무나 자주 떠나고 나는 더 이상 어떤 기대도 하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C오빠에 대해서도. 내가 길들여져야 할 건 끊임없는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는 부재야. 그러나 그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내가 얼마나 많이 또 자주 C오빠가 없는 것에 생각하는지, 말하지 않는다. 그냥, 하지 않는다.
헤어지기 전에는 함께 음악을 들었다. 오후와 새벽에, 비 오는 여름과 스산한 가을에 들었던 음악을 차례대로 들었고, 다시금 많은 말을 했다. 오후와 새벽에 관해. 비 오는 여름과 스산한 가을에 관해. 어느덧 한밤이었고 사방은 아주 어두운 채로 최소한의 불빛만 남아 있어서 밤의 고요가 더욱 깊었는데, 그래서였는지 말 수가 적은 C오빠도 그때만큼은 꽤 많은 말을 했다. 우리는 그 밤에 무수한 말들을. 그러나 모든 걸 말하지는 않았지. 말할 수 있는 것을 말했고, 말할 수 없는 것은 하지 않았지. 몸을 말고 웅크린 나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견디기 어려운 적막과 쓸쓸함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상실과 허무감에 관해서도 말하지 않았고, 내가 매 순간 어떤 마음에 사로잡혀 그를 찾는지에 관해서도, 말하지 않았다. C오빠도 그랬을 거다. 뒤에 남겨둔 말들이 반드시 있을 거다.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아침이 오면 어제 일 같은 건 금방 잊힐 것이고 아무 일 없었던 듯 제각기 살아갈 테지. 그런 일들이 있었나 싶게. 그러면 우리가 남긴 말들은 거기 그 밤에 그대로 남겠지. 그 어둠에 매여 오래오래 아무도 모르는 채로 살아가겠지.
그 날이 지나고 나는 천천히 그날을 곱씹는다. 모든 걸 다 말한다고 했지. 그런데 내가 한 말들은 과연 진실이었을까? 도대체 타인에게 진실하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다들 드러내고 싶은 만큼의 나를 적당히 드러낼 뿐인 거 아닌가. 어떤 진실은 말하고 어떤 진실은 말하지 않으면서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는 거 아닌가. 사실 진실은 아무도 몰라. 나조차도 진실을 모른다. 그런 생각들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모든 걸 말한다고 한 건 사실이 아니었다. 어딘가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모든 걸 말한다고 말했던 C오빠에게조차도, 말해지지 않은 내가 있다. 덩굴에 남은 나. 깊은 덩굴에 남겨져 아무도 모르는 숲으로 자라는.
/ 브리즈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