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첫 번째 일기

2022년 5월 5일

by KIKI




갑자기 그런 게 궁금해졌다.

내가 얼만큼의 얘기를 할 수 있고, 얼만큼의 얘기를 할 수 없는지.


위의 문장에는 '사실'이라는 단어가 빠져 있다. 다시 덧붙여 쓴다. 내가 얼만큼의 사실을 얘기할 수 있고, 얼만큼의 사실을 얘기할 수 없는지. 그리고 더이상 고칠 게 없는 문장을 완성한다.


곰곰 따져보면 사람이 필요한 이유는 지루함을 견딜 수 없어서인 것 같다. 가만히 혼자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게 지루하고 지겨워서, 자꾸만 누군가가 필요해지는 걸지도. 그런데 누군가와 같이 있어도 지겨운 느낌이 드는 건 똑같잖아? 그래도 그건 좀 다르다. 적어도 무슨 일이 일어나기는 하니까. 아주 작고 사소한 일이라도.


어젯밤의 분위기. 그런 것도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서로 아무 말도 없이 마주 앉아 술 잔만 홀짝이고 있던 거. 그리고 문득 알게 된 사실, 그가 눈앞에 나를 견디고 있다. 참 웃기다. 정적만으로도, 분위기만으로도 파악되는 게 있다는 거. 헐벗겨진다는 게 이런 것일까. 어젯밤이 그랬다. 서로 굳이 보이고 싶지 않은 속을 훤히 드러내 보인듯한 느낌. 투명하게 떠오른 그의 마음이 텅 비어 있다고 해서 그에게 그걸 따져 물을 수도 없었다. 그쪽에서 보이는 내 마음도 텅 비어 있기는 마찬가지였을 테니까.


요즘엔 상처 주는 일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이렇게 따져 묻고 싶다. 왜 나에게 상처를 줬어? 그리고는 똑같이 상처를 내고 싶다. 마음을 거세게 휘저어 놓고 슬픔을 곳곳에 걸어 놓고 싶다. 왜냐면 내가 계속 그런 상태에 붙들려 있으니까. 아무래도 내 상처는 누군가의 상처로 대치되지 않고는 순환할 수 없는가 보다. 하나의 상처에 비견할 또 다른 상처가 아니고서는 결코 물러서지 않는가 보다. 아니면 뭐 그냥 내가 찌질하고 음산해서 그런 걸지도. 그래도 별 상관은 없고 어쨌거나 나는 매일 상처를 곱씹고 복수를 골몰한다.


더 한심하고 화나는 건 많은 시간을 그렇게까지 상처만을 생각하는 일에 허비하면서, 정작 아무 것도 실행에는 옮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상처를 정당화하기 위해 똑같은 상처를 만들어내는 일, 그것을 스스로 정의라고 내세웠으면서도 지키지 못한다는 거.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나한테 말이야. 두렵겠지. 또 질까 봐. 또 상처를 얻고서 상처에 갇히게 될까 봐. 찌질하고 비겁해.....


근데,

참 시시하다.

겨우 그런 이유들.


겨우 그런 이유들로 내가 다쳐야 했다니.







/브리즈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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