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마지막 일기

by KIKI


2022년 5월 28일 토요일




도대체 난 그걸 어쩌다 잃어버렸을까? 어느 날 갑자기 증발해버린 그것에 대해 자꾸만 생각한다. 잃어버린 것은 확실하나 정확히 어느 시점에, 어디에서 어디로 가버렸는지 모르겠는 그걸. 갑자기라곤 했지만 사실 돌이켜보면 어떤 예감 같은 게 있었다. 그것이 내 손아귀에 위태로이 머무르던 내내, 언젠가는 기필코 그것이 손아귀 틈 사이로 빠져나가고 말리라는 예감, 그럼에도 도무지 꽉 쥐어지지가 않던 무엇. 그래서인지 그걸 잃어버렸다는 걸 알아차린 첫 순간에도 그리 놀라지는 않았다. 일어날 것 같은 일이, 일어나버렸네. 이게 그 물건을 잃어버린 내 최초의 반응이었다.



그것에 관해 더 말해보자.



은색 빛깔의 세련되고 깔끔한 외형을 가진 그 물건은 기린이 나에게 준 유일한 ‘무엇’이다. 그날 그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민트색 계열의 화사한 종이 가방을 내게 건넸을 때 나는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너무 뜻밖의 일이어서 그렇기도 했지만, 뭐랄까, 그걸 받아들던 순간 직관적으로 내 몸을 감싸고돌던 느낌들이 있었다. 내 것이 아니라는 어색함. 이질감. 거리감. 안에 든 내용물을 확인하고 나니 느낌은 곧 확신이 되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상자 안에, 반짝이는 그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한동안 응시하면서, 나는 꼭 누가 몰래 훔쳐온 행복을 쥐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좋아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고, 어딘가 불편하고 찝찝한 기분에 줄곧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니까 이 유실은 그 물건에 편중된 불신으로부터, 내 것이 아닌 것을 알고서 그것을 대하는 모종의 태도와 감정으로부터. 결여된 애정으로부터, 이 총제적 낙인으로부터 일찍이 예견된 일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 물건의 주인이 아니라는 걸 처음부터 알았듯, 그 물건도 내가 자기의 주인이 아니라는 걸 알아본 것 아닐까. 서로가 서로를 원하지 않아서, 서로가 서로에게서 증발해버린 것이 아닐까.



나와 아주 오랜 세월을 함께한 몇몇 물건의 지속성을 따져보면 이 사건의 배후를 더욱 잘 파악할 수 있다. 이를테면 천사가 선물해 준 하트 모양의 큐빅 목걸이, 내가 처음으로 산 가느다란 골드링, 낡은 인조가죽의 카드 지갑과, 호주로 떠나기 전 기념의 의미로 받은 테니스 공, 습작 시절에 쓴 시들이 담긴 메모리 카드 등등. 단 한 번도 나라는 반경을 벗어난 적이 없고, 지키기 위해서 고군분투할 필요도 없이 항상 손 뻗으면 닿는 자리에 있는 것들. 소중하지만 그렇다고 애지중지 다루는 것은 또 아니고 오히려 질서 없이 아무렇게나 둘 때가 많은데, 매번 찾으면 반드시 찾아지는 것들. 흐르는 시간과 함께 나를 거쳐온 것들. 흐르는 나와 함께 시간을 지속해온 것들. 미래에도, 이렇게, 반드시, 있을 것만 같은 것들.



십 년이 지나도 나를 절대 벗어난 적 없는 물건이 있고, 단숨에 왔다가 단숨에 사라져 버리는 물건이 있다. 시간이 세월이 되기도 전에,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사라져 영영 볼 수 없게 되는 것들이 있다. 영원성과 지속성을 동시에 걸어 두는 운명이 있고, 영원성과 지속성을 동시에 깨부수는 운명이 있다. 그 차이는 무엇에서 비롯될까? 또 나는 왜 그것에 대해 자꾸만 생각할까? 잃어버릴 걸 알면서 잃어버린 것에 대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에 대해.



아쉽다거나 아까워서는 아니다. 미련이나 희망이 남아 있어서도 아니다.

말하자면 그것이, 기린이 나에게 준 유일하고도 무이한 무엇이었고, 무엇일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 존재의 있었음을 훗날 추억할 만한 무엇, 그 단서 말이다.











/브리즈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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