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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기 Jul 29. 2017

이제 그만해

이란에서 만난 또 다른 사람


여행 갔을 때 어디가 가장 좋았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

별 의미 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하지만 보통 이란이라고 한다.

왜냐고 이유를 물으면 '사람들이 좋았다. 친절하고 따뜻하고 정말 바라는 것 없이 베풀어 주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같은 이란을 여행한 사람이라도 우리와는 다른 사람을 만나고 겪어서 이란이 최악의 여행지였다고 할 수 도 있다. 스페인에서 우린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사람을 만났지만, 같은 숙소에 묵고 있던 남자는 소매치기를 당해서 카메라와 여권을 모두 잃어버린 것처럼 개개인의 여행은 모두 다른 것이다. 그 소매치기를 당한 사람에게는 스페인이 최악의 여행지로 기억될 것이다. 여행에서는 선견지명은커녕 매 순간마다 예측 불허한 사건이 연속된다.


이란 아자르샤의 현지인 집에서 묵으며 엄청난 친절에 둘러싸여 지내던 우리가 그 동네를 떠나 라쉬트로 향하는 길 위였다. 버스 안에서 한 청년이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고 여행 중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자기 집에 초대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가 풍기는 분위기가 그렇게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어떻게 할까 아주 잠깐 고민하다가 그러기로 했다. 그가 혼자 사는 집이었다. 우리가 머물 방을 안내받고 거실로 나와 차를 마셨다.


서울에 올라와 혼자 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교대역에서 집으로 가는 길 누가 길을 물어본다. 난 이상하리만치 평소에 길 물어보는 사람을 많이 만난다. 또 그러려니 하고 길을 가르쳐줬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대화가 이어졌다. 그는 자기가 여기는 처음 와서 길을 잘 모른다. 서울에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등 이런저런 말을 했다. 행색이 좀 남루해 보여 좀 안쓰러웠고 나도 지방에서 올라와 혼자 생활하는 처지라 공감 가는 것도 있어 이런저런 넋두리를 들어주었다.


일명 '도를 아십니까'였다. 근처에 좋은 곳이 있으니 같이 가보자고 했다. 사양하고 돌아섰는데 자꾸 따라왔다. 집으로 가면 사는 곳이 노출될 것 같아서 갈 수 없었다. 끈질긴 인간이었다. 일부러 지하철을 타고 고속터미널까지 갔는데 거기까지 따라왔다. 사람이 많은 서점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떠나지 않고 다시 말을 건다. 조용히 화를 내고 책을 보는 척 무시했다. 한참을 주변을 어슬렁 거리다가 가버렸다.


이름은 밥이라고 했다. 밥은 차를 마시면서 알라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믿든 믿지 않든 무슬림에게 종교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많지도 않을 것이고 흥미로워서 대화를 나누었다.  난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물어댔다. 그럼 신은 누가 창조했느냐? 밥 네 말대로 무함마드가 예수 이후 나온 최신 버전이라서 더 좋다고 한다면 무함마드 이후에 더 좋은 존재가 나온다면 그 사람? 신?을 믿어도 되느냐? 는 등, 잘 못하는 영어로 묻고 밥도 잘 못하는 영어로 대답을 해줬다. 중간에서 아내가 똑똑하게 정리해서 대화를 잘 만들어주었다. 아내가 설명을 잘 해주니까 좋아하고 난 자기가 한 말을 잘 안 받아들이니까 별로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러면서도 알라에 대해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어서 즐거운 시간이고 행복하다고 했다. 정신승리인가? 밥의 결론은 의심하지 말고 모함마드를 믿고 공부하라는 말이었다. 공부하고 믿으라는 말이기도 했다. 그게 그거고 내겐 아무 상관없지만.


저녁을 먹기 전 밥은 알라에게 기도할 시간이 되었다면서 거실에서 메카를 향해 기도를 드렸다. '나의 신심을 보라. 성스럽고 행복해 보이지 않는가!'라고 보여주기 식 행동인 거 같아서 좀 웃겼다. 어떻게 보면 순수해 보이기도 했다. 다음날 밥은 자신의 부모님 집에 같이 가자고 했다. 아자르샤에서 만났던 현지인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가족들에게도 여행자에게 베푸는 친절이 가득했다. 특히 밥의 누나가 매우 멋졌다. 대학교수라고 했는데 나와 아내가 묻는 이란의 사회 상황이라든가 종교로 인한 여성의 문제 등에 대해서도 지혜롭게 대답해주었다. 그런데 밥이 자꾸 끼어든다. 항상 초조한 분위기로 밥은 얘기를 한다. 또 알라 타령이다.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식이다.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자신이 답답하기도 했겠지만, 더 이상은 들어주기 싫었다. 조용히 화를 냈다.


"이제 그만해. 더 이상 종교로 우리에게 압박을 주지 마."


그렇게 딱 하루를 묵고 우리는 밥의 집에서 떠나왔다. 밥도 우리를 붙잡지 않았다. 우리도 밥도 더 이상 아쉬울 게 없었다. 여행이든 삶이든 언제 어디를 가든 우리 마음이다.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 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무섭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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