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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기 Jul 16. 2017

나의 꿈은 너의 여행

일상+여행+꿈+현실

누군가 있다.

깜깜한 방에 누워있는데 대문 밖에 누가 있다. 사람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대문을 만지고 있는 손이 보인다. 무서움에 옆에 누워있는 아내를 부르지만 대답이 없다. 밖에서 사람들 목소리가 들린다. 불안하다. 대문 위로 키 큰사람이 우리를 들여다보다가 사라졌다. 얼굴은 어두워서 안보였다. 다시 말소리가 들린다. 영어로 뭐라고 대화를 한다. 방 안으로 쳐들어 올 것 같아서 대문을 점검하려고 했지만 몸이 일어나 지지 않는다. 계속 사람들이 수상하게 밖에서 서성이면서 말을 하고 있다. 무섭다.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다. 또 대문 위로 우릴 내려다본다. 문이 열렸고 긴 곱슬머리 금발의 남자가 건장한 몸으로 순식간에 안으로 들어왔다.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놀라서 움직이지 않는 몸을 간신히 벌떡 일으켰는데 침대 위다. 한참을 침대에 앉아있다. 심장이 세게 뛴다.


그러나 집을 찾은 이는 반가운 친구다. 인천에 사는 미국인 친구인데 서울에 놀러 올 때면 가끔 우리 집에서 묵는다. 훤칠한 키에 조용한 말투, 호기심 있는 눈빛으로 우리의 일상을 탐험한다. 신중하게 셔터를 누른다. 

친구가 한 번은 이렇게 물었다. 

"왜 한국 셔터문에는 다 빨강 노랑 파랑 세 줄로 색이 칠해져 있는 거야? 거기에 어떤 뜻이 있는 거니?"

"글쎄......, 그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네? 왜 그런 거지?"

여행자의 눈을 통해 나는 내 주변을 다시 눈여겨보게 된다. 일상이 새로워진다.


어딘가에 갇혔다. 머리가 긴 어떤 서양 노인이 날 죽이면 너흰 여길 못 빠져나갈 거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리고는 불을 끄고 스위치를 부쉈다. 어둠을 상상했다. 가슴이 답답하고 호흡이 어려워졌다.


어딘지 모를 거리를 계속 달리고 있다. 택시기사에겐 목적지를 아냐고 몇 번이고 확인해보지만, 별로 소용이 없다.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늦게 예약한 숙소 앞에 도착했다. 길을 못 찾아서 오랫동안 택시를 탔으니 처음 얘기했던 택시비보다 1.5배 더 받아야겠다고 택시기사가 말한다. 그런 게 어디 있냐며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데 게스트 하우스 직원이 나왔다. 백발이 성성한 직원이 택시기사와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더니 갑자기 버럭 꾸짖는다. 비쩍 마른 직원이 어떤 거구의 장사보다 강단 있어 보였다. 택시기사가 구시렁거리면서 처음 흥정했던 돈만 받고 운전석에 올랐다. 택시가 떠나자 직원은 무표정한 얼굴로 우리를 안으로 안내했다. 


나는 도로의 CCTV 카메라인가? 화질은 좋지 않아 브라운관 티브이 화면 같다. 신혼여행 연보라 오픈 스포츠카 교통사고 모르는 얼굴들 사고 장소 구미 도로에서 차가 빙글빙글 돌면서 가는 게 슬로비디오로 보이고 낭떠러지 추락하고 죽은 신랑은 처박힌 자동차에 옷걸이의 정장처럼 걸려있고 웨딩드레스 신부만 빠져나와 어딘가로 달려간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마드리드의 밤은 술렁인다.  백화점 쇼윈도 유리 너머에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인형들이 반짝이는 사탕과 케이크로 도배된 바닥 위에 우뚝 올라서 있다. 지하철로 내려가는 인파에 휩쓸려 들어간다. 아내 옆을 지나가던 한 여자가 아내에게 말을 한다. 뒤에 소매치기가 있으니 가방을 잘 챙기라고. 그리곤 자기 일상의 속도로 가던 길을 간다. 현지인만이 가진 능력으로 여행자를 보살핀다. 우리는 알아채지도 못한 도움으로 우리의 여행을 이어갔던 것인지도 모른다.


학교 같은데 미술시간. 캔버스에 손으로 젯소를 칠하고 그릴 것을 생각한다. 이상의 얼굴을 그리려다 커다랗고 깊은 구멍을 그리기로 한다. 그 구멍은 초록 식물의 손바닥 모양 무성한 잎들 사이에 있다. 잎의 뒷면은 연하게 칠해야겠다고 생각한다. 한없이 깊은 구멍 거기로 빨려 들어가는 걸 표현하기 위한 붓터치를 고민한다.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면서. 두텁게, 완전한 검은색, 반사광이 없게... 이런 것들을 생각한다. 구멍은 구분할의 어느 한 교차점에 있다.


히말라야의 로지에서 흥겨운 밤을 보냈다. 창은 한 모금도 안 마신 포터가 북소리에 취해 래썸삐리리를 부르며 춤을 춘다. 노래는 은하수보다 길게 히말라야의 깊은 밤 속을 흐른다. 건물 밖으로 나와 하늘을 본다. 검은 하늘에 무수히 많은 별들이 반짝인다. 검은 하늘이 더 어두워서 별은 더 빛난다. 검고 검은 하늘이 아름다웠다.


지하철 창으로 아침 햇살이 들어온다. 지하철이 멈추고 사람들이 내렸다. 플랫폼에서 나오자 바로 어느 히말라야의 골목길로 이어진다. 배낭을 멘 어느 여행자가 지하철에서 내가 떨어뜨렸던 블랭킷을 거넨다. 고맙다는 미소에 그도 미소로 답한다. 고개를 들자 마른 흙빛 골목길이 위로 구불구불 이어진다.


오락가락하는 비로 갈리시아의 공기는 축축하게 젖어 있다. 시골집 처마 밑에서 잠시 비를 피하며 쉬었다. 판초우의를 입었지만 안에는 비대신 땀으로 다 젖었다. 빗방울이  처마 끝에서 똑똑 떨어진다. 돌로 포장된 길이 빗물에 번들거린다. 어디선가 스르렁 스르렁 소리가 젖은 공기에 울려 퍼진다. 스르렁 스르렁. 점점 더 가까워지지만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리다. 갑자기 눈 앞에 커다란 소가 지나간다. 어슬렁어슬렁 걷는 소의 목에는 굵다란 쇠사슬이 묶여있다. 축 늘어진 쇠사슬이 돌길에 스치면서 스르렁 스르렁 소리를 낸다. 밀도 높은 공기에 소리가 울려 더욱 기이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거기에 느릿한 소의 속도가 그 순간을 낯선 시간으로 이끈다. 분명 내 눈 앞에 보이는 장면인데 이질감을 느낀다. 뭉근한 수프처럼 그 장소가 눈 앞에서 흘러내린다. 분명 현실에서 걷고 있는 까미노 데 산티아고 길 위인데, 난 꿈속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어슬렁 스르렁 소가 지나간 자리를 한참 멍하니 보고 있었다.


언덕을 뛰어올라 갔는데 바로 낭떠러지가 나왔다. 달리는 속도를 멈추지 못하고 떨어질 것 같았는데 각목 세 개가 걸려 있다. 휘청거리는 각목(안마당에 바람막이를 만드는데 썼던 것이다)을 엉겁결에 반사적으로 밟고 건너갔다. 가슴 떨려 죽을 것 같으면서도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이내 다시 돌아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룸비니에서 만나 포카라에서 친해지고, 여행에서 돌아와 연남동에 이 집을 구할 때 같이 부동산을 돌아다녀줬던, 지금은 호주로 가서 공부를 하고 있는 동생이 텅 비어있는 동진시장에서 침낭을 깔고 자고 있었다.


"너 왜 여기서 자고 있냐?"


"어, 오빠~ 나 집 구해야 하는데 아직 못구했스~"


집이 없다는 녀석이 걱정도 없이 해맑게 웃는다. 


파도가 밀려오고 쓸려가듯 여행이 일상에 닿는다 

태풍이 불면 파도가 거세지듯 일상이 괴로울수록 더욱더 여행 생각이 난다. 

일상을 여행처럼만 살면 일상이 괴롭지 않을까? 

그러면 여행은 일상과 달리 전혀 괴롭지 않은 일일까?


남의 일상은 나에겐 여행이 될 수 있다.

나의 일상도 남에겐 여행이 될 수 있다.

내가 꾸는 꿈이지만 그 꿈은 나의 세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세계일 수도 있다는 말을 어디서 봤더라?


집을 구하지 못했다던 그 동생은 어쩌면 호주에서 여행 중인 것은 아닐까? 호주 어느 광대한 벌판 한가운데 캠핑으로 하룻밤을 보내는 동안 나의 꿈속 동진시장으로 온 걸지도 모른다.


당신의 꿈에서 전혀 알 수 없는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이상하게만 여기지 말기를. 어느 누군가가 당신의 잠을 빌어 자신의 세계를, 자신의 여행을 펼쳐나가는 것일 수 있으니. 그 꿈을 해석하려 하지 말고, 자신의 현실에 묶어두려 하지 말고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고 상상하면, 그러면 꿈도 현실도 좀 더 자유롭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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