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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기 Jul 09. 2017

자전거가 나의 가슴으로 들어왔다.

나의 자전거 생활

집에서 뒹굴거리며 페이스북을 보다가 주변에서 열리는 이벤트를 보게 되었다.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하는 자전거 업싸이클링 워크숍이었다. 참가비 2만 원. 주최 측이 제공하는 헌 자전거에 참가자가 요래조래 꾸며서 업싸이클링을 한다. 주최 측에서 자전거를 행사 동안 사용한 후  프린지 페스티벌이 끝나면 참가자가 자기가 그 자전거를 가져가도 되는 것이었다. 2만 원에 자전거 한 대가 생기는 것이다. 월드컵 경기장에서 하니까 가깝다. 가성비 좋다고 생각이 되어 참가 신청하였다. 집에 자전거가 한 대 있지만 사이클이었다. 바구니도 없었고 뒤에 안장도 없어서 슈퍼에서 장을 보기에도 불편하고 아내를 태우고 다닐 수도 없었다. 신박한 걸 하나 만들어올 테다. 자전거에 아내를 태우고 동네를 돌아다닐 생각을 하니 신이 났다.


워크숍에 참가한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친구와 함께 참가한 젊은이들, 어린 아들의 체험교육을 위해 온 것 같은 아빠와 엄마, 중년을 넘보는 나이에, 게다가 홀로 참가한 사람은 나뿐이었다. '역시 지금 내 또래들은 열심히 일을 하고 있나 보군.' 어색한 분위기에 왠지 느껴지는 소외감에서 벗어나고자 열심히 자전거를 고치고 꾸미기 시작했다. 업싸이클링을 위한 재료로 형형색색 페인트과 테이프 인조가죽 등이 구비되어 있었다. 특별한 공구가 필요한 작업은 행사요원이 도와주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작업을 즐길 수 있었다. 내가 고른 자전거는 아주 평범한 장보기용 자전거였다. 앞에는 바구니가 달려있고 뒤에는 짐을 싣는 받침대가 있는 평범한 장보기용 자전거였다. 누가 이 자전거를 탔었을까? 여기로 오기 전 이 자전거는 어떤 동네에서 그 동네의 슈퍼와 학교와 골목들을 누볐겠지? 처음엔 누군가가 애지중지하는 애마였을텐데 이제는 페달도 하나 없고 안장도 찢어진 채로 버려졌다가 여기까지 온 게로구나. 내가 예쁘게 되살려 줄게. 우리 동네를 함께 다니자.

단순하게 꾸미기로 했다. 두 가지 색깔만 쓰고 어딘가 포인트를 주기로 구상을 했다. 자전거 몸통은 크림 화이트 컬러로 페인트칠을 하였고 앞 바구니와 브레이크 와이어 등을 초록색으로 꾸몄다. 안장이 중요했다. 집에 있는 사이클 자전거의 안장은 너무 날씬하고 푹신하지 않아서 잘 안 타게 되었다. 엉덩이에 무게를 실을 수 있는 푹신한 안장이 필요했다. 다행히 쓰지 못하는 부품은 다른 폐자전거에서 쓸만한 걸 떼다가 교체해 주었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안장을 고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푹신한 안장을 화려한 금빛 인조가죽 천으로 감쌌다. 포인트 주기 성공. 그래 봤자 새 자전거의 매끄럽고 반짝이는 자태를 따라가기엔 한참이나 부족했지만 나름 하얀색의 몸통에 금빛 안장이 한가운데 박힌 자전거가 심플해 보이면서도 멋있어 보였다. 조선 백자의 검박함과 고려청자의 화려함이 근대문명의 기계 미학 속으로 절묘하게 녹아들었다는 과장법을 사용하고 싶었다. 좋아 마음에 들어. 나중에 프린지 페스티벌 홍보영상에서 내가 업싸이클링 한 이 자전거가 알록달록한 자전거 무리의 한가운데를 달리는 걸 발겼했을 때는 어찌나 뿌듯하던지. 푸하하하.

갈비뼈가 부러졌다. 두대 금이 갔다. Linear fracture line at RT 2nd, 3rd rib anterior arch. 우측 제 2,3 늑골 다발성 골절. 사이클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을 달리며 망원동에서 강남까지 1시간 넘게 출퇴근을 할 때도 어디 부러진 적은 없었는데, 이 평범한 자전거를 타다가 갈비뼈가 부러졌다. 프린지 페스티벌이 끝나고 업싸이클링한 자전거를 가져왔다. 월드컵 경기장에서 불광천을 타고 홍제천을 지나 집까지 자전거를 타고 왔다. 뒤에는 아직 '프린지'라고 글씨가 쓰인 깃발이 달려있었다. 슈퍼에 가는 게 정말 편했다. 무거운 맥주나 생수병도 자전거에 실어서 오면 어깨 아플 일이 없었다. 배달 서비스를 하지 않는 치킨집과 피자집에서 주문한 음식을 가지고 올 때도 자전거를 타고 갔다 오면 금방이었다. 아내를 태우고 다니기 위해 뒷짐 받침대에 덧대어 설치하는 안장을 샀다. 자전거용 라이트도 달아주고 금색 따릉 따릉 벨도 달아 주었다. 자전거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아내를 마중 나갔다. 뒤에서 내 허리를 감싸 안은 아내의 손을 한 번씩 어루만지며 집에 돌아오는 자전거 위의 시간이 행복했다. 그렇게 일상에 즐거움을 더해주던 나의 자전거 라이프가 자전거 우선 도로에서 금이 갔다.

보도와 붙어있는 자전거 전용도로는 자전거가 도로를 전용할 수 없다. 보행로와 자전거 도로 사이에 난간이 없으면 보행자들이 그냥 자전거 도로로도 걷기 때문에 늘 조심해야 한다. 인도에서는 자전거가 사람을 치면 무조건 자전거가 잘못이다. 인도로 자전거를 타고 가기에도 힘들다. 보차 혼용도로에서는 자동차나 보행자가 구분 없이 다니니까 오히려 자전거도 천천히 편하게 다닌다. 언제부턴가 차도 가장 끝 차선에 자전거 우선 도로라는 것이 생겼다. 자전거 우선이라고 도로에 표시되어 있으니까 좋다고 그 도로를 이용했는데, 자전거 우선이란 말은 자전거가 먼저 사고를 당할 것이라는 뜻 같을 정도로 위협을 느낀다. 그 어떤 자동차도 자전거를 우선 배려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쌩쌩 무섭게 지나치는 자동차들 때문에 자전거 우선 도로 이용할 마음이 잘 들지 않았다. 

홍대입구역이 있는 큰 도로에도 자전거 우선 도로가 있다. 집에서 홍대 방향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 골목도로에서 큰 도로로 나가야 했다. 저녁 퇴근시간 지하철역 주변이라서 인도에는 사람들로 붐볐다. 자전거 우선 도로로 접어들었다. 혼잡하기는 차도도 마찬가지였다. 막히는 도로에 자동차의 움직임에는 운전자의 짜증이 그대로 드러났다. 갑자기 속도를 내고 조금만 사이가 벌어지면 차선을 변경하고 끼어들었다. 나는 자전거 우선 도로 끄트머리에서 요리조리 빨리 가다가 천천히 가다가를 반복했다. 뒤에서 빵빵거리는 자동차 소리에  빨리 비켜주려고 페달을 세게 밟았다. 그러다가 자전거에서 뛰어내렸다.  앞에 가던 차의 뒷문이 갑자기 열려서 반사적으로 핸들을 꺾고 인도 난간에 부딪히려는 자전거에서 뛰어내린 것이다. 자전거는 인도 난간에 부딪혔다. 내 가슴은 자전거 핸들에 부딪혔다. 초록으로 칠한 바구니가 구겨졌다. 그나마 나는 착지를 잘해 넘어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차에서 내리던 탑승객이 놀란 눈으로 휘둥그래 나를 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며칠이 지났지만 가슴의 통증이 호전되지 않았다. 괜찮은 것 같다가 움직이면 또 아팠다. 그냥 참았는데 그래선 안될 것 같았다. 동네 정형외과병원을 찾았다. 몸이 아파서 병원을 방문한 건 몇 년 전 여행 중에 방콕에서 요로결석 때문에 병원에 간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만큼 평소에 좀 아파도 병원을 잘 찾지 않는 성향이었다. 엑스레이 촬영을 하고 진찰을 하러 들어갔다. 엑스레이 사진을 보던 의사가 심각한 얼굴로 MRI를 찍어봐야 한다고 했다. 이 병원에는 MRI 장비가 없으니 영상의학과 의원에 가서 찍어오라고 했다. 엑스레이로 끝날 것 같았는데 이렇게까지? 하는 생각으로 택시를 타고 병원에서 알려준 영상의학과 의원에 가서 MRI를 찍고 다시 촬영 결과를 가지고 다시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돌아왔다. 진찰할 때는 중환자처럼 말하더니 다른 병원으로 혼자 택시 타고 가서 택시 타고 돌아와야 한다니 기분이 나빴다. 


다시 진찰실로 가자 MRI를 확인한 의사가 다시 호들갑을 떨었다. 아주 큰일이 일어난 것처럼 강한 톤으로 말을 한다. 폐에 구멍이 뚫리지는 않아서 다행이라고. 갈비뼈를 세게 누르면서 - 부러지지 않아도 그렇게 세게 누르면 아플 것 같았다- '아악!' 통증에 인상을 찌푸리자 거 보라고 맞다고 가슴에 주사를 두 대 놔준다. 의사는 진통제를 팔았다. 움직이지 말고 조심히 다녀야 한다고 한다. 잘못하면 어떻게 어떻게 될 수 있다며 으름장을 놓듯이 말했다. 아니 그 정도면 왜 MRI 촬영하는 건 혼자 가게 한 거지? 의사의 그런 태도가 미덥지 못했다.

심지어 옆에 있던 간호사도 의아한 눈빛으로 의사를 보며 물어본다.

"복대 해줘야 하나요?"

"당연하지! 얼른 하나 가져와요."

의사는 복대 하나 팔았다.

의사가 입원을 하겠냐고 한다. 뭐지? 갈비뼈는 깁스도 할 수 없고 진통제 처방이 다라고 해놓고는 왜 입원을 권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입원하고 있으면서 입원비랑 약값을 갖다 바치라는 건가?


'이 사람은 나를 환자로 보는 거야? 호 갱이로 보는 거야?'


치료실로 들어와 엉덩이에 주사를 하나 더 맞고 진통제 링거를 맞고 전기치료기 같은걸 붙이고 누웠다. 약이 다 투여되려면 30분 정도 걸린다고 했다. 병원 천장을 멍하니 보고 있으니 방콕에서 갔던 병원이 생각났다. 친절히 내가 가는 곳곳을 계속 인솔 안내해주던 직원과 차분한 말투로 진료를 해주던 의사. 이래서 사람들이 의료관광이라는 걸 하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경험이 떠올랐다. 약 투여가 끝난 후, 이 병원에는 다시는 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을 하며 일어났다. 복대를 여미고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병원을 나왔다. 점심을 먹고 병원을 왔는데 벌써 햇빛이 하늘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집으로 오는 길 퍼렇게 멍이 든 가슴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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