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기 Nov 01. 2020

하기도 힘들고
하기 싫다고 말하기도 힘들고

Ep. 10 하고픈 건 안되고 멈춰버린 것 같은 몸과 맘에 쪼잔함만 추가


8/3
잠을 제대로 못 잤다
10시 반에 자서 11시 11분에 무서운 꿈 꾸고 깨고 3시에 깨고 5시 6시에 깼다.
그러고는 낮잠이 와서 멍

8/4 새벽
일찍 자면 또 깰까 봐 자꾸만 늦게 자려고 하게 된다
조르주 바타유의 하늘의 푸른빛을 다 읽었다 (지금은 내용이 기억이 안 난다)

갑갑하다 갑갑하다 갑갑하다 갑갑하다



8/4
아내가 도와주기 원하는 일을 하기 싫다고 했다. 

하기 싫은 것... 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도 별로 없구나! 뭐하러 이렇게 연명하고 있을까?

내가 싫다고 해서  기분이 안 좋냐고 물었다 
아내는 하기 싫다고 하면서 자기 기분 좋기를 바라냐고 했다.
그래 이런 내가 나도 싫다고 했다.
그 와중에 아내는 다 품어주는 남편이 없어진 것 같다고 울었다.
난 작은 것들이지만 하고 있는 것도 있다고
-집안일들 빨래, 설거지, 방바닥 옷 정리, 먹을 거 사 오기 등- 전체 일상 중에 하기 싫은 것은 일부분이라고 했다

아내는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라고 했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자기에게 잘해주는 나를 좋아한 것일까?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본 적는 생각이었다


창밖으로 뛰어내리는 상상을 하면서 충분히 높지 않다는 게 서글펐다. 

뛰어내리지도 못할 거면서



8/4 상담 4회 차
약한 김정기도 있다. 

그렇다. 어릴 때부터 독립적으로 자기 하고픈 일은 스스로 해야 한다고 교육받았다

남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생각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머리에 새겨져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래야 한다고 자동적으로 생각이 이어졌다

어쩌면 직장에서 힘들었던 것에 그런 생각도 한몫한 것이 아니었을까?



저녁
과자를 사 왔다 먹다가 그만뒀다
내가 역겹다

내일 교육 가기 싫은데
아내한테 가기 싫다는 말을 꺼내기가
너무 어렵다
내가 같이 안 가면
수원 먼 곳까지 아내 혼자 갔다 와야 하는데

괴롭다

아내에게 짐이 되는 것 같다
나 때문에 현정이도 우울해지면 어쩌지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오는구나



"나 교육 가기 싫어."  

결국 말했다. 

말하는 순간 뭔가 무너지듯 울어버렸다. 

침대에 엎드려서 울었다. 

"나 정말 가기 싫은 데 가기 싫다고 하면 또 아무 쓸모도 없는 사람인 것 같고 

당신 혼자 열심히 하는데 나는 하기 싫다는 마음만 든다는 게 죄책감이 들어서 하기 싫다는 말을 하기도 어려워. 뭘 하는 것도 힘들고 하기 싫다고 말하는 것도 힘들고  

다 힘들어 답답해 아아아아아." 


아내는 나를 쓰다듬으면서 괜찮다고 같이 안 가도 된다고 달래 주었다. 

애를 키우는 것도 아닌데 다 큰 남편을 달래줘야 하고 참...
나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냐 어휴...


8/5 진료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조급해지고 있었다
소주 생각이 한 번씩 나요.
낮잠이 온다
밤잠이 더 불안정해졌어요.
약 언제까지 먹어야 해요?
일찍 10시 반쯤 잤을 때 11시 11분, 3시, 5시 에 깼어요
1시 반에 잤을 때 6시 반쯤 깼고요
그저께 어제 컨디션이 안 좋았다 식은땀이 나고 기운이 빠져서 괴로웠어요 
속도 안 좋아요 가스 찬 느낌 꾸룩꾸룩


약을... 언제까지... 먹어야... 나아요?
점점 멍청이가 되는 거 같아요


-속 안 좋은 약 빼고
도파민 활성화를 돕는 약을 넣는다고 했다

부프로피온 염산염 150mg

http://www.health.kr/searchDrug/result_drug.asp?drug_cd=2016083100009

(알약을 보니 뭔가 낯이 익어서 이전의 기록을 보니까 4/2일에도 처방을 받았던 약이다)


수면제는 다시 강한 약으로 받았다

8/7
이유 없이 코가 시큰하며 눈물이 난다
슬프다

8/8
오늘도 밤이 되자 이유 없이 슬퍼졌다 눈물이 맺힌다
약 때문인가?


8/14
오늘은 점심 이후로 기분이 그냥 그랬다가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머리도 무겁고 기분이 더 안 좋아졌다
요즘은 저녁에 잘 슬퍼지는 것 같다 
슬픈 영화를 보고 싶기도 한데 넷플릭스엔 마땅히 끌리는 게 없다



아내가 아이스크림을 사다 주지 않아서 내가 사 오고 나서 화를 냈다

내가 먹고 싶다는데 좀 나가는 게 그렇게나 싫을까 서러웠다
게다가 내가 나간다니까 자기 것도 사 오라고 해서 화가 났다


"좀 너무 한 거 아냐!?"


차갑게 화를 냈다

아이스크림을 사 왔다

아내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털썩 주저앉아서 말없이 아이스크림을 퍼 먹었다. 

한 통을 한 자리에서 다 먹고 어색하고 불편한 기운에 책방으로 와서 과자를 한 봉지 다 먹었다 

한 참이 지나서 아내가 와서 미안하다고 했다

8/17
오늘 아침에야 어제 아침 약을 안 먹은 걸 알았다. 바부탱이. 자책한다. 어제는 ‘망해버려라...’ 기분이 주된 기분이었다. 밤에 아내가 일 계획을 얘기하는데 짜증이 났다. 왜 일 얘기하면 짜증부터 날까? 이러는 내 반응이 싫다.

더 마르고 싶다 삐쩍



8/18

마지막 상담을 하였다

아쉬웠다



8/19 진료

어제로 상담 끝났어요

낮에는 기분 좀 더 나아졌어요

저녁에 찡 울적

아침, 오후(5시 정도), 취침 전 약으로 하루 세 번

기억력 감퇴 >>우울한 게 나아지면 같이 좋아질 것입니다

아침 약 깜박하고 안 먹은 적 한 번

점심 식욕 좀 낮아

최근 사정이 잘 안 된 적 한 번 있었어요 

아... 그랬군요... 그럴 수 있어요 약 때문이에요. 그 약을 반으로 줄이겠습니다


8/19

영화 '증인'을 보았다

자폐가 아니면 지우가 아니다

우울이 아니면 정기가 아닐까

우울이 아닌 정기도 많겠지만 난 원래 우울했고 그러니 그걸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살까


8/25  

저녁 약 깜박하고 안 먹음


8/28

저녁 간식 등으로 폭식 경향


8/29  

약을 줄였지만 사정이 지연되는 증상은 여전했다

발기가 된 상태에서 사정이 안될 수도 있구나. 

그런 적이 없으니 당황스러웠다. 

아내도 기운이 다 빠지고 아프다고 하니까 계속할 수 없다 

스스로도 곤혹스러웠지만 아내한테도 미안했다

성관계에서 오래 할 수 있어야 우수한? 남자라는 인식은

정말 개 같은 생각이다. 함께 하는 사람이 괴로운데 그게 어떻게 좋은 관계가 될까

사정하지 않고 끝내거나 다른 방법으로 한참 동안 자극을 해서 사정하였다

사정을 전제로 하지 않고 하기도 했다



우울증 때문에 발기가 안되더니 이제는 약 때문에 사정이 힘들다

우울증 치료를 하면서 약에 의해 신체와 감정이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낯설었다. 

그리고 자기 의지라는 게 정말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도 실감하게 되었다.

'난 강하지 않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는 일이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독립적으로 자기 일은 스스로 헤쳐나가야 한다고 배웠고

남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생각에 뭐든 혼자의 힘으로 하려고 했던,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참고 버티고 살았던 내가 정말 약한 존재구나.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감정이 요동을 친다 울음이 터진다 

약의 작용으로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오한이 들고 속이 안 좋고 사정이 잘 안되기도 하고 잠 속에서 꿈을 뺏기기도 한다 이전에는 평소엔 겪어보지 못한 감정적 신체적인 증상을 경험하게 된다.  

우울증을 겪는 치료하는 과정이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시간이기도 한 것 같다 



8/31  

요즘은 기분이 많이 나아졌다

정말 6개월만 약 먹고 안 먹었으면 좋겠다


9/2 진료 가는 날

이번 약 먹는 동안 기분이 제일 괜찮았다

근데 저녁 약 바쁠 때 깜박하고 안 먹은 적이

3번 정도 있었다 대세에는 지장 없다고 하셨다.

>> 약을 유지한다


밤 약이 문제다  

아침에 너무 일찍 깬다  

어떨 땐 잠에 드는데 1시간 이상 걸릴 때도 있다 좀 더 센 걸 먹어야 하나 부작용으로 멍하거나 그러면 어쩌나 고민

내성이 생긴 거 아닌가 할 정도

>>밤 약을 하나 종류 바꾼다 : 센 약이라기보다 중간에 안 깨게 종류를 바꿔보는 것

리보트릴정

http://www.health.kr/searchDrug/result_drug.asp?drug_cd=A11ABBBBB1153 


9/3 밤

다 망해라 기분 출몰


9/6

우울기가 온 것인가

지난주까지는 기분이 양호했는데 오늘은 또 눈가가 아리 한 게 슬픈 기분이 스며 나온다


9/6 꿈에서 
도시의 모든 건물이 검은 장막으로 덮여 있었다 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포장마차도 자동차도 아무것도.
아스팔트 도로가 텅 비어 있었다
 
쾌감을 느끼는 여자의 소리가 귀 옆에서 비행기 소리가 가까워졌다가 멀어지는 것처럼 울리고 지나갔다


9/7

오늘은 좀 기분이 짜증 욱 화가 속에서 억눌린 기분


9/17
인간관계라고 할 게 아내밖에 없으니까
아내의 말에 더 예민해지는 것 같다
불만도 많아지는 것 같고
내 얘기를 제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게 되고

9/21
그래 일해야지 바쁘지 조급하지

그런데 난 자꾸 아내가 일보다 날 먼저 위해 주길 바라는 것 같다


내가 아내에게만큼은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1순위라는 걸 확인받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애처럼. 나 좀 봐주세요오오. 나 좀 봐주세요오오. 나를 좀 봐줘요오오오

칭얼대는 것처럼 보일까 난 서글픈데

점점 난 귀찮고 말도 못 알아먹고 사랑을 식게 만드는 남편이 되어 가는 것 같다
나에 대한 아내의 애정이 식은 것 같이 느껴진다
우울증 걸린 내가 일도 하기 싫어하는 내가 점점 더 싫어지면 어떡하지?
스스로도 쓸데없는 놈 같은 생각이 자꾸 드니까 더 그렇겠지
방구석에 처박혀서 아무것도 못 하면서 사진은 개뿔
존재 그 자체로도 괜찮다고? 진짜? 진짜?
인정받지도 못하는 존재가? 점점 흐릿해지는 존재가?

나가기 귀찮더라도 좀 나가서 사 올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나 어려운 일일까?
내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일까?
일이 바쁘더라도 좀 군것질거리 사 올 수 있잖아.
나갔다 오는 것 10분 걸릴라나? 10분 준비 덜해서 클래스가 큰일이 나나?

내가 바라면 안 되는 걸 바라나?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러는 나도 아내가 '오빠' 부르면 짜증을 내는구나)

'그래 말럽은 늘 바쁘지'라는 내 말이 판단이라고 지적하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건 '그래 오빠 내가 사다 줄게'하고
조건 없이 그냥 한 번쯤 해주는 거
무슨 일이 있어도 네가 제일 중요하다고 행동해주는 거
'상담 알아볼래요?'라고 신경 써주는 것보다 군것질거리 한번 사주는 게 어쩌면 내가 더 바라는 걸 수 있다

내가 이러는 게 어리광 부리고 못난 걸까?

나는 퇴행하고 있는가?

그냥 기대 안 하고 사는 게 편할라나
아내는 내가 뭐가 먹고 싶다고 해도 절대로 사다 줄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니까
떼쓰지 말고 알아서 스스로 사 먹어!라고?


'나 좀 봐주세요 오오. 나 좀 봐주세요 오오. 나를 좀 봐주세요 오오오오!
당신에게서 

이 세계에서 

내가 자꾸만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제발 나 좀 봐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