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차푸차레. 영어로 Fish tail. 물고기의 꼬리 같은 모양이라 지어진 이름이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지역에서 신성시되는 봉우리로 등반이 금지되어 있다. 해가 떠오를 때면 햇살이 꼬리지느러미에서 날리는 눈발에 눈부시게 반사되어 마치 횃불이 타오르는 듯 보인다. 해발고도 6,993미터, 돌출높이가 1,223미터니까 꼬리지느러미가 1,200미터인 셈이다. 꼬리지느러미가 있는 가장 큰 생물로 대왕고래를 상상한다. 대왕고래의 사진을 보고 어림잡아 보니 전체 크기가 꼬리지느러미의 15배 정도가 된다. 그럼 18,000미터. 지도에서 보니 서울시청에서 김포공항까지의 거리다. 시청에서 공항까지 덮는 크기의 고래가 지구에서 솟아올랐다가 히말라야산맥으로 다이빙하면서 꼬리지느러미만 보이고 있는 모습이 바로 여기 네팔 카트만두 숙소에서 창 밖으로 보이는 장면이다. 그 거대한 산이 붕괴하고 있다.
방으로 날아 들어온 석양의 빛 가루가 침대 위에 뿌려졌다. 빛 가루를 따라 창으로 고개를 돌렸다. 태양 빛이 선명하면서도 이질적인 마차푸차레에 점점 다가가고 있었다. 꼬리에 닿은 태양이 부드러운 빛 가루가 되어 연기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홀린 듯 그 광경을 보고 있는 순간, 어디선가 경보음이 들렸다. 마차푸차레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삶는 빨래가 부글거리듯이 산 곳곳에서 먼지 거품이 일어났다.
점점 크게 흔들리면서 지축이 울리기 시작했다. 히말라야의 마차푸차레가 지느러미의 골을 따라 둘로 쩍 갈라졌다. 산이 갈라지는 소리는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주파수를 넘어서는 것일까. 모든 소리가 들리지 않는 소리에 덮여 이내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순식간이었다. 소리 없이 무너진 커다란 산 덩어리가 바로 창문으로 쳐들어왔다. 거리를 가늠할 수 없던 곳에 있던 마차푸차레가 순식간에 그 질량만큼의 가속도를 받아 창을 부수고 나를 덮칠 듯 돌진해 들어왔다.
외마디 비명이 입을 떠나지도 못했다. 단두대의 묵직한 칼처럼 1,200미터짜리 지느러미 조각이 나를 쳐냈다. 얼음 조각에 잘려 나간 몸의 절단면이 보랏빛으로 급속 냉각되었다. 그 속에서 뜨끈한 피가 꿀렁였다. 이내 단면이 녹기 시작했다. 가장 얇은 얼음 면을 뚫고 피가 뿜어져 나왔다. 시시식, 시시식, 시이…….
나의 몸은 무지막지하게 질주하는 차갑고 육중한 마차푸차레의 조각에 딱 붙어있었다. 산이 사라지고 황무지가 되어버린 곳에 폐허가 된 방이 부유하고 있다. 반쪽이 된 마차푸차레는 나를 껌처럼 붙인 채 계속 폭주하였다.
운동은 뒤집힌 원뿔을 그린다.
점점 떨어지고 있다.
점점 좁아지고 있다.
꼭짓점으로 사라지고 있다.
모니터 중심에 점들이 원을 그리고 있다. 연결 중. 점들이 멈추자 화면에 상대방이 나타났다. 팬데믹으로 대면 상담을 할 수 없었다. 온라인 화상 회의 툴로 심리 상담을 했다. 나의 꿈 이야기를 들은 상담사의 목소리가 이어폰을 통해 들려왔다. 나도 모르는 내 안의 것들이 너무 해소가 되지 않았을 때 꾸는 게 이런 붕괴의 꿈이었다. 내가 재난 꿈을 많이 꿨다는 것은 자기도 인식하지 못한 채 굉장히 힘들게 버텨온 세월이 제법 되지 않았겠냐는 생각이 든다고. 바깥 상황과 나를 계속 맞춰가면서 끌어올려야 되는 상태가 지속될 때 내 마음의 상태가 꿈을 통해 나온 것일 지도 모른다. 나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버텨온 시기가 꽤 있었을 수 있겠다고.
상담사가 물었다.
“정기 님은 화를 잘 내지 않는 편이시죠. 살면서 무엇을 가장 많이 참아왔던 것 같아요?”
화면에서 눈을 떼고 잠시 망설였다. 침묵의 순간이 지나간 후 화면을 보았다. 입을 뗐다.
“저… 죽고 싶은 것을 가장 많이 참아 온 것 같아요.”
화면 속 상대의 모습이 일시 정지 상태가 되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이었는지 상담사는 몇 초간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우리는 죽음을 계속 미끄러지게 하고 있어요. 죽음이 기본값이에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죽어요. 삶이란 죽음의 유예일 뿐이에요. 밥 한 숟가락 입에서 아래로 밀어내듯 그만큼 죽음을 뒤로 미루고 있어요. 우리는 죽음을 싸면서 사는 거예요.
'나 다시 돌아갈래~~!'
사람들은 박하사탕을 보고 영화 속 설경구가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것은 죽고 싶었는데 죽지 못 한 사람의 절규예요. 다리에 총을 맞고 소녀에게 총을 쐈을 때, 그는 죽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어요. 그는 바로 그때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일지도 몰라요.
지구에서 제일 높은 산들이 붕괴해요. 빌딩보다 거대한 로봇이 내가 사는 연남동의 밤하늘을 점령해요. 로봇에 밟힌 집들이 철근을 뱉으며 무너져요. 경의선 숲길 공원에서 사람들이 눌려 죽어요. 태양처럼 둥근 살코기가 스르렁 스르렁 기계에 잘리고 있어요. 잘린 분홍빛 고기가 흐느적거리며 검은 땅을 덮어요. 하늘이 파랑인데 하늘색이 아니에요. 파랑새 떼가 지글지글 대는 날갯짓으로 온 하늘을 덮고 있어요. 어두워진 공기에 숨이 막혀요. 다들 죽고 있어요. 다들 죽고 싶은 것 아닌가요. 모두 다 죽고 사라지면 지구도 사라지면 더 이상 고통의 윤회도 없을 것 아닌가요. 다시 태어날 일도 없으니 모두 열반에 드는 것 아닌가요. 다들 죽고 싶잖아요. 당신 죽고 싶지 않나요? 안 그래요?
나는 마차푸차레 지느러미 사이에 걸쳐진 얇은 종이 위에 앉아 있다. 우울의 눈이 내린다. 종이에 내려앉은 눈이 녹으면서 종이가 젖는다. 언제 찢어질지 모른다. 거기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는 붕괴의 시간을 불안하게 맞닥뜨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