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걸으며
길을 걷는다.
갈리시아 지방으로 접어들수록 공기는 젖은 숨을 뱉는다.
대지는 그 숨으로 안개이불을 덮는다.
창이라곤 하나 없는 육중한 곡물창고
그 길에 황량함을 더한다.
다시 걷는다.
여행 막바지로 접어들수록 안개는 불안의 시간을 적신다.
설레임은 막막함으로 무겁게 가라앉는다.
앞으로 내 여행은 어떻게 계속 될까?
상상의 포말이 된 안개는 거대한 괴물을 낳는다.
괴물은 축축한 몸뚱이로 초라한 여행자의 길 위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무엇을 상상하더라도 현실은 그 이상을 머금고 있다.
모든 일은 일어날 수 있다.
또 어떻게 어디로 흘러갈 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언젠가는 끝날 것이라는 것만 알 뿐
그렇기에 그저 또 한 발 내딛어야 한다.
지금, 이 현실의 힘으로 괴물의 가랑이를 묵묵히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안개 너머 나의 길.
상상 너머 내 여행.
그 위를 다시 또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