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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기 Mar 21. 2017

네가 나 버리고 갔잖아

국경을 넘기 전

쾅!

문 닫는 소리가 가슴으로 들렸다. 그렇게 아내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눈물도 나지 않는데 눈앞이 흐릿해지고, 묶이지도 않았는데 발을 떼지 못한다.   

  

‘니들이 나 버리고 갔잖아!’     


가슴으로 고함을 치는데 입으로는 그 소리를 뱉지 못한다.      



         


어떤 사건이든 사건은 일어난 후가 문제다.

사랑의 고백보다 고백한 후가 문제다.

시험보다 시험을 치른 후가 문제다.

그리고 다툼의 매서운 말보다 말들이 지나간 후의 빈자리가 문제다. 

             

우리 앞에 무언가 던져졌을 때 그것을 비켜가든 치워버리든, 

그 뒤에 어떤 것이 다시 올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우린 늘 지나간 것과 다시 올 것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른다.

그 순간에는 그냥 버텨내는 수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걸까.    

 


           


아홉 살, 공원에서 엄마를 잃어버렸었다. 엄마가 버렸다.

이리저리 엄마를 찾아 돌아다녔다. 심장이 쿵쿵거려서 머리까지 웅웅 울려댔고, 눈물이 시선을 막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가늠할 수 없었지만,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공원을 돌아다니다가 처음 있던 자리에 다시 돌아오니, 엄마는 내 울음이 시작된 바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때가 기억 속에서 이젠 뚜렷하지는 않지만, 엄마의 표정만은 선명하다. 찾은 자식들이 전혀 반갑지 않은, 신경질적인 표정.


엄마는 다시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그 후에 돌아온 시선을 어떻게 마주 봐야 할지, 어떤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침대에 앉아있는 내게서 숙소의 방문은 저 멀리 있었고,

건조한 공기와 쓸쓸한 햇살이 한 장의 사진처럼 얇은 평면으로 맞은편 창가에 걸려 있다. 

그 사이를 아내의 부재가 채우고 있었다.

그 부재의 공간을 난 담배 연기로 밀어냈다.

     

내일은 이란으로 가는 국경을 넘어야 한다.

내일은커녕 오늘을 잘 넘길지도 모를 일이다.     

창밖의 황량한 풍경은 계속 초점이 맞지 않는데

재떨이 속 담배꽁초만 점점 촘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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