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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기 Apr 01. 2017

단골 가게 만들기 힘들다.

우리는 동네를 사랑할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하루는 산책을 하다가 점심을 먹으러 단골 돈가스 가게로 향했다. 가게가 없어졌다. 돈가스도 맛있지만 반찬으로 나오는 으깬 달걀 감자가 맛있어서 단골이 된 곳이었다. 자잘하게 다진 짭조름한 베이컨이 올라가 있어서 감자의 맛을 돋워 주었다. 그런데 더 이상 그 반찬을 못 먹게 되었다. 바로 전에 왔을 때 벽돌 건물을 디립따 이상한 자주색으로 페인트칠을 하더라니.


사장님 이렇게 페인트 냄새가 나서 오늘 장사가 돼요?


그러게요. 아무 말도 없이 저렇게 작업을 하네요. 미리 페인트 칠 할 거라고 말이라도 해 주셨으면 오늘 문을 안 열었을 텐데...


에이 휴... 참, 너무하네요. 여하튼 잘 먹었습니다. 수고하세요.


돈가스 가게 사장님과 이런 대화를 나눈 게 불과 한 달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가게가 텅 비어있는 것이다. 


동네에 단골 가게 만들기 힘들다. 단골이 되려면 일단 한 동네에 오래 살아야 하는데 세입자인 나는 2년마다 이사를 가야 하나 어쩌나 불안하다. 그나마 지금은 다행히도 살고 싶은 여기 연남동에 계속 살고 있지만, 그게 얼마나 더 갈지 알 수 없다. 그리고 한 동네에 계속 살더라도 가게들도 오래 장사를 할 수 있어야 단골이 될 텐데 어느새 정 붙이려던 가게가 다른 가게로 변해 있다. 한 동네에서 오래 살기도 힘들고 한 동네에서 오래 장사하기도 힘든 현실이다.


경의선 숲길 공원이 생겼지만 상인들은 힘들다. 공원의 영향으로 장사가 잘 되는 가게들은 공원에 바로 인접해 있는 소수의 가게들 뿐이지만 건물주는 공원이 생겼으니 손님이 더 많지 않냐며 임대료를 올린다. 호프집에서 술 마시던 사람들도 그냥 공원에서 마시는 상황인데 말이다. 결국 돈을 버는 사람은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돈을 가진 사람들뿐이다. 가게 주인이 열심히 일해서 맛집이 되면 그 유명세를 이용해서 건물주를 부추기는 돈만 아는 저질 업자들과 자본가들이 동네를 팔아먹는다. 우리가 편안하게 찾을 단골가게는 점점 사라지고 대형 프랜차이즈들만 우후죽순으로 늘어난다.




방콕을 여행할 때였다.

숙소 근처에 있는 카페를 자주 갔는데 분위기가 좋았다. 동네 사람들도 있고 여행자들도 있다. 들어가면 늘 같은 자리에 앉아 맥주 한 잔 하고 있는 동네 아저씨가 눈웃음으로 인사를 한다. 젊은 가게 주인은 전자음악이나 라운지 음악을 디제잉한다. 한 달에 몇 번씩은 카페에서 디제잉 파티도 한다. 여행자들에게 카페에 있는 물건의 사연을 들려주거나 음악을 추천해주기도 한다.  주인의 친구가 만든 소품들을 진열해 놓고 팔기도 한다. 주민들도 동네 사랑방처럼 편하게 드나들고 여행자를 외부인이라고 배타적으로 대하지도 않는다. 동네 카페라는 소소한 장소에서 주민이나 여행자 구분할 것 없이 함께 자연스럽게 여가를 즐긴다. 맥주를 다 마신 동네 아저씨는 손을 흔들며 우리에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간다. 내일 또 저 아저씨를 보겠지. 숙소에 들어가기 전 그렇게 동네 카페에서 하루의 마무리를 하곤 했다.


우리가 방콕을 떠날 때 인사를 하러 카페에 들렀다. 


안녕. 우리 이제 방콕을 떠나. 미얀마로 갈 것 같아.

그렇구나. 즐거운 여행이 되길 빌게.

고마워. 이 카페가 있어서 방콕이 더 좋아졌어.

천만에. 자주 찾아와 줘서 고마웠어. 이건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 준비했어.


자신이 직접 선별한 음악 CD를 선물로 준다.


우와, 생각하지도 못한 선물인데 정말 고마워.

천만에 건강하게 여행하고 방콕에 또다시 오면 들러. 

그래 고마워. 잘 있어.


밖으로 나오기 전 카페 안을 한번 더 둘러보며 눈에 담는다.


헤브 어 나이스 트립.


문을 나서는 우리에게 동네 아저씨도 짧은 영어로 인사를 했다.

여행지에서 그런 카페에서 보낸 시간은 정말 행복한 순간이었다.




오늘도 동네에는 아랑곳없이 텔레비전에 나온 파스타집 앞에는 사람들 줄이 길고,

한적한 와플 가게가 있던 건물에서는 붉은 포클레인이 으르렁거리는 파괴의 포효가 길게 퍼져 나간다.

그리고 내가 단골로 하려던 돈가스 가게가 떠난 상점은 아직 비어 있다.

상점의 허전한 유리문을 보면서 방콕에서 갔던 카페의 기억으로 그 안을 채워 본다.

그리고 눈을 감고 그 안에서 돈가스 냄새가 다시 퍼지는 것도 상상해본다.

다시 눈을 뜨고 바라본다. 비어있는 가게가 더욱 황량하다.


우리는 동네를 사랑할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지금 여기 걸으며 동네를 발로 눈으로 담는다.

나는 살고 있는 지금 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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