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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기 Apr 02. 2017

하얀 게 좋아 1

연남동 파스타 가게에서 터키 파묵칼레까지

연남동이다. 요즘 대세 핫플레이스다. 매일 줄이 길게 서 있을 정도로 핫한 파스타 집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는 이미 그 줄의 한가운데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미안한 척 웃음을 지으며 친구의 팔짱을 꼈다.


이거 놓지.

아 왜애ㅇ.~


친구의 옆구리를 살짝 찔렀다. 말을 말자며 친구도 그냥 히죽 웃었다.

줄을 서 있으면서 파스타 집의 간판을 배경으로 친구와 같이 셀카를 찍었다.

30분 넘게 기다리고 나서야 자리를 안내받았다. 그래도 운 좋게 테라스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인스타에서 가장 많이 봤던 바로 그 메뉴를 주문하고

스마트폰을 꺼내 보았다. 페북을 보니 친구는 벌써 줄을 서며 찍었던 사진을 올려놓았다.


 겁나 빨라, ㅇㅈ.


'좋아요'를 눌러주고 댓글에 여기 온 걸 자랑하고픈 친구들의 이름을 @와 함께 달았다. 

그러는 새 어느덧 주문한 메뉴가 나왔다.      

         

 그거 그렇게 들고 있어 봐.


파스타를 이 각도 저 각도 또 수직 위에서 사진 찍던 친구가 내가 파스타를 돌돌 만 포크를 입에 넣으려 하자 말했다. 뭐든 먹기 전에 늘 하는 짓이니 개의치 않고 들고 있어 줬다. 

친구는 찍었고 이제는 나의 차례.


너 그거 좀 치우고 와인잔 여기로 조금 가까이 놔둬. 그래, 고개 조금만 옆으로 비켜줄래? 뒤에 조명 가리걸랑~.

알았거든~.


조명등의 불빛이 와인잔을 통과하고 파스타에 도달하자 폰 화면에 담긴 사진에 더욱 윤기가 흘렀다. 사진을 다 찍고 둘은 아무 말 없이 그제야 파스타를 입에 넣기 시작했다. 여전히 포크를 쥐지 않은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 있다. 

           

야 너 요즘 애가 붕 떠보이냐?


폰을 보면서 친구가 말했다.


응? 아……. 나 여행 갔다 왔거든. 너두 내 인스타에 사진 좋아요 했두만.

그거야 나도 아는데, 그래서 그런 거야? 실컷 잘 놀다 와 놓구선 뭔가 허전한 그 분위기는 어쩔?

아……. 나 헤어졌어. 그림자랑. 

파묵칼레 있잖아. 터키에 있는 온통 하얀 온천. 

광고에도 나왔는데, 그 광고랑 전혀 안 어울리지만, 

어쨌든 거기서 헤어졌어. 그림자랑.

맛있는 거 먹고 무슨 쉰 소리래?


폰에서 파스타로 시선을 옮긴 친구는 포크에 파스타를 휘감아 아래위로 흔들었다.


나... 이제 없다고. 그림자.

            

친구는 파스타를 호로록 빨아 당기면서 날 쳐다봤다.




버스가 어느 여행사 앞에서 멈췄다. 버스터미널이 아니라 어느 골목 한가운데 정차하는 게 좀 의아했지만, 카파도키아에서 밤새 버스를 타고 온 몸은 그런 의문을 허락할 만큼 기운이 남아있지 않았다. 파묵칼레. 이번 터키 여행에서 가장 기대를 한 곳이다. 아직 해가 오르지 않은 새벽녘이라 그 하얀 성 파묵칼레가 어디쯤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여행사에서 연결해준 숙소로 일단 가기로 했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눈부신 파묵칼레의 전경을 담을 수 있겠지. 날이 점점 밝아 왔고 숙소를 향해 굴러가는 캐리어를 따라오는 그림자도 점차 진해지고 있었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샤워를 했다.

거울에 화장기 없는 맨얼굴이 비쳤다. 심야 버스에 시달린 탓에 다크서클이 좀 진했지만 수척해 보이는 얼굴이 좀 더 야위어 보여서 마음에 들었다. 침대에 던져 놓았던 스마트폰을 얼른 집어 들었다. 거울 앞에 앉아 눈높이보다 약 17도 위로 팔을 뻗어 셀카를 찍었다.


'차차차차차 차차 차차 차'


가짜 셔터음이 이어졌다. 스마트폰에 눈을 떼지 않고 침대로 와서 앉았다. 카메라 롤을 터치하자 수많은 사진이 펼쳐졌다. 사진을 터치해 크게 보면서 넘기다가 맘에 드는 사진 밑 하트 모양을 터치해 검게 채웠다. 홈버튼을 눌러 홈 화면으로 돌아왔다. 카메라 아이콘 바로 위에 있는 뷰티 샤랄라 아이콘을 터치했다.               


1. 고급 뷰티를 터치한다.

2. 카메라 롤 선호하는 사진에서 방금 하트 표시했던 그 사진을 선택한다.

3. '갸름하게'를 선택해 턱 부분을 살짝살짝 문지른다.

3. '눈 크게'를 선택해서 눈 부분을 터치한다. 너무 큰 커서로 했다. 되돌리기를 하고 조금 더 작은 커서로 다시 눈 부분을 터치한다. 좋다. 다시 '눈 크게' 커서를 큰 것으로 바꾼다. 가슴 부분을 터치하자 가슴도 볼륨 있어 보인다. 만족스럽다.


'좋아.'


4. '환하게'를 터치해서 얼굴 전체를 문지른다. 점점 코 윤곽이 없어지고 있다.


'또 그 짓 하고 있어? 나 참, 너 자꾸 날 무시하는데 정말 이상해 보이는 거 아니?'


그림자가 말을 걸었다. 늘 이렇게 시비를 걸며 달라붙는 녀석이다.


'아 뭐래. 시끄럽거든.'


'야, 이 세상이라는 게 생과 사, 양과 음, 이런 것들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건데 넌 맨날 나를 생각해보지는 않고 환하게, 하얗게, 하얗게만 하면 어떡하니?'


'됐어. 존나 진지설명충, 생긴 것도 졸라 다크해서 집착 쩔어~. 좀 꺼져줄래?'


침대에 벌렁 누워서 등과 침대 사이로 그림자를 넣어버렸다.

열라 짜증 나는 녀석이다. 환하고 하얀 게 훨씬 이쁘다. 프사도 그런 사진이 훨씬 인기다.  프사에 속았다며, 만난 여자를 폭행한 인간도 있다는 기사도 봤지만 분명 그 새끼도 자기 프사 뽀샵질 장난 아니게 했을 거다. 분명 그랬을 거다. 그런 걸로 폭행을 가하는 놈이라면 보나 마나 뻔한 녀석이다. 피해망상으로 남을 헤치는 녀석들.


침대에 누워 다시 셀카 화면으로 보니 조명 밑에 얼굴이 훨씬 밝아 보인다. 다크서클도 덜 했다.


찰칵, 찰칵, 찰칵.


턱 옆에 손가락 브이를 갖다 대고,


찰칵


다시 사진을 찍고, 앞에 했던 뷰티 샤랄라 1에서 4까지의 과정을 반복했다.

마지막으로 오토 뷰티를 2단계로 적용해주고 카메라 롤에 저장했다.


역시 밝고 하얀 게 예뻤다. 


사진을 한참 보고 있으니 잠은 오고 불 끄기는 귀찮았다.


졸린 손에서 폰이 미끄러져 

얼굴에 떨어졌다.


놓친 폰을 찾아 충전기에 꽂고 눈을 감았다.






눈을 뜨고 다시 폰을 들었다. 

보정한 사진 중 하나를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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