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방향으로 천천히
그 어느 순례길보다 번뇌 가득한 길
출근길
쏟아지는 잠
막히는 도로
부딪히는 사람들
지하철 출구로 올라가는 사람들을 보면 흡사 언데드 영화의 한 장면
무한반복 출근길을 걷는 직장인이 죽지도 못하고 발을 끌고 가는 좀비 같다
영혼 없이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떠밀려 떠밀려 걷는다
모두가 출근할 때 퇴근할 때도 있었다
철야근무를 마치고 모두가 출근하는 길을 거슬러 집으로 온다
조금이라도 더 눈을 붙이려고 빨리 걷는다
아침은 피곤으로 덮여 사라진다
모두가 출근할 때
출근을 하지 않으니
아침이 있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는 이야기가 있다
여행지에서 느지막이 일어나 오전 햇살 멍하니 보던
그 시간이 되살아난다
모두가 출근할 때
그 길을 거슬러 집으로 온다
버스정류장에 아내를 바래다주고 오는 길
동네를 거니는 산책이 있다
빨리 걸을 필요 없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걷는다
천천히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