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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기 Mar 12. 2017

내 맛대로 산다 1

동네 맛집에서 여행까지

동네 맛집에 가다


먹자! 까짓 거 방어회 한번 먹어보자!


우리 동네에 유명한 횟집 앞에서 아내의 먹방 AT필드가 찢어지는 순간이다. 그 횟집 앞은 대기하는 사람으로 늘 문정성시다. 5시에 가도 자리가 없다. 제한시간도 있다. 2시간 안에 먹고 나와야 한다. 먹어보고 싶지만 줄까지 서며 먹는 걸 싫어하는 나는 거기서 회를 먹을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내가 먼저 결계를 풀어버린 것이다. 4시가 조금 넘은 시간 아직 대기하는 사람이 없다. 들어가자 두 테이블 정도 자리가 있다. 자리에 앉았지만 먹는 걸 그렇게 즐기지도 않는 아내가 앞장서서 정말 횟집 문을 열고 들어왔다는 사실에 얼떨떨한 상태였다. 대방어회 2인분을 시켰다.


 '이 돈이면 일주일치 식비인데....'


돈 걱정도 걱정이지만 그것보다 아내에게 미안했다. 이 동네에서 살면서 그 앞을 몇 번이나 지나쳤는데 아직까지 한 번도 같이 간 적이 없었다니. 난 친구들과 모임에서 대방어를 먹은 적이 있었다. 아내도 먹고 싶은 적이 있었을 텐데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 같아 미안했다. 복잡한 마음으로 음식을 기다렸다. 밑반찬들이 나왔다. 새우도 먹고 샐러드도 먹었다. 문 밖에 직원이 커다란 생선을 트럭에서 수조로 옮겨 넣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커다란 생선이 물장구를 치더니 수조 밖으로 튀어나왔다. 잡으려는 직원의 팔뚝보다 컸다. 수조 밖을 뛰쳐나온 아내의 마음. 그걸 보니 또 가슴이 쿵쿵거렸다. 회가 뭐 별거라고 마음까지 이러는지 모를 일이었다. 소주를 한 잔 들이켰다. 주문한 회가 나왔다. 대방어의 붉고 두툼한 살점들이 부채춤을 추며 접시를 덮고 있었다. 윤기가 흐르는 살점 하나를 입에 넣었다. 아내의 입으로 들어가는 회를 지켜보았다. 하얀 김치에 회를 한점 싸서 아내에게 주었다. 나도 다시 한점 먹었다.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는 방어보다 마음이 풀리는 속도가 더디었다.




동네 주민에게 동네 맛집이란?


자랑만큼 쓸데없는 짓이 있을까? 우리가 자랑하는 것들을 보면 딱히 자신과 관련 있는 게 별로 없다. 부모가 부자인 것도 부모의 노력이나 조부모 덕이고 자식이 공부를 잘해도 자식이 똑똑한 것이다. 김연아가 한국의 자랑이지만 나랑 무슨 관계가 있을까. 나와 김연아의 연결고리는 국적이 동일하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김연아에게 어떤 분야에서 노력하여 결실을 이룬 개인에게 보내는 존경과 응원의 마음이면 충분하지 '우리나라엔 김연아도 있다'라며 나의 자랑으로 여길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나 자신만의 능력을 자랑거리로 삼는 것이 오히려 솔직한 것이겠지만, 세상에 유명한 고수들이 얼마나 많은가. 유명세와 상관없이 자신의 할 일을 묵묵히 하고 실력을 키워온 사람들까지 합하면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천지에 널렸다. 곳곳에 고수들이다. 그에 비하면 스스로 자랑할 것도 별로 없다. 그러니 자랑이 타인에 대한 것이라면 칭찬과 존경으로, 나에 대한 것이라면 겸손으로 바꾸려고 한다. 이렇게 자랑이라는 게 쓸 데 없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자랑은 오로지 자신의 마음만을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동네 맛집도 그렇다. 내가 그 요리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같은 동네에 있다는 것뿐인데 유명한 맛집이 있으면 나도 자랑하고 싶어 진다. 연남동에 살게 되면서 맛집이 가까워졌다. 우리 동네엔 무한도전에 나온 기사식당도 있고 화교가 많아 중화요리 맛집도 많다. 소위 뜨는 동네가 되어서 소셜미디어에서 많이 태그 되는 예쁘고 힙? 한 카페나 레스토랑도 손에 꼽기 힘들 정도다. 한 번씩 외식을 할 때 멀리 다른 지역으로 나가지 않고 동네 맛집을 가곤 하지만 그 많은 맛집을 다 가볼 수는 없다.

난 유명한 맛집도 소문을 반 정도만 믿는다. 내 삶의 지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데, 모든 의견은 반만 믿으려고 한다. 남을 믿지 못하는 성격이어서가 아니라 모든 것을 의심하라는 비판적인 사고와 태도를 유지하려는 마음가짐이다. 그리고 이후에 생길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여유를 마련해 두는 것이기도 하다. 반만 믿으면 소문난 맛집에 가서도 괜히 실망할 일이 적다. 처음 가서 맛있었는데 두 번째에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도 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나의 이야기를 반만 믿었으면 한다. 다 믿어도 좋겠지만 반만 믿어도 괜찮다. 신화가 팬들에게 말했다. "신화는 당신의 인생을 책임지지 않아요." 내가 여러분의 입맛을 책임지진 않는다. 반만 믿고 직접 가서 먹어보는 직접 경험이 좋다고 본다.


동네의 맛집이 자랑거리이기도 하지만 복잡해서 찾기가 불편하기도 하다. 그래서 동네 주민으로서 나름 동네의 맛집을 즐기는 방법이 있다.


1. 붐비는 시간대에 가지 않는다. 가까운 거리에 있으니 붐비지 않는 시간에 가면 여유 있게 즐길 수 있다.

2. 포장해와서 집에서 뒹굴거리며 먹는다. 요즘은 어지간한 곳은 다 포장이 되니까 특별히 그 가게의 분위기가 좋은 것이 아니라면 포장을 해와서 집에서 먹는다.

3. 그리고 유명하지 않은 나만의 맛집을 만든다. 단골을 만드는 게 쉽지는 않다. 단골 할만하면 없어지니까. 하지만 동네 어느 구석 한적한 곳에 나의 입맛에 맞는 의외의 맛집이 있기 마련이다.


아주 오래전 아내는 배우 황정민의 팬클럽에 잠깐 몸을 담은 적이 있다. 연극배우를 하던 무명시절을 보내고 막 영화에 등장할 때 즈음이었다고 한다. 팬들과 함께 엠티도 가고 그랬단다. 응원하던 배우가 지금은 아주 유명해져서 좋기도 하지만 멀어진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며. 동네 주민에게 동네 맛집이란 그런 느낌이다. 가깝지만 먼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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