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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기 Apr 13. 2017

집에서 여행을 나누어 먹어요

여행을 이어가는 방법 - 낯선 만남이 주는 즐거움

마당에서 고기 구워 먹을까 하는데요. 집밥 ^^


메시지를 보냈다.


혹시 1인 가구 남성분이신가요? 한 번도 뵌 적 없는 1인 가구 남성분 댁에는 아직 방문한 적이 없는데, 마당이라고 하니 괜찮겠죠? 기우를 내비쳐서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라고 답이 왔다.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내 인상이 좀 험악하긴 하다. 고등학생 때부터 불시검문을 당했었으니. 인상이 험악하지 않다고 해도 무서운 사건들이 곳곳에서 일어나는 세상이다. 단지 페이스북 친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밥을 한 끼 같이 한다는 것이 새삼 용기가 필요한 일이겠구나 싶었다.


아니요. 아내랑 둘이 살고 있어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페이스북을 통해 친구를 맺은 사람들과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그것을 통해 생존을 도모하는 이른바 '730 프로젝트'를 알게 되었고, 흥미가 돋아 참가 신청을 했다. 만날 시간과 장소를 정하기 위해 메시지를 주고받던 것이었다.

'마당이라면 괜찮겠죠?'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공간이 사람의 마음을 여는데 일조한 것 아닌가. 
마당이 있는 집에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곳으로 이사 오면서 제일 먼저 생각 난 게 '마당에서 고기 구워 먹으면 좋겠다!'였다. 그리고 실제로 여러 번 친구들을 불러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하지만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우리 집에서 밥 한 번 같이 먹자고 신청한 것은 처음이었다. 마당이 없었다면, 현관문 닫으면 바깥세상과 안녕하는 집이었다면 달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집으로 초대하면서 떠올린 것은 여행의 경험이었다. 여행을 했기에 시도할 수 있는 일이었다. 여행을 할 때는 나 자신이 곧 이방인이기에 다른 낯선 타인에 대한 마음이 열린다. 일반적인 사회관계에서 처럼 이것저것 따지지 않아도 되는 사이가 여행에서 만난 사이다. 그만큼 배경이나 선입견을 떠나 만나는 바로 그때 그대로의 모습으로 대할 수 있다. 낯선 만남이 주는 즐거움. 그런 인간관계를 다시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여행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먼저 생각나는 것은 사람이니까.




여행에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주었다. 그들의 초대가 없었다면 달랑 이천만 원으로 두 명이 일 년간 여행을 지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돈도 돈이지만 그것보다 현지인의 삶 속에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들은 우리를 정말 친한 친구 혹은 귀한 손님으로 대해 주었다.


그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것은 이란에서의 경험이다. 이란 여행 처음 몇 주일은 거의 현지인의 집에서 지냈다. 터키 트라브존에서 만난 가족과 터키와 이란의 국경지역에서 만남 사람이 자신의 집에 우리를 초대했다. 둘 다 이름이 알리였다. 처음엔 국경에서 만난 알리의 집에 가게 되었다. 우리가 하는 일이라곤 매 끼니때마다 친척집에 놀러 가서 같이 밥을 먹는 것이었다. 오늘 점심은 형의 집에서 저녁은 큰 아버지의 아들 집에서 먹는다. 내일 점심은 이모의 시댁에 가서 먹는다. 저녁은 형수의 처가에서 밥을 먹는다. 밥을 다 먹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형수의 남동생 부부가 놀러 온다. 남동생 부부의 아기를 보고 있으니 또 친구가 놀러 와서 자기가 태권도를 배웠다며 발차기와 공중제비를 보여준다. 다음날은 집안에서 운영하는 곡물 가공 공장에 모두 함께 가서 축구를 하고 참을 먹는다. 그다음 날은 근처의 산에 가서 유황 약수가 나오는 것을 보여주고 소풍을 하고 돌아온다. 우리가 돈을 쓸 겨를도 없었다.

하루는 우리가 보답을 하고 싶어 그 집에 사는 아이에게 학용품을 사주려고 했다. 동네 문방구에서 공책과 펜을 사려는데 문방구 할아버지가 손님이 돈을 쓰는 게 아니라며 돈을 안 받는다. 이 할아버지는 낯선 우리의 정체를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친구가 찾아와서는 학용품 값은 자신이 치르고 아이가 기뻐할 것이라며 선물은 우리더러 주라고 한다. 친구 조카였던 그 예쁜 아이는 아내를 아주 잘 따랐고 아내도 그 아이를 무척 귀여워했다. 우리가 그 친구 집에 있는 내내 아이도 그 집에서 지냈다. 처음엔 아이가 원래 그 집에서 할머니와 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이가 엄마 아빠랑 같이 살지 않냐고 물어보니 우리가 그 아이를 무척 좋아하는 것 같아서 같이 있게 하려고 우리가 머무는 이 집에 계속 재우는 것이라고 했다. 이럴 수가 있나! 그들의 무한한 환대는 우리가 예상한 것 이상이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머무는 동안 그들의 일상은 우리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우리가 있는 동안은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그 많은 친척들은 우리를 위해 순번을 정한 것 마냥 식사에 초대를 해주었다.


우리가 말을 꺼내지 않으면 영영 함께 살 기세였다. 안 되겠다. 이제 떠나야지. 더 있어도 된다는 말을 공손히 사양하고 떠나겠다고 다시 말했다. 알겠노라고 헤어짐을 받아들인 알리는 우리가 다음 행선지로 어떻게 갈지 챙겨주기 시작했다. 알리는 트라브존에서 만난 또 다른 알리와 먼저 통화를 했다. 알리는 우리를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주고 우리가 누구를 만날 것이라고 버스 기사에게 이야기해주었다. 우리가 버스에 오르고 버스가 출발하자 가족들이 우리를 실은 버스를 향해 한참 동안 손을 흔들어 주었다. 트라브존에서 만난 알리가 사는 곳에 도착하자 버스 기사가 바로 알리한테 전화를 했다. 알리가 찾아왔고 버스기사는 알리에게 우리를 인계해주고 인사를 나누고 떠났다.


우리와 재회한 트라브존에서 만났던 알리는 자신의 집에 우리를 데리고 가서 침실을 마련해준다. 근처의 레스토랑에 가서 이란 현지 음식으로 저녁을 같이 먹는다. 그다음 날에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조카가 와서 통역을 해준다. 차를 몰고 몇 시간 떨어진 소금호수를 데리고 가서 구경시켜준다. 그다음 날엔 조카와 같이 동네에서 유명한 유적지와 박물관을 같이 다니면서 보여준다. 시장에 있는 수십 년 된 양탄자 가게에 가서 몇 년간 만들고 있는 카펫을 구경시켜 준다. 저녁에는 알리의 집으로 친척들이 모두 놀러 와서 같이 저녁을 먹고 아이의 장기자랑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들의 환대에 더 이상 수식할 말도 없다. 그 따뜻한 마음씨에 고마운 마음이 저절로 날 뿐이었다. 다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베푸는 것 자체로 아니 우리를 만났다는 것 자체로 함께 즐거워하는 그들의 모습이 좋았다. 




730 프로젝트를 알게 된 순간 떠오른 게 바로 여행에서 우리를 환대해 주었던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이란에서 만난 사람뿐만 아니라 인도, 스페인, 독일 등 여러 곳에서 우리를 반겨주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을 생각하니 그 프로젝트가 단지 밥 한 끼뿐만 아니라 사람 사는데 뭐가 중요할까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여겨졌다. 여행에서 우리를 환대해 준 사람들도 단지 우리에게 밥 만 준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어떤 시간이 될지 궁금했다.


문을 열어주었다. 


쭈뼛쭈뼛 어색하게 인사하였다.

어서 오세요 환영합니다 하하.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아내도 인사를 한다.


옷 편한 거 줄까요?


아내가 앉기에 편한 긴치마를 꺼내 주었다. 역시 사람을 편하게 해 주고 친하게 대하는 능력은 아내가 나보다 월등하다. 여행에서 만난 친구도 놀러 와서 네 명이 오붓하게 저녁을 먹게 되었다. 아내와 친구들은 마당에 펴 놓은 밥상에 밥과 반찬 쌈 채소를 준비하고 둘러앉았다. 나는 상옆에 비비큐 숯불을 조절하면서 열심히 고기를 구웠다. 삼겹살이 익어가는 만큼 어색함도 조금씩 풀렸다. 맥주캔을 하나씩 따는 소리와 함께 말문도 열렸다.


여기 연남동 이 집 마당에서 고기를 구우면서 밥 한 끼 같이 먹게 된 페이스북 친구는 잉집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다. '월간잉여'라는 독립잡지를 발행하는 편집장이었는데, 내가 퇴사 후 잉여롭게 지내는 동안 인터넷에서 그 글들을 보면서 흥미를 갖게 된 것이었다. 월간잉여라고 하지만 매달 정기적으로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게 더 잉여롭고 좋았다. 10년 후에 월간잉여라는 제목으로 나와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행 이야기,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집에 온 친구와 우리가 여행 중에 함께 겪었던 모험같은 일들. 여행 후에 달라진 삶. 여행을 하고 돌아오니 집에 너무 많은 옷들이 있더라. 요즘 사회의 이슈들, 직장 생활과 스트레스. 여행을 갔다 왔음에도 원수는 여전히 직장에서 만나게 되어 있더라. 인간관계에서 받는 감정과 상처. 뭐든 더 사라고 몰아붙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빨리빨리 바쁘게만 살아야 하는 잉여롭지 못한 삶. 노동과 상품과 소비에 휩싸여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자신이 희미해지는 삶을 살았는데, 여행은 그 안갯속을 벗어나, 스스로를 직시하게 되는 값진 경험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백수의 마음가짐 등. 각자가 갖고 있던 여행의 장면들과 삶의 장면들이 콜라주 되어 함께하는 시간을 채웠다.


마당에서 밤하늘이 삼겹살 기름에 미끄러지고 맥주 한 모금에 촉촉해져 흘러가는 것을 보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다시 여행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여행에서 만났던 현지인 친구들. 그들 또한 자신의 일상 속에 우리를 초대함으로써 여행을 했던 건 아닐까? 그래, 지금의 나처럼 그들 또한 어디로 떠나진 않았지만 낯선 사람을 초대하고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듦으로써 여행을 나누어 가졌던 것일지도 모른다. 집장의 밥 같이 먹자는 프로젝트가 내게는 일상을 여행처럼 살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된 것이었다.


내게 초대라는 것은 받은 만큼 베풀어야 한다는 도덕적인 관념보다 무언가를 전해주고 싶다는 생생한 욕망이었다. 그저 내가 받았던 좋은 마음을 전해주고 싶다는 것, 나누고 싶다는 욕망. 그러면 사는 게 서로 좀 즐거워지지 않을까 하는 어렴풋한 느낌이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초대는 그저 주인이 방문객에게 일방향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영향을 주고받는 양방향의 사건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는 존재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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