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청년 새끼'를 읽고
조심스럽다.
국가에서 던져놓는 청년지원사업을 신청할 수 있는 나이가 이미 넘어버린 나.
나보다 젊은 세대에게 '일해라 절해라'(정말 중동에 가서라도 '일해라' 어른들께 공손히 '절해라'라고 하니까) 할 만큼 뭔가 이루어 놓은 것도 없는 나.
이루어 놓은 게 있다 한들 그러는 것도 웃기지만...
낀 세대라는 말도 하나마나 한 말이라고 생각하는 나. 도대체 안 끼인 세대가 어디 있나?
그런 내가 '미운 청년 새끼'를 읽고 이 책은 이러하다고 말하기가 조심스러운 것이다.
'청년의 입으로 터 놓는 청년 썰 잘 들었습니다.' 하는 정도에서 내가 읽으면서 떠올랐던 단상들을 늘어놓아 보련다.
'미운 청년 새끼'는 들어가며 바로 정곡을 찌른다
"문득 청년과 청년이 아닌 것의 경계는 청년세대를 통칭해 무엇이라고 정의하고 싶은 사람과, 정의하려는 것에 저항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나뉘는 건 아닐까 싶었다. 청년을 타자화하여 분석하고, 그에 대해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자라면 그는 더 이상 스스로를 청년이라 칭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p.006
후지와라 신야는 청년일까?
일흔이 넘었는데 청년이라고 하기엔 너무 늙었잖아. 그럼에도 여전히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에헴하면서 청년들에게 난 젊을 때 이렇게 살았지 하는 인터뷰이가 아니라, 일본의 젊은 SEALDs 활동가와 대담을 하는 그가 적어도 고리타분한 늙은이로 보이지는 않는다.
영화 '밤섬해적단 서울 불바다'(후원자 시시회를 통해 보았다.)를 보면 어떤 아저씨가 계속 권용만에게 묻는다.
어떻게든 규정해보려고 애쓰듯 묻는다. 사상검증도 아니고 말이지.
"N포세대라는 네이밍에서부터 기성세대 가치관이 느껴지는 거죠. 출산 연애결혼을 포기한 세대라고 3포세대라고 불렀다죠? "꼭 해야 하는 것들을 포기하다니 우리 청년들 너무 불쌍하다"는 건데, 저는 다르게 보거든요. 이제는 '못 해서'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보다, "나는 '안 하기'로 선택한 거고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다른 것이 필요하다"는 선언과 요구,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요소에 대한 고민들이 많아 보입니다."
p.021
도처에 오지라퍼가 있다. 버스를 타고 가던 아내와 나. 옆자리에 앉아있던 아저씨가 아기는 꼭 낳으라고 한다. 자신은 늦게 아이를 갖게 돼서 인생이 바뀌었다고. 네네 바뀐 인생 잘 사시길. 내가 싫은 건 남에게도 하지 말고 내가 좋은 건 그냥 나만 좋으면 안 될까.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젊을 때 여행을 다니며 여러 경험을 쌓고 고생도 해봐야 한다는 사람들은 귀 옆 머리카락을 쥐어뜯어 올리며 '서울 구경' 시켜주고 싶다. 나는 아내와 배낭여행을 했다. 4년 동안 전세자금 대출 다 갚고 아내가 다시 직장인 대출받은 돈 2,000만 원으로 1년 동안 배낭여행을 둘이서 함께 하였다. 대출받아서 간 배낭여행이 고생스러웠다면 내가 1년간 다녔을까? 배낭여행에 돈이 궁해도 고생스럽진 않았다. 뭐든 고생 모험 도전 극복 이런 단어들로 사는 이야기를 엮는 것이 싫다. 젊어서 돈이 있으면 즐겁고 재미있게 여행하지 왜 고생을 사는 여행을 하는가. 고생을 사서 한다고 그만큼 단단해지고 성장하고 사회에 나가서 인정받고 잘 살 수도 없는 현실이다. 그런 시대 끝난 지가 오래다. 그런데 여전히 사서까지 해야 하는 고생에 '도오전'하지 않고 '노오력'하지 않으면 삶을 포기한 세대가 되어버린다.
여행도 스펙으로 수렴이 돼버린다니 씁쓸하다.
부모님 댁에 갔을 때, 어쩐 일로 부모님이 요즘 젊은 사람들 힘들다고 하더라, 그래그래.라고 인정하시는 말씀을 하셨다. 우리 젊었을 때는 가난하고 못 먹고 그랬는데 지금은 호강에 겨워서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씀을 안 하시는 게 어딘가 싶었지만, 여전히 안방에는 박정희가 저 높은 곳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 사진 달력이 걸려 있다.
"연애의 대상은 감정과 취향, 선택권과 거부권이 있는 인간이다. 간택을 기다리는 무수리가 아니고, 쇼케이스에 놓인 케이크가 아니며, 내가 일정 레벨에 이르면 팡파르와 함께 주어지는 아이템이 아니고, 직장에서 주는 명절 선물세트가 아니다. 어떤 고난을 견뎌서 무엇을 어떻게 성취했는지, 이게 사회적으로 얼마나 인정받는 것인지, 내가 얼마나 진심인지, 내가 상대방에게 얼마를 썼는지는, 상대가 매혹되지 않는다면 하. 나. 도 소용없다는 말이다."
p.281
상대가 나의 진심을 받아들이고 관계가 성사되었다고 하더라도 매 순간 말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른다. 내가 말을 안 해도 알아주겠지라고 섣불리 기대해선 안된다고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막상 실제 생활에서는 잘 안 되는 것 같다. 내가 이러고 있으면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 아니 알아야 한다는 마음을 말도 없이 강요했던 것임을 깨달을 때가 있다. 이제 결혼 10년 차가 되었지만 지금도 한 번씩 내 마음을 인정받기만을 원하고 입을 닫기도 하는 나는 연애 잘 못하는 사람인가? 흑흑.
"역사적으로 '진정한 사랑'은 존재했다기보다는 존재했다고 모두가 상상하고 믿는, 언제나 현대의 인스턴트식 사랑을 비판하기 위해 호출되는 유니콘 같은 존재에 가깝다"
p.267
는 말에 정말 공감한다.
이 사람이 내 생의 '유일한 사랑'이라고, '진정한 사랑'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상대를 사회나 성별에 따른 편견을 벗어나 오롯이 한 존재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자 할 때만 유효하다. 너와 내가 완벽한 존재가 아님을 알고 대화를 할 때만 우리는 영원을 꿈꿀 수 있다. 그리고 그게 정말 그냥 꿈이라도 상관없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지금 청년은 진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해 좀 더 알게 된 것 같다.
나 또한 '청년은 불쌍하다, 힘들다.'라고만 대상화한 적은 없었는지 돌아보게 되는 기회도 되었다.
그래 맞아 맞아 그렇구나 그렇구나 하는 이야기가 많았다. 처음에 그런 이야기에 책 귀퉁이를 접어두다가 완전 책 모깎기가 할 것 같아 그만두었다.
난 청년들이 좀 잉여로워도 괜찮은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도 그렇게 잉여롭게 살고 싶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여유로운 삶을 만들 수 있는 가치들이 더 쉽게 퍼질 수 있었으면 한다.
노력, 성장, 성공, 창조(꺄~!!)를 위한 일뿐만 아니라 재미있는 일, 아무것도 아닌 일, 쓸데없는 일을 해도 미운 청년 새끼 취급받지 않는... 그런... 실실 웃어도 좋을 '헤~~~ 조선'.
책정보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59894512
*나는 저자 중의 한 명인 최서윤 a.k.a 잉집장님과 인연이 있어 책을 선물 받아 읽었다. 뭐 선물로 주지 않았더라도 사서 봤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