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월 샌프란으로 출국을 준비하며 썼던 글을 꺼내보며
내겐 다양한 형태의 삶과 세계를 탐색하는 것만큼 흥미롭고 재밌는 건 없다. 여행을 하거나, 사람들과 만나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을 때면 새삼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 형태가 참 다양하다고 느낀다. 대학시절부터 덜 서구화된 문명을 가진 국가들을 여행할 때, Couchsurfing 호스트가 되어서 각국의 여행자들을 맞이할 때, 사람들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을 때,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동경을 느끼고 직접 탐험을 떠나보고 싶은 욕심이 든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취향, 가치관,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치 여행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일상을 살아가는 방식도 마찬가지로, 어떤 목적지와 방향성에 무게를 두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일상의 모습과 풍경이 제각기 달라진다. 삶의 큰 획을 긋는 굵직한 결정을 할 때면, 선택에 따라서 어떤 일상이 펼쳐질지 상상해보며 그게 내가 원하는 모습인지 자문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앞서 비슷한 상황에서 서로 다른 결정을 내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여러 풍경의 모습들을 더 구체화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런 고민들을 가지고 여러 선택지 가운데 어떤 선택을 내렸고 지금 이 모습으로 이어졌구나로 이어지는 네러티브는 좀 더 나다운 선택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곤 한다.
나는 내 일상을 그려나갈 때 주로 미래의 선택지 혹은 가능성을 확장할 수 있는 옵션에 큰 가치를 둔다. 아직 나를 둘러싼 세계와 나 스스로에 대해서 모르는게 많고, 탐색을 해나가며 계속 스스로 변화해나가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고 싶기 때문이다. 또한 기존의 일상과 가치들의 깊이와 두께를 넓혀 나가는 것 역시 중요하기에, 완전히 새로운 선택을 내리기보다는 어느 정도 기존의 일상과 결이 맡는 선택을 하고자 한다.
2018년 처음 샌프란시스코에 와서 일을 할 때에 비해, 올해 샌프란시스코를 출국하기로 결정하는 건 더 어려운 일이었다. 2018년 1년간 샌프란시스코에서 생활하고 일을 하며 미국 생활이 가진 장단점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갈 지를 고민할 때면 한국에서 소중하게 맺고 있는 관계들과의 단절, 샌프란시스코 도시 생활의 따분함, 문화 정서적으로 미국 생활에 더 깊게 녹아들지 못하는 아쉬움 등이 떠올랐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명확한 답은 없고, 답이 없는 문제이기에 사람들이 공감하거나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것을 좇아서 선택을 내렸고, 시간이 지났을 때 내 모습을 돌이켜보기 위한 차원에서 여러 생각들과 고민들을 추려보는 정도는 가능한 것 같다.
샌프란으로 가기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인생이 긴데 한국에서만 쭉 살아보기보다는 기회가 왔을 때 외국에서 몇 년 살아보자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원격으로 2년 넘게 일을 하며 내가 좋아하는 관계, 공간, 일상이 꾸려졌지만 동시에 환경을 바꿔서 새로운 일상을 꾸려나가고 싶기도 한 순간이었다. 낯선 환경에서 기존과 다른 관계, 공간, 일상을 가꿔나가다 보면 평소 편협하고 좁은 내 생각과 삶의 방식에도 변화가 생길거란 믿음이 있었다. 샌프란 외에도 뉴욕이나 파리, 발리 등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쭉 있어왔고 그 마음이 더 커지고 있었다.
또한 글로벌하게 사업을 해보는 경험이 앞으로 가치 있거나 의미 있다고 느끼는 일을 규모 있게 일을 벌이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살 때부터 오랜 기간 사업을 해오고 싶었고, 프로덕트나 비즈니스에 관한 생각과 기술들을 정교히 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왔기에 선택의 결도 잘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 시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그 미래를 위해서는 어떤 형태의 변화들과 비즈니스가 선행될지를 상상해보기에 실리콘밸리 테크 기업들이 많은 샌프란시스코가 적절하게 다가왔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생활을 하며 고민의 깊이와 넓이를 더해나가기 위해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을 예정이고, 시간이 흘렀을 때 어떤 컨텐츠가 내 안에 쌓일지도 궁금하다.
하지만 앞으로 쭉 샌프란에 살지는 잘 모르겠다. 단기적으로 3년 정도 신분이 좀 더 안정되고 개발자나 프로덕트 매니저로서 커리어를 한층 더 성장시킬 목표를 가지고 있다. 신분 문제만 해결된다면 바로 사업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당장 3년이 그리고 그 이후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좀 더 마음을 열어놓고 결정하려고 한다.